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은 평소에도 잘 웃지 않는다. 8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농협중앙회 11층 회장실에서 가진 인터뷰 자리에서도 그랬다. 사진 촬영을 할 때 주위에서 “좀 웃으시라”고 하자 무뚝뚝하게 “웃을 일이 있어야 웃지”라고 대답했다. 직전에 방문했던 경남 함안군의 수박 농가를 떠올렸던 모양이다. 최 회장은 “올해 일조량이 부족해 잎만 무성하고 열매는 하나도 없더라”면서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경제-신용 분리는 지금해야
안늦어 중앙에 감사팀 신설 ‘곪은곳’ 도려내 임기 마치는대로 고향으로 떠날 것
그는 “정부에서 중소기업이나 서민을 지원한다는 말은 많이 하는데 농민을 돕겠다는 말은 없다”며 “농협이 더 열심히 뛰어서 도와주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007년 12월 회장에 취임한 후 그는 인터뷰를 고사해 왔다. 선거를 통해 선출된 전임 회장들이 줄줄이 구속된 가운데 언론에 나서는 게 부담스러웠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날 인터뷰에선 다소 민감한 질문에도 적극적으로 설명하는 모습이었다.
―농협이 농민들을 도와야 한다고 했는데 지난해 얼마나 지원했습니까.
“영농자재를 무상으로 제공한 것과 교육을 포함해 1조203억 원가량 했습니다. 농협이 돈놀이를 한다고 하지만 농민들에게는 자금을 무이자로 빌려주고 있습니다. 농민들이 힘이 있어야 올해 실패해도 다음 해에 또 농사를 지을 것 아닙니까.”
―농민 자녀들에게 장학금도 많이 지원하지요.
“농민들의 가장 큰 고민이 자녀 대학 등록금입니다. 올해는 400억 원 정도로 학생 5만1000명을 돕는데 앞으로 액수를 더 늘려갈 겁니다. 서울 강북구에 기숙사 ‘NH장학관’을 짓는 것도 농민 자녀들이 어려움 없이 학교를 다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400억 원이면 금액이 상당히 큽니다.
“우리가 지난해 4500억 원 흑자를 냈는데 각종 사회공헌 활동에 1조 원이 넘는 돈을 썼습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돈 벌어서 어디 사회에 환원합디까? 농민들에게는 더더욱 안 해요. 농촌에 시집온 외국인 배우자들에게 고향 방문하라고 비행기 표 끊어주고 선물 살 돈까지 주는 곳은 우리밖에 없습니다.”
최 회장은 그런데도 국민이 농협을 ‘부패집단’으로 보는 데 대해 서운하다고 말했다.
―농협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썩 곱지는 않습니다만….
“농협이 하도 두드려 맞아 명태가 됐다가 동태가 됐다가 합니다. 하지만 따져봅시다. 우리 사업장이 5400여 개 되는데 통계를 내보면 1개 사업장이 13년에 한 번 정도 사고를 내는 걸로 나옵니다. 꼭 많다고 할 수는 없는 수치입니다. 하지만 국민이 ‘농협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까지 노력할 겁니다.”
―어떤 노력을 하고 계신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죠.
“문제를 일으킨 조합은 각종 혜택에서 무조건 배제하고 있습니다. 비리가 있어도 예전엔 어물쩍 덮어주고 넘어갔지만 지금은 적발하는 즉시 고발하고, 정도가 심하면 당국에 사법처리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감사시스템도 중요할 텐데요.
“자회사만 해도 자기들끼리 감사를 합니다. 그래서 중앙회에 감사팀을 신설해 3개월 만에 80명을 적발해 문책했습니다. 목우촌이 누적적자만 1300억 원에 달했는데 중앙에서 감사팀을 파견해 곪은 곳은 도려내고 고칠 것은 고쳤더니 당장 지난해 30억 원 흑자를 냈어요.”
농협 조직이 가진 문제점을 이야기하는 것도 거리낌이 없었다. 최 회장은 “과거 농협은 일만 잘한다고 승진하는 조직은 아니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승진했습니까.
“일보다도 줄을 잘 서야 하는 분위기, 금품 갖다 주고 승진을 청탁하는 분위기였지요. 이를 싹 없애고 일만 잘하면 승진할 수 있도록 할 겁니다. 자회사 사장은 유능하면 연임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농협도 민간기업만큼 잘할 수 있는 조직입니다.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분리하는 것도 그래서 하는 겁니다.”
―신경 분리 문제가 그리 쉽지는 않아 보입니다만….
“2017년에 하기로 돼 있던 것을 우리가 나서서 5년 앞당겼습니다. 지금 뛰어들면 1, 2년 안에 민간기업을 따라잡을 수 있지만 더 늦어지면 그만큼 힘들어진다고 봅니다. 건실한 은행을 만들고 하나로마트와 목우촌 등 경제사업장의 경쟁력을 높이면 그만큼 농민과 국민에게 큰 혜택으로 돌아갈 겁니다.”
―신경분리안의 내용을 보면 정부가 생각하는 것과 다소 달라 보이는데요.
“정부 지원금 문제, 분리에 따른 조세 문제, 보험 문제가 핵심이죠. 농협도 노력하겠지만 정부가 조금만 도와주면 더 잘될 겁니다. 무조건 정부에 손을 벌리겠다는 건 아니고, 실사를 통해 농협이 재정 건전성을 유지할 정도만 도와 달라는 겁니다.”
―4월 국회에서는 통과가 될까요.
“지금도 정부와 머리 맞대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농협의 의지가 이만큼 높고, 당사자들끼리 열심히 하고 있으니 국회에서도 통과시켜 주지 않겠습니까. 회장으로 있으면서 부정 없는 농협을 만들고 신경 분리를 제대로 해 농협이 최고의 조직이 되도록 하는 것, 그리고 깨끗하게 물러나는 것, 이 세 가지가 제 목표입니다.”
―앞선 회장들은 깨끗하게 물러나지 못했죠.
“그래서 나는 갈 때 깨끗하게 가겠다는 겁니다. 나마저 잘못하면 또 앞선 세 분의 이름이 언급되고, 농협에 대한 인식도 나빠지지 않겠습니까.”
―가끔 대통령을 만나십니까(최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동지상고 후배다).
“회의 자리에서 가끔 뵙니다. 그때마다 제게 소신껏 하고, 나쁜 짓을 하지 말라는 두 가지를 늘 강조하십니다. 임기가 2년 정도 남았는데 잘 마무리하고 퇴임해서 고향으로 갈 겁니다.”
―고향으로 가신다고요.
“2만 원만 있으면 친구들 사이에서 왕 대접을 받을 수 있습니다. 농협 하나로마트에서 닭 한 마리랑 소주 서너 병 살 수 있거든요(허허).”
인터뷰 내내 굳어 있던 얼굴에 그제야 웃음이 감돌았다.
“농협 회장으로서 잘못한 것도 없고 정치 같은 다른 일에도 관심이 없다면 굳이 서울에 있을 필요도, 있어야 할 이유도 없는 것 아닙니까.”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최원병 회장
-1946년 경북 경주 출생 -1965년 포항 동지상고 졸업 -2008년 위덕대 경영대학원 졸업 -1991∼2006년 경북도의회 4·5·6·7대 의원 (2002∼2004년 경북도의회 의장) -2004∼2007년 농협미곡처리장운영 전국협의 회장 -2007년 12월∼ 농협중앙회 회장 -2009년∼ 국제협동조합농업기구(ICAO)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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