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법재판소(ICJ)는 코르푸 해협 사건 판결에서 알바니아가 독일제 기뢰를 설치했다는 영국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ICJ가 알바니아에 배상 책임을 물은 이유는 자국 해안 부근의 기뢰 설치에 대한 고지 책임을 위반했기 때문이다. 이 판례를 통해 천안함이 기뢰 또는 어뢰 때문에 침몰한 것으로 밝혀지더라도 그 어뢰나 기뢰가 누구 것인지 명백히 법적으로 밝혀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다.
만약 천안함이 침몰한 해역에서 중국제 어뢰 파편이 발견됐다고 가정하면 비록 어뢰에 ‘Made In China(중국제)’라고 씌어 있더라도 ‘중국제 어뢰를 많이 수입한 제3국의 소행’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제3국으로서는 “중국이 어뢰를 발사했을 수도 있고, 또 중국제 무기 쓰는 나라가 우리밖에 없느냐”며 발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ICJ에서 가려보자고 제안할 수 있다. 그러나 범행을 부인하는 제3국이 이에 응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중앙대 법대 이상돈 교수는 “당사자 중 한쪽이 동의하지 않으면 ICJ 법정이 시작될 수도 없다”고 말했다.
북한이 개량해 만든 것이 명백한 SAET 53-56 어뢰의 파편이 나와도 마찬가지다. 북한이 “우리가 수출한 무기 같다”며 ICJ로 가기를 거부한다면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가해국이 인정하지 않으면 유엔 제재 또는 무력 보복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서울시립대 법학부 이창위 교수는 “사법적 해결이 불가능할 경우 유엔의 결의를 통해 가해국에 제재를 가하고 가해국의 인정을 이끌어내는 외교적 방법과 우리가 자위권을 행사해 무력으로 보복하는 조치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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