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살아난 ‘일왕=신의 자손’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4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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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교과서 5종 모두 거론
2차대전 자국 피해만 강조
日전문가 “국수주의 강해져”

일본 문부과학성의 검정을 마친 초등학교 교과서는 독도의 자국영토 주장 외에도 일왕의 신격화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자국민이 당한 피해를 부각하는 등 보수우익적 색채가 진하게 드러났다. 일본 교과서의 우(右)편향적 기술은 일본 정부가 2008년 학습지도요령에서 애국심 교육을 강조한 결과다. 일각에서는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어린 나이에 반복 교육을 통한 애국심 주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31일 마이니치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이번에 검정을 통과한 초등학교 교과서 5종 모두 일왕이 신의 자손임을 암시하는 건국신화를 담고 새로 추가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교과서는 ‘신화로 전해지는 이야기이고 모두 진실은 아니다’라는 주석을 달고 있지만 니혼분쿄(日本文敎)출판의 교과서 2종 중 1종은 신화라는 사실을 명시하지 않은 채 ‘신의 자손이 천황이 되어 국가를 통일해간다’고 기술했다. 패전 직후인 1946년 1월 ‘일왕의 인간선언’ 이후 금기시해온 ‘일왕=신의 자손’이라는 주장이 부활한 것이다.

이와 함께 일왕의 통치가 영원히 이어지길 비는 내용의 일본 국가(國歌) ‘기미가요’도 음악교과서 5종 모두에 실렸으며 교이쿠(敎育)출판 교과서는 가사 내용에 대한 상세한 설명도 곁들였다. 일본 초등학교 교과서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을 일으킨 책임과 가해 사실보다는 오히려 자국민의 피해를 강조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미쓰무라(光村)도서의 교과서는 도쿄대공습이나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투하 사실을 다루면서 미군의 공격임을 강조했다. 일부 교과서는 1944년 8월 미군의 어뢰 공격으로 격침돼 아동 등 1000여 명이 희생됐다는 ‘쓰시마마루(大馬丸) 사건’을 새로 소개하기도 했다. 반면 ‘미군의 공격에 쫓긴 오키나와 주민이 집단 자살했다’는 내용을 새로 추가하면서 집단자살에 일본군이 관여했다는 사실은 제외해 균형감을 잃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 전문가들은 교과서의 보수우익화 경향을 국민교육 강화를 통해 애국심을 높이는 방편으로 풀이했다. 류코쿠대 권오정 교수(교육학)는 “일본이 정권교체가 됐다고 해도 지도층 인사들에 널리 퍼져있는 보수우익 성향은 더 강해지는 느낌”이라며 “장기불황으로 자신감을 잃어가면서 자유주의적 사고 대신 국수주의적 담론이 강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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