80만 거센 원성에 떠밀려 합의
‘법안 1건 처리용’ 16대이후 처음
비정규직법은 원포인트도 못해
‘실종된 정치’ 현주소 보여줘
13일 오후 여야대치로 텅 빈 교과위 13일 오후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법안심사소위 회의장. 등록금 상한제에 대한 여야 간 견해차로 개회가 두 차례 연기되는 바람에 회의장이 비어 있다. 연합뉴스
여야가 18일 단 ‘하루만’ 임시국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14일 새벽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를 통과한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ICL·Income Contingent Loan) 특별법안’을 본회의에서 처리하기 위해서다. 이른바 ‘원 포인트 국회’다.
‘원 포인트 국회’는 국회법, 국회법해설서 등에는 등재돼 있지 않은 용어다. 국회 관계자는 14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통상 비회기 중에 단 하루만 임시로 국회를 여는 것을 ‘원 포인트 국회’라고 부르지만 정확한 어원은 모르겠다”며 “‘원 포인트 레슨’이란 골프 용어를 차용했을 것이란 얘기가 많다”고 했다. 더구나 이번처럼 단 한 가지 사안(ICL 관련 법안은 5개)을 처리하기 위해 국회가 열리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국회에 문의한 결과 국회 의사일정이 전산화된 16대 국회(2000년) 이후 단 한 가지 사안을 처리하기 위해 국회가 열린 적은 없었다.
ICL은 등록금을 대출받은 뒤 취업 후 일정 소득이 발생하는 때부터 갚아 나가는 제도로 정책 수혜자는 대학생 80여만 명이다. 법안은 올 1학기 도입을 목표로 지난해 11월 23일 교과위에 상정됐지만 민주당 소속 이종걸 교과위원장은 “등록금 상한 규정이 들어가야 한다”며 지난해 12월 31일까지 상정을 거부했다. 그러다 12월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이달 8일에서야 교과위에 전격 상정됐다. 비판 보도와 대학생들의 분노가 고조되자 ‘등 떼밀려’ 뒤늦게 ‘밀린 숙제’ 해결에 나선 것이다.
따가운 눈총에 진통 끝 심야 타결
13일 밤 오랜 진통 끝에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를 위한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위원들이 웃으며 악수를 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 한나라당 임해규 조전혁 박영아 권영진 의원. 연 여야는 임시국회 회기 중이던 지난해 7월 15일 유엔 평화유지활동(PKO)을 위해 레바논에 파견된 동명부대의 파병 기간 만료일을 사흘 남겨놓고 ‘원 포인트 본회의’를 열어 파병 연장 동의안과 공석 중이던 4개 상임위원장 선출의 건을 처리한 적이 있다. 이처럼 ‘원 포인트 국회’나 ‘원 포인트 본회의’는 여야의 극한 대치, 국회 파행, 정치 실종에서 빚어지는 부산물이다. 그나마 열리면 다행이다. 비정규직법 개정안은 기존 법 시행(2009년 7월 1일) 하루 전까지 ‘원 포인트 본회의’ 소집 문제 자체에 대해서도 절충점을 찾지 못했다.
‘원 포인트’란 용어는 노무현 전 대통령 때부터 널리 쓰이게 됐다. 노 전 대통령은 임기 말이었던 2007년 1월 9일 대국민특별담화에서 대통령 중임제 개헌을 하고 싶다고 밝혔고 청와대 인사들은 “‘원 포인트 개헌’을 하자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얼마 전엔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한 사람만이 특별사면, 복권되자 ‘원 포인트 사면’이란 표현이 등장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권영진의원 “여론 정말로 무섭더라”▼ “여론의 승리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권영진 한나라당 의원은 14일 새벽 가까스로 한숨을 돌리며 이같이 말했다.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ICL) 특별법안’이 상임위 전체회의를 통과한 순간이었다. 여론의 따가운 눈총에 떠밀려 법안이 상임위에 상정된 8일 이후 주말을 잊고 심의한 지 6일 만이었다.
“절박했어요.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까지 나서 원 포인트 국회를 제안했는데, 상임위에서조차 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그 비난을 어떻게 감당합니까.”
법안 처리가 늦어져 ICL의 올 1학기 시행이 물 건너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교과위 소속 여야 의원들에게 질타가 쏟아졌다. 결국 이들은 다시 머리를 맞대야 했다.
권 의원은 법안 처리 시한을 못 박지 않으면 결코 처리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ICL 시행을 총괄하는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에게 여러 차례 법안 처리의 마지노선을 물었다. 안 장관은 “15일까지 법안을 (본회의에서) 처리해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1학기 시행이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답변했다. 정부의 시한이 나온 만큼 여야 의원들은 시한에 쫓길 수밖에 없었다. 시한은 다소 늦어졌지만 여야 지도부도 18일에 이 법안을 처리하기 위한 ‘원 포인트’ 본회의를 열기로 잠정 합의했다.
막판 협상과정에서 진통이 계속되자 여야는 서로의 요구사항을 ‘빅딜’해 돌파구를 마련했다. 한나라당은 무상장학금제의 현행 유지와 1000억 원 출연이라는 야당의 요구를 수용했다. 그 대신 야당은 정부의 10년 내 고등교육재정투자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준에 맞추라는 요구를 접었다.
권 의원은 “국민의 비난 앞에서 여야 의원들이 이렇게 치열하게 협상을 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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