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승민은 “영광의 상처”를 가졌다. 오른쪽 다리에 남은 흉터. 언덕에서 구르다 나뭇가지에 쓸린 상처다.
18일 개봉한 영화 ‘무법자’(감독 김철한·제작 청강스토리)를 촬영하면서 얻은 “영광의 상처”이지만 이승민에게는 마음 한 켠 힘겨움의 과정으로 남아 있다.
‘무법자’는 잔혹한 ‘묻지마 살인’을 소재로 한 영화. 이승민은 그 처참한 피해자로 등장한다. 형사 역을 연기한 극중 감우성의 연민 속에 둘은 사랑을 느끼고 결국 그 결실을 맺지만 살인범의 잔혹한 폭력은 그녀를 그냥 놔두지 않는다.
이승민은 그래서 어느 작품에서보다 “내 근본적인 재질이 변한 건 아닐까” 싶을 만큼 실제로도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 하지만 그녀는 “더 처참함”에 대한 아쉬움도 남는다고 ‘태연히’ 말했다.
“여배우로서는 독특한 체험 아닌가. 오히려 행운이다. 그런 연기를, 그런 아픔을 언제 또 연기해볼 것인가. 그 만큼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미 전작 ‘비스티 보이즈’에서 “여배우로서” 만만치 않은 캐릭터를 소화한 그녀는 “다음 작품은 밝은 걸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어느새 “내 열정을 불러낼 수 있는 것이라면 열심히 할 것”이라는 결심으로 굳혀졌고 결국 ‘무법자’는 그녀의 새로운 무대가 됐다.
그러기까지 이승민은 지난 수년 동안 쉬지 않고 내달려왔다. 그저 “일이 밀려왔다”고 설명하지만 연기자로서 차근차근 준비되지 않은 아쉬움은 크기만 했다.
이런 그녀에게 지난해 연극 ‘민들레 바람되어’는 “내가 진짜인지, 아닌지 판가름나게 한 무대”였다. “역량이 부족하면 깨지고, 모자라는 부분이 있다면 채울 수 있는 계기”였다.
비로소 연기의 참맛을 깨닫게 될 즈음, 그녀는 그런 긴장감 속에 온통 쏟아부은 체력의 한계를 느꼈다.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할만큼 에너지가 빠져나갔다.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지만 힘이 소진된 몸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이젠 좀 쉬어야겠다”고 생각할 때 한 남자가 가슴 속으로 들어왔고 두 사람은 1월 결혼했다. 드라마 제작사 그룹에이트 송병준 대표가 그녀의 인생 동반자다.
이승민은 “결혼한 뒤 내 얼굴이 편안해졌다고 주위에서 말한다”면서 “든든한 내 편이, 무슨 일이든 이해해줄 내 편이 생겼다”며 웃었다. 남편 송 대표가 마치 “멘토 같은 역할을 해주는 사람, 나보다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소개한 그녀는 한때 독신주의를 고집했다. 하지만 지금의 남편을 만나면서 고집을 스스로 꺾었을 만큼 지극한 사랑에 푹 빠져 있어 보였다.
일상의 사랑과는 별개로 남편은 이승민에게 “연기에 대한 열정”을 다시 한 번 불어넣어줬다. 이승민은 드라마 제작자인 남편에게 “배우의 입장에서 배우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두 부부의 안팎 사랑은 그렇게 이어지며 이승민은 또 다른 인생을 이제 막 시작했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사진|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