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학원 강사가 세계 100만 명 이상이 치르는 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SAT) 문제지를 빼돌린 사건은 우리 사회의 성적 지상주의, 사교육 과열, 국제화와 첨단 정보력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110년 SAT 역사상 문제지 유출로 인한 부정행위가 확인되기는 처음이다. 학원 강사는 한국에서 문제지 관리가 엄격해지자 감시가 소홀한 태국으로 원정 가 문제지를 빼냈다고 하니 그 기발함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 대학수학능력시험처럼 SAT도 학생들이 치른 문제지를 회수한다. 그런데 학생들이 이 문제지를 반납하지 않고 빼돌리는 일이 한국에서 몇 차례 발생해 SAT 주관기관인 칼리지보드(College Board)는 한국을 요주의국가로 지목하고 있다. 한국시험을 대행하는 미국교육평가원(ETS)은 2007년 한국에서 시험을 치른 응시생 900여 명의 시험성적이 지나치게 높게 나오자 진상조사를 거쳐 기출(旣出)문제를 풀어본 혐의로 성적을 취소한 적도 있다.
이번 사건은 점수 따기에만 급급한 수험생의 정서와 유학 관련 사교육업체의 과욕이 빚어낸 합작품이다. 한국은 이미 토플(TOEFL)시험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내 토플시험이 iBT(Internet-based Test)로 대체되는 계기를 제공했다. 이번에도 칼리지보드는 시험 관리의 구멍이 드러나 재발방지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시아권 시험을 미국 시험과 같은 시간에 치르게 하거나, 토플처럼 인터넷시험으로 바꿀지 모른다. 미국 시험시간에 맞춰 아시아 학생들이 한밤중이나 새벽에 시험을 봐야 하는 곤욕을 겪을 수도 있다.
미국 대학 입학사정관들이 한국 학생들의 SAT 점수는 부정행위로 얻은 것이라고 의심할 경우 정당하게 점수를 받은 학생들까지 불이익을 받지 않을지 걱정이다. 미국 대학에서 한국 학생들은 SAT 점수에 비해 학업성취도가 낮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아이비리그를 포함한 미국 14개 명문대학에 진학한 한국인 학생들의 중도 탈락률이 44%라는 조사결과도 있다.
한국 경찰이 이 사건을 적발한 것은 우리의 자정(自淨) 의지를 보였다는 점에서 그나마 다행스럽다. 칼리지보드는 부정행위가 재발하지 않도록 보완조치를 취하되 일부 사교육업체의 일탈을 구실로 한국 학생들의 정당한 노력까지 평가절하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우리도 학생들에게 성적보다 더 소중한 페어플레이의 가치를 가르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