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을 가리키는 말들은 대부분 산업적 성과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부산대 부설 한국민족문화연구소는 부산을 인문학적 시선으로 포착하기 위해 새로운 연구를 시도하는 곳이다. 연구 결과가 축적되면 ‘타 문화 수용이 뛰어난 개방 도시’ 같은 표현을 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울러 지역과 지역성을 연구하는 ‘로컬리티 인문학’의 기초를 정립하는 것도 목표로 삼고 있다.
그 탐침의 중심에는 교수와 연구진 33명으로 구성된 연구소 내 로컬리티 인문학연구단이 있다. ‘사유’ ‘공간’ ‘시간’ ‘문화’ ‘표상’팀으로 구성된 연구단은 철학 지리학 건축학 역사학 문학 문화인류학 도시공학 영상공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접근하고 있다.
역사학을 전공한 차철욱 인문한국(HK) 교수는 부산 서구 아미동 산19 마을을 ‘연구실’로 삼고 있다. 3∼4평의 주거 공간이 빼곡한 가난한 동네다. 마을지(誌)를 만들기 위해 주민들과 지속적으로 인터뷰를 하고 있는 그는 “이곳에는 전라도 사람과 경상도 사람의 구분이 거의 없다”며 “6·25전쟁 때 피란 온 사람들이 한꺼번에 모여 살게 되면서 지방색을 떠나 이웃을 배려하는 문화가 생성된 것 같다”고 말했다. 차 교수는 “타 지역에서 많은 사람이 몰려와 섞이면서 개방적인 문화를 형성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6·25 피란촌 달동네 통해
지역색 없는 개방성 확인
라디오 프로 사투리 분석
실용중시 지역특성 설명
한국어학을 전공한 차윤정 HK 교수는 표준어와 부산 언어의 관계를 연구하면서 부산 사람들이 실용성을 중시하는 흔적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그는 “40년 넘게 인기를 끌고 있는 지역 라디오 프로그램 ‘자갈치 아지매’를 보면 주요 의미를 전달하는 단어는 표준어를 쓰고 부사 감탄사 등은 부산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메시지를 효율적으로 전달한다”며 “여기에 호응하는 부산 시민의 언어생활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차철욱, 공윤경, 손영삼 교수는 지난해 8월 ‘1950, 60년대 대중가요 속의 부산 장소성’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6·25전쟁과 근대화 과정에서 부산에 대한 노래를 불렀던 사람들이 부산의 특정 장소를 어떻게 이해하고 느꼈는지를 연구했다. 노래 주제는 ‘이별’이 가장 많았다. ‘이별의 부산정거장’은 순정을 바친 경상도 아가씨를 두고 상경하는 서울 남자의 심정을 그린 작품이다. 이들은 “부산으로 몰려들었던 사람들은 영도다리, 남포동, 부산항, 용두산을 위안의 대상으로 여기며 부산 사람이 돼 갔다”며 “그들은 끊임없이 왕래가 많은 부산의 역동성과 개방성을 노래를 통해 체험했다”고 분석했다.
김동철 연구소장은 “같은 항구도시지만 토박이 문화가 상대적으로 많이 남아 있는 인천과 비교하면 부산의 개방성이 뚜렷이 드러난다”며 “지리적 특징과 결합해 일본 문화를 가장 먼저 받아들인 것도 이런 개방성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인의 입국과 교역을 위해 설치한 왜관은 역사적으로 부산에서 가장 오랫동안 남아있었다”며 “왜관은 동남아시아와 교류하는 공간으로서 오늘날 부산의 위상을 규정짓는 원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소는 ‘로컬리티 인문학’을 정립하기 위해 지역 문화 등도 새로운 각도에서 들여다보고 있다. 부산 달동네에 범람하는 거리 벽화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방법도 그중 하나다. 장희권 HK 교수는 “좁은 골목의 담벼락을 덮고 있는 정체 모를 그림들이 도심 번화가나 비싼 아파트가 있는 동네에서는 용납이 되겠느냐”며 “낡은 담을 노랗고 빨간 꽃그림으로 장식하는 주택환경개선사업은 그곳에 사는 사람의 존재성과 진정성을 무시하는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시도는 진정한 환경 개선이 아니라 ‘포장’에 불과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 연구소장은 “다양한 분야에서 도출된 부산의 특성을 로컬리티 인문학의 방법론으로 격상시키기 위해 특수성과 보편성에 관한 고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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