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 유기까지 8~10시간 치밀하게 범행흔적 감추기
“만취” 주장 신빙성 떨어져…경찰, 오늘 현장검증 실시
이유리 양(13) 살해사건 피의자 김길태 씨(33)의 말문이 열리면서 사건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14일 “일어나니 시신이 있어 물탱크에 숨겼다”며 자백을 시작한 김 씨는 15일 이 사건의 핵심인 성폭행과 살해 혐의도 인정했다. 남은 것은 납치와 감금 혐의. 하지만 김 씨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여전히 입을 다물었다. 조사관들은 “재판에서 형량을 적게 받으려는 의도인지 계속 부인하고 있다”고 전했다.
○ 사건 당일, 목격자는 봤다.
자백, 직접 증거 외에 시신 유기 현장을 직접 보았거나 김 씨가 유기한 시신이 발견된 다음 날 인근에서 이를 지켜본 김 씨를 목격했다는 결정적인 목격자가 나와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첫 번째 목격자인 A 씨는 25일 오전 5시경 빨래를 걷으러 가던 중 물탱크(시신 발견 장소) 주변을 서성이는 30대 남자를 봤다. 갑자기 하얀 가루를 뿌리더니 돌 같은 것도 넣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사건 공개수배 전단을 보면서 김 씨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가 보복할 것 같아 뒤늦게 신고했다. A 씨는 “내가 주로 활동하는 시간이어서 정확하게 그 상황을 기억한다”고 말했다. 경찰은 A 씨를 중요 참고인이라고 했다. A 씨의 진술이 수사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이다. A 씨의 진술이라면 이 양이 집에서 사라진 지난달 24일 오후 7시 10분∼9시 이후 시신 유기까지 8∼10시간이 걸렸을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24일 살해한 뒤 다음 날 새벽까지 김 씨는 잠을 잤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시신 발견 다음 날인 7일 새벽, 이 양 살해 장소(무당집) 마당에 있던 김 씨를 봤다는 시민도 있었다. 사건 현장 인근에 사는 B 양(18)은 “지저분한 긴 머리에 회색 모자가 달린 티셔츠를 입은 30대 남자를 10분간 지켜보던 중 집 옆에 경찰이 순찰을 하자 숨는 모습을 보고 김 씨로 확신했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당시 B 양의 휴대전화가 꺼져 있어 더는 김 씨를 추격하지 못했다.
○ 김 씨 소주 주량 밝히는 게 관건
김 씨는 사건 당일 사건 현장 인근에서 소주 4, 5병을 마셨다고 진술했다. 평소 주량(소주 1병)보다 많이 마셨다는 게 김 씨의 주장이다. 하지만 그와 교도소 동료였던 C 씨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지난해 8월 김 씨가 3병까지 마셨지만 특별한 주사는 없었다. 주량도 그 정도는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씨의 주장에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시신 유기 과정 또한 술에 취한 우발적 범행이라고 보기 어려움만큼 치밀했다. 그는 “일어나 보니 이 양이 숨져 있어 옆집에 물탱크가 보여 시신을 옮겼다”고 진술했다. 시신을 버린 게 아니라 시멘트 가루에 물을 붓고 타일까지 동원했다. “술에 취했다”는 김 씨 진술의 신빙성이 떨어지는 부분이다. 경찰은 “사건 당시 김 씨가 술을 구입한 곳과 주량 이상의 술을 마셨을 때 행동 기억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김 씨가 술에 취한 나머지 ‘심신미약’ 상태에서 고의가 아닌 우발적인 범죄로 몰고 가려는 의도라는 가정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고의적인 ‘강간살인’이면 무기징역에서 최고 사형을 받을 수 있지만 우발적인 강간치사면 10년 이상 유기나 무기징역형으로 가벼워질 수 있다. 김 씨는 “술에 취해 이 양을 납치해 살해 장소로 끌고 간 기억은 없다”며 납치와 감금 혐의는 인정하지 않았다. 두 혐의를 인정하면 우발적인 게 아니라 계획적인 범죄였음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산=윤희각 기자 toto@donga.com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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