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용 UH-40 헬기가 경기 평택시 포승읍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 착륙하자마자 어머니의 통곡 소리가 커졌다. 3일 오후 6시경 천안함 침몰사건 실종자 46명 중 백령도 침몰 현장의 함미 부분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희생자 남기훈 상사(36·사진)의 시신은 어머니의 통곡 소리와 함께 4일 오전 9시 40분경 해군2함대로 이송됐다.
헬기가 도착하기만 기다리던 유가족 20여 명도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아내 지영신 씨(36)는 흐느끼며 손수건으로 조용히 눈물만 훔쳤다. 초등학교 6학년, 4학년 그리고 세 살짜리 아들 3형제는 울고 있는 엄마를 말없이 지켜봤다. 운구병 6명이 하얀 천에 싸인 시신을 옮기자 아버지는 시신을 쓰다듬으며 오열한 다음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이날 남 상사의 시신은 가족 검안이 끝난 후 부대 안에 마련된 임시 안치시설인 냉동 컨테이너 안에 안치됐다.
남 상사는 1974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전북 완주 삼례공고를 졸업했다. 1994년 해군 부사관으로 임관한 이후 15년 동안 해군 사격통제 분야에서만 근무한 베테랑 군인이었다.
가족들은 그를 ‘믿음직한 큰형’으로 기억했다. 남 상사의 동생 기민 씨(32)는 “7년 전 큰형이 병으로 돌아가신 후 형이 집안을 혼자서 챙겨 왔다”고 말했다. 신장병을 앓는 아버지의 병원비도, 이미 작고한 큰형의 병원비도 모두 혼자서 감당했다. 기민 씨는 “번 돈은 모두 어머니께 드리고 본인은 맨몸으로 돈을 벌려고 군대에 들어갔는데 그만 화를 당했다”며 울었다. 남 상사는 2007년 셋째 아이를 낳은 후 살림이 빠듯해지자 수당이 많은 천안함 근무를 자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 상사는 몇 년 전부터 준위 진급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군내 ‘전문가’인 준위 계급을 달기 위해 2년 동안 밤마다 동영상 강의를 보며 시험 준비를 했다. 처남 지모 씨(32)는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그 계급장도 달지 못하고 가버렸다”며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부인과 세 아들에게는 자상한 가장이었다. 경기 평택시 해군아파트 그의 집 거실에는 십자수가 걸려 있었다. 가로 40cm, 세로 30cm 크기의 이 십자수는 결혼 4주년을 맞아 2002년 남 상사가 직접 수놓아 부인에게 선물한 것이다. 십자수 뒷면에는 ‘결혼 4주년을 맞이하여 사랑하는 나의 아내 영신에게’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출동으로 바쁜 와중에 7개월 넘게 공들여 완성한 ‘작품’이다. 아이가 셋이나 됐지만 부부는 아침에 헤어질 때마다 ‘뽀뽀’를 했다고 한다. 처남 지 씨는 “그렇게 자상했고 금슬이 좋았는데 아이 셋을 남기고 먼저 갈 줄 몰랐다”고 말했다.
남 상사는 큰아들이 유치원에 다닐 때는 크리스마스 전에 유치원 아이들이 모두 나눠먹을 수 있을 만큼 많은 사탕을 사 준 적도 있다. 동네 아이들은 남 상사를 ‘만날 때마다 항상 자상하게 인사해 주시는 아저씨’로 기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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