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년간 중도좌파가 집권해온 칠레에서 억만장자 중도우파 정치인인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이 11일 취임했다. 재산이 12억 달러 정도인 그는 칠레에서 네 번째 부자다.
일자리 100만 개 창출과 연 6% 경제성장, 법질서 확립 등을 공약으로 내세워 국민의 선택을 받았지만 그가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는 단연 지진 피해 복구다. 20년 만에 찾아온 좌파에서 우파로의 정권교체와 친기업 정책에 대한 기대감은 어느새 지진 참사 소식에 묻히고 있다.
지난달 27일 발생한 리히터 규모 8.8의 강진 피해는 엄청나다. 500명 안팎이 숨졌고 150억 달러 이상의 경제적 피해가 발생했다. 이재민도 200만 명이 넘는다. 물러난 미첼 바첼레트 전 대통령의 말대로 완전 복구까지는 3, 4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돼 피녜라 대통령은 주어진 4년 임기 내내 지진 피해와 씨름해야 할 상황이다.
그는 이미 ‘재건 대통령’을 자임했다. 지진 피해를 본 지역의 주지사 5명을 새로 임명하는 자리에서 피녜라 대통령은 “우리는 ‘지진 정부’가 아닌 ‘재건 정부’가 될 것”이라고 굳은 의지를 밝혔다.
취임을 앞두고 발생한 강진은 그에게 불리하게만 작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연임 제한 규정 때문에 출마하지 못한 바첼레트 전 대통령의 인기가 무려 84%나 돼 후임자인 피녜라 대통령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었는데 “지진 초기 대응이 늦었다”는 비난 여론이 일면서 반사이익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군사독재 시절 고문을 당하는 등 군부에 거부감이 있는 좌파 대통령이 군대 투입을 36시간이나 지체하는 바람에 국민이 약탈 피해를 봤다는 것. 또 새로 출범한 우파 연립정부는 지진 피해지역에 투입된 군대가 치안 확보에 성공하면서 칠레 국민들에게 두려움으로 남아 있는 피노체트 군사독재(1990년 종식)의 망령을 잠재울 호기를 잡았다고 뉴욕타임스는 지적했다. 그러나 이 신문은 피녜라 대통령과 칠레 국민의 허니문 기간은 최소 120억 달러로 추정되는 재건사업 과정에서 특혜를 준 정황이 드러날 경우 예상외로 단명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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