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북스] 이계안 민주당 전 의원 인터뷰

  • 입력 2010년 4월 21일 15시 00분


이계안 민주당 전 의원.
이계안 민주당 전 의원.
'현대자동차 사장, 17대 국회의원, 그러나 아직도 꿈이 가득해 발이 쉬지 못하는 대한민국 청년'.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이계안(58) 민주당 전 의원은 트위터에 이렇게 자기 소개글을 올려놓았다.

이 전 의원은 여의도 정가에서 조금 독특한 정치인으로 분류된다. 대기업 CEO 출신으로 열린우리당을 택해 2004년 17대 총선에 출마했다. 고 정주영 회장의 신임을 얻은 전문경영인이었지만 현대건설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과는 전혀 다른 정치 감각을 갖고 있다.

정계데뷔 이후엔 소속정당 내에서도 기존 정치인들과는 결이 다른 행보를 보여 왔다. 막연한 거대담론이 아닌 '출생률' '환경' '일자리' 등 생활정치를 주장했다. 진보 정당 소속 정치인으로는 드물게 돈까지 많은 정치인이라는 점도 화젯거리다. 모아놓은 돈(100억대라 한다)도 많고 이력도 탄탄한 사람이 열린우리당에서 데뷔한 저의가 의심스럽다는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 우석훈 교수와 함께 내놓은 독특한 출사표

그는 18대 총선 불출마 선언과 하버드 대학(케네디 스쿨) 유학 이후 민주당원으로 정계에 복귀했다. 정책 연구를 하는 '2.1 연구소'를 개소하고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하더니 한국사회에서 진보적 담론을 선보여 온 우석훈(41) 교수와 '진보를 꿈꾸는 CEO'(레디앙 펴냄)라는 책을 공동 출간했다.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은 홍보용으로 책을 많이들 낸다. 민주당 서울시장 예비후보 신분인 이계안 전 의원은 특이하게도 자서전을 써줄 대필자를 찾지 않고 공저자로 우 교수를 지목했다. 출판사도 한국에서 가장 왼쪽으로 분류되는 곳이다.

우 교수는 책에서 "부자 이계안, 운인가? 재수인가?", "정말 고 정주영 회장의 신임을 받은 것 맞아?"라는 식의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여태껏 정치인이 가장 금기시해온 '한국 사회의 돈'이다. '부(富)를 어떻게 축적하고 활용할 것인가'라는 문제 제기이다.

그러나 어려운 질문과 달리 그의 대답은 비교적 명쾌하다.

"돈이란 가장 더러운 상전이며, 가장 비싼 종? 돈은 상전이 아니다 밑에 놓고 써라."

저자는 현대그룹 종합기획실장, 현대자동차 최연소 사장, 현대캐피탈 회장을 지냈다. '재벌'이라고 불리는 한국의 대기업 집단과 매우 가까운 인물이다. 이 같은 이력은 재벌 체제를 비판할 수 있는 유리한 지점을 제공한다. 공저자로 나선 40대 초반의 진보 경제학자는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한국 사회를 비판하고 해부하는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 왜 시장주의자가 진보를 꿈꾸고 있을까?

서두는 '돈에 영혼을 빼앗기지 않고 돈을 버는 방법'으로 시작한다. 이어 30년에 가까운 체험론적 CEO론, 기업관, 기업문화를 이야기하다 돈, 승진, 정치, 재벌(현대와 삼성), 언론 등 민감한 주제들을 건드리기 시작한다.

대한민국 부의 창출에 크게 공헌했던 현대그룹 오너 집안의 내밀한 얘기도 흥미롭게 펼쳐진다. 고 정주영 전 회장이 대통령 선거에 뛰어든 배경과 뒤이은 아들 정몽준의 대권 도전 등 한국 사회에서의 재벌과 정계의 내밀한 관계를 '핵심 관계자'의 시각에서 서술했다.

돈에 대한 철학을 놓고 저자들이 팽팽하게 대립하는 속에서 자연스럽게 '인간 이계안'의 모습이 드러난다.

장기 복역수 아버지를 둔 이계안의 가난했던 젊은 시절, 한신대에서 치열하게 진보운동을 했던 여동생 이야기, 그리고 연좌제에 걸린 저자가 현대에 입사할 수 있었던 배경, '승진의 달인'이 밝히는 승진의 기술, 부동산 투기를 하지 않고 큰 부자가 되는 법….

이 전 의원은 자기 삶 속에 투영된 한국경제 체제의 불합리와 모순을 우 교수와 함께 지적하고 오늘날의 한국의 시장경제가 자유시장 경제체제에서 상당히 멀어졌음을 비판하며 "이를 극복해야만 대한민국 사회가 발전할 수 있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 저자 이계안 인터뷰

- 요즘 트위터에 열심이던데…

"맞다. 마치 세상을 새롭게 보는 윈도우 같아 흥미롭다. 특히 정치인의 입장에서는 '저잣거리'에 나가 사람들을 직접 대면하는 것 같은 효과가 있어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문제는 여당이나 선거관리위원회나 이런 새로운 미디어를 법률적 관점에서 재단하려는 것이다. 법이 시대를 앞서갈 수는 없는 일인데 안타깝다."

- 정치 휴가를 내고 케네디 스쿨을 다녀온 성과가 있다면.

"안목이 틔었다고, 내가 믿고 있던 가치에도 확신이 생겼다. '기후변화'나 '인구통계'에 대한 것이 대표적인데…. 예전에 현대자동차에서 스페인에 공장을 세우려고 조사를 해본 적이 있다. 그런데 모든 컨설턴트들이 스페인 투자를 말리고 나선 것이다. 그 이유가 '스페인은 인구증가가 정체된 나라'라는 것이었다. 출생률이 뒷받침 안 되면 경제성장이 불가능하다는 교훈을 얻었다. 그런데 그런 나쁜 모형을 우리나라가 뒤따라가고 있다. 그래서 돌아와 '2.1 연구소'부터 세웠다."

- 2.1? 조금 낯선 표현인데…

"우리나라의 공식 출산율이 '1.2(명)'이다. 이를 '2.1(명)'으로 늘리자는 게 핵심 의제다. 교육정책 복지정책 주거정책 등 모든 정치와 행정의 목표가 '아이 낳기 좋은 환경'으로 수렴될 수 있다. 복지국가의 모델을 출산율로 바꿔 홍보해 보자는 생각에서 지은 이름이다."

- 청년들의 일자리 부족도 출산율 저하의 큰 원인이 되고 있다.

"그렇다. 오늘날 시급한 일은 일자리 창출이다. 청년 벤처기업이 싹을 틔울 수 있게 시장 환경을 만들고 중소기업에도 인재가 몰릴 수 있게 처우개선을 해야 한다. 과거 대기업이 공급과 수요를 독점하던 시대는 끝났다. 대표적인 사례가 애플의 아이폰이 아닌가. 애플이 수많은 산업을 창출할 수 있게 플랫폼이 됐다면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벤처와 중소기업을 줄 세우는 인하우스 영업에 그치고 있다. 보스턴 같이 세계적인 대학과 인재들이 집중된 도시는 자체적으로 지식산업이 발전할 수 있다. 그런데 인재와 권력이 집중된 서울은 권력에 취해 그런 기능을 못하고 있는 게 아쉬울 뿐이다."

정호재 기자demia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