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3월 21일 정오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와 함께 첫발을 내디딘 동아마라톤은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전했다. 일제강점기 땐 울분을 삭히는 촉매제였고 광복 이후엔 한국 풀뿌리 마라톤을 선도해 기록의 산실로 불렸다. 2000년대 접어들어 서울국제마라톤대회 겸 동아마라톤대회로 명칭이 바뀌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동아마라톤’이라고 부른다. 그 이름 속에 한국 마라톤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6위의 고 김은배 선생,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고 손기정 선생,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챔피언 황영조 국민체육진흥공단 감독,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이봉주, 한국 마라톤의 희망 지영준(코오롱)…. 한국 마라톤 선수치고 동아마라톤을 거치지 않은 선수가 없다. 손 선생은 1932년 2회 대회에 처음 출전해 2위에 오르며 이름을 알렸고 3회 대회에서 우승해 국내 1인자로 우뚝 섰다. 3년 뒤 베를린 올림픽에서 2시간29분19초의 올림픽 최고기록으로 우승했다. 동아일보는 8월 25일자 손 선생의 우승 사진에서 일장기를 지워 조선인들에게 민족의 자긍심을 심었다.
동아마라톤은 역대 남자 마라톤에서 수립된 한국기록 28회 가운데 10번을 탄생시켰을 정도로 신기록의 산실로 불린다. 동아마라톤은 1994년 국내 최초로 일반 국민이 참가하는 마스터스 부문을 신설해 마라톤 붐을 일으켜 풀뿌리 마라톤의 온실 역할을 하고 있다. 2006년 2만4401명의 마스터스 마라토너가 참가해 역대 최고를 기록했고 올해도 2만3250명이 참가 신청을 했다.
동아마라톤은 2000년 경주에서 서울로 대회 장소를 옮겼다. 세계적인 마라톤의 첫째 조건은 ‘수도의 도심을 달린다’는 것이다. 동아마라톤이 서울로 대회 장소를 옮겨온 이유다.
세계적인 마라톤으로 인정받기 위해 좋은 기록은 필수다. 서울국제마라톤 사무국은 2000년 이후 서울 코스를 7차례 변경했다. 모든 참가자가 편안하게 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케냐와 에티오피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2시간5, 6분대의 세계적인 건각들을 초청해왔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2004년 남아공의 거트 타이스는 2시간7분6초의 국내 대회 최고기록을 세웠다. 이 기록은 그해 우승 기록 가운데 세계 6위였다. 세계적인 대회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증거였다. 국내 개최 대회 역대 남자부 톱7은 모두 서울국제마라톤에서 나왔다. 서울국제마라톤은 마스터스 참가자 수에서도 단연 국내 최고다. 자선기금 모금에서도 선도적인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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