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사들의 광고 마케팅 경쟁이 뜨겁다. 지난해 하반기 KT가 '올레(olleh!)'를 앞세워 고루한 기업이미지를 신선하게 뒤바꾼 데 이어 최근엔 "'다 그래'를 뒤집어라"는 카피로 파격적인 기업 이미지까지 소비자들에게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에 자극받은 SKT는 '알파라이징(alpharising)'이란 신조어를 내세워 반전을 꾀하고 있다. 데이터통신과 스마트폰 전쟁으로 촉발된 통신시장 재편의 흐름이 자연스레 마케팅 대전으로 이어진 것.
통신사 광고는 '물량공세'이기 때문에 어떤 형태의 광고라도 시청자의 눈과 입에 달라붙게 하는 힘을 갖는다. 때문에 통신사는 눈에 보이지 않는 '통신서비스 권력' 이외에도 확고한 '마케팅 권력'으로 대중문화 자체를 선도해 올 수 있었다.
SKT의 '비비디바비디부~' 혹은 '생각대로 해!'가 대표적인 성공사례이다. KT의 '올레 열풍'과 '생각대로 T'의 이미지가 조금은 진부해진 시점에 나온 '알파라이징 시리즈'에 대한 관심이 뜨거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 "모두가 플러스 알파 되는 세상, 알파라이징"
"2010년 SK텔레콤은 우리가 만들 미래를 가장 잘 표현해 줄 단어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 서로 다른 세상이 만나 모두가 플러스알파 되는 세상을 만든다는 뜻의…"(CM 나레이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세상의 사전을 다 찾아봤다"는 SKT의 읊조림은 의미심장하다. 현재 전 세계 통신시장 자체가 애플과 구글이 촉발한 스마트폰 열풍으로 기존의 비즈니스모델 자체가 뒤바뀌는 시점이 아닌가. 그래서 국내 1등 이동통신 기업인 SKT의 파괴력 있는 '한 방'에 대한 기대감도 고조돼왔다.
게다가 '플러스알파'라는 한국인의 귀에 쏙 들어오는 어근을 포함한 신조어까지 등장하고 나니 시청자들은 '무언가 새로운 서비스에 대한 기대감'이 배가될 수밖에 없다.
그리스어로 첫 번째를 뜻하는 '알파(α)'와, 떠오르거나 무엇이 이루어진다는 의미의 'rise'가 합쳐 만들어진 알파라이징. 1편 런칭 편에 이어 개념 설명편인 2편 '흙α씨앗'과 3편 '돌α다윗'까지 공개되자 '알파라이징' 자체에 대한 이해도는 높아졌다는 평가다.
광고주 측은 '알파라이징'이 새로운 문화트렌드가 될 것임을 자신한다. SKT관계자는 "알파라이징은 개인, 기업, 사회의 모든 현상에 적용할 수 있는 단어로 향후 기술적 측면은 물론 가치나 철학 등 추상적인 영역까지 적용범위가 확장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광고에 대한 누리꾼들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알파라이징 CF'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 세상의 사전을 다 뒤져봐? 플러스알파?
"정말로 세상의 사전을 다 찾아봤나?" "그런데 하필 영어를 조합해서 신조어를 만들어야 했나." "플러스알파, 자체가 일본과 한국에서만 통용되는 재플니쉬(Japan+English) 인데…."
일부 비판을 위한 비판도 없지 않고, 1등 기업의 평가에 인색한 온라인의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알파라이징'에 대한 거부감은 예상 밖이다.
물론 광고에 대한 비난은 무관심보다 나은 '노이즈 마케팅' 속성까지 갖고 있기 때문에 섣불리 성공과 실패를 논하기 어렵다. 그러나 2등 기업의 대대적인 반격과 세계시장의 재편을 눈앞에 두고 나온 1등 기업의 마케팅 전략이기 때문에 누리꾼들의 비판을 외면하기는 힘들다.
우선 '영어식 신조어'에 대한 비판은 마케터들이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충고로 보인다.
그간에 존재한 '시너지(Synergy)'나 '협업(Cooperation)' '상생(相生)'이란 단어로는 새로운 마케팅 전략이 불가능하다는 것에는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새로움의 표현 방식이 '영어'여야 한다는 점에는 어떠한 공감대도 형성되지 못한 상황. 오히려 영어식 신조어는 유행에 뒤쳐져 보일 정도가 됐다.
게다가 '플러스알파'를 내세워 설명하고 있지만, 이 조차도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리라 기대한 것 같지는 않다. 실제 일본계 신조어이기 때문이다. 한 미국인은 '플러스알파'를 의미한다는 '알파라이징'이란 단어의 설명을 듣더니 "미국에서 플러스알파를 사용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마치 사이언스 픽션(science fiction) 소설이나 영화 제목 같은 느낌을 받을 뿐이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런 언어적 비판은 곁다리일 뿐이다. 근본적인 비판은 통신기업이 내비친 권위적인 태도를 겨냥한다.
방송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유행어'를 각인시키는 과정은 한두 번 노출로는 어림없는 일이다. 수많은 방송인들이 수십 개의 프로그램에서 수백 번 자신의 유행어를 반복해보지만 그 가운데 대중의 선택을 받는 표현은 1년에 5~6개를 넘지 못한다.
그런데 거의 독점 이익을 보장받은 통신사들은 물량공세를 통해 하루에만 10여 차례 가까이 신조어를 노출할 수 있는 환경을 보장받았다. 신조어를 통한 마케팅 자체가 통신사가 아니면 구상하지 못할 원대한 프로젝트인 셈이다.
그렇지 않아도 각종 영어식 신조어에 피곤한 현대인들에게 '소비자의 돈으로 만들어진 광고를, 게다가 신조어까지 학습해야 하는 부담'은 생각보다 크다. 게다가 광고 끝머리에 아름다운 목소리로 "(없는 단어를 만들었으니) 잘 기억해 주세요"라는 말까지 덧붙이니, 이런 암기독촉에는 견딜 재간이 없다.
3~4년 전만 해도 신기하게 여겼을 마케팅이지만 최근 상황은 급변했다. 소비자들은 주입식 광고에 불쾌감을 갖기 시작했다. 한 광고계 관계자는 "정보와 정서를 전달하면서 '잘 기억해 달라'는 독촉은 광고의 영역을 넘어 권력의 힘이 느껴질 수 있어 시청자들이 불쾌해 할 수 있다고 충고할 정도다.
● KT의 올레 CF도 처음엔 성차별 논란
이쯤에서 경쟁자 KT의 사례도 되짚어야 한다. '대박' 마케팅 사례로 거론되는 '올레~KT' 프로젝트도 처음부터 호평만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2009년 8월 화려한 그래픽이 아닌 투박한 애니메이션 광고로 시작한 올레 광고. 누리꾼들은 초기 공개된 10여 편 가운데 '백만장자 편'이나 '나무꾼 편' 그리고 '노인대학 편' 등에서 다분히 성(性) 차별적 요소가 존재하고 있다고 지적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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