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 수술실 잡고 보조까지
자동마취기 없어 애먹기도
3시간 걸려 온몸 땀에 흥건
日의료진 “한국 봉사단 훌륭”
의사와 기자의 구분은 무의미했다. 환자를 살리는 게 먼저였고, 모두 힘을 합쳤다. 25일 오전 10시 40분(현지 시간)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 북쪽 언덕배기에 있는 코뮈노테 병원 1층 4호 수술실. 임신 6개월인 미젤레 아리즈 씨(38)의 무릎에서 썩은 부위를 절단하는 수술이 시작됐다. 세브란스병원-한국기아대책-동아일보 의료봉사단이 아이티에서 실시한 가장 큰 수술이었다.
아리즈 씨는 지진 당시 집이 무너지면서 왼쪽 다리를 크게 다쳤다. 즉시 병원으로 옮겨져 무릎 아래를 절단했지만 그 후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염증이 악화됐다. 그대로 두면 패혈증으로 악화될 뿐 아니라 태아의 안전도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그녀는 지진으로 자녀 2명을 잃었다. 그때의 충격으로 “나는 아이가 없다”고 되뇐다. 썩어가는 무릎보다 더 안타까운 대목이다. 문은수 정형외과 교수가 수술팀을 지휘하기로 했다. 그러나 수술에 들어가는 데까지도 난관이 많았다. 우선 빈 수술실을 확보하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의사 출신인 SBS 조동찬 기자가 수술실을 예약하기 위해 뛰어다녔다. 어렵사리 4호 방을 얻을 수 있었다. 90kg이나 되는 환자를 수술실로 옮기는 것도 쉽지 않았다. 기자들을 포함해 장정 4명이 달려든 뒤에야 겨우 환자를 수술실로 옮길 수 있었다.
4호 수술실은 우리나라의 1960년대 수준이었다. 자동마취기가 없어 김원옥 마취과 교수가 직접 가스를 주입하는 방식으로 마취를 해야 했다. 수술 전에 꼭 실시해야 할 혈액 검사와 심전도 검사는 장비가 없어 생략해야 했다. 검붉게 피고름딱지가 앉은 무릎의 붕대를 풀자 고름이 뚝뚝 떨어졌다.
태아의 안전을 고려해 부분마취를 하기로 했다. 그러나 환자가 워낙 거구라서 바늘이 척추 안쪽 깊숙한 곳에 박히지 않았다. 척수액이 나와야 마취가 되는데 이마저도 나오지 않았다. 1시간 동안 마취를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결국 위험을 무릅쓰고 전신마취를 하기로 결정했다. 다행히 한국에서 가져간 장비 덕분에 전신마취에는 성공했다.
설상가상으로 수술용 라이트도 없었다. 상처 부위가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다. 연합뉴스의 한상용 기자가 손전등을 들고 수술 부위를 비췄다. 본격적인 수술이 시작됐다. 문 교수가 수술 칼을 잡고, 기자와 김경아 간호사가 보조(어시스턴트) 역할을 맡았다. 문 교수는 고름이 나오는 피부 조직을 제거한 뒤 상처 부위를 꿰맸다. 한국에서라면 40여 분이면 끝날 수술이었다. 그러나 열악한 시설 때문에 수술시간은 무려 3시간 가까이 걸렸다. 나중에는 박경호 외과 교수와 SBS 조 기자가 추가로 투입되기까지 했다.
수술이 끝나고 회복실로 옮겨진 뒤에야 팽팽했던 수술실 분위기가 한결 누그러졌다. 의사와 기자 가릴 것 없이 온몸이 땀으로 범벅돼 있었다. 누가 의사이고, 누가 기자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서로 바라보며 웃었다. 그 웃음은 소중한 목숨 하나를 살렸다는 보람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문 교수는 “일단 수술은 잘된 것 같다”며 “그러나 상황을 더 지켜봐야 최종 결과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문 교수는 26일 다시 환자 상태를 확인할 예정이다. 이날도 병원에는 환자가 몰려들었다. 한국봉사단 옆에 임시진료실을 차린 일본 봉사단의 한 의사는 “별도로 약 조제실까지 갖춰 환자들을 바로바로 보는 한국 의료봉사단의 신속함에 놀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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