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그러진 ‘일자리 나누기’

  • 동아닷컴
  • 입력 2010년 4월 22일 03시 00분


공공기관 151곳 대졸 초임만 깎고 1명도 안뽑아

정부가 지난해 2월부터 추진한 ‘공공기관 대졸 초임 삭감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정책이 일자리 나누기 없이 대졸 초임을 깎는 데만 주로 활용된 것으로 밝혀졌다.

21일 동아일보와 한나라당 김성식 의원실이 이 정책 적용 대상인 297개 공공기관(공기업과 준정부기관 등) 가운데 자료를 제공한 246곳의 지난해 채용실적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이들 공공기관은 모두 대졸 초임을 4∼26%(약 100만∼1000만 원) 삭감했다. 하지만 대졸 신입사원을 뽑은 곳은 조사 대상 기관의 38.6%인 95곳(1906명)에 그쳤다. 나머지 151곳(61.4%)은 대졸 신입사원을 단 한 명도 채용하지 않았다. 실제로 인천국제공항공사는 대졸 신입사원의 연봉을 4067만 원에서 3000만 원으로 깎았지만 대졸 신입사원은 한 명도 뽑지 않았다. 3732만 원에서 2866만 원으로 깎은 한국마사회도 대졸자를 채용하지 않았다.

대졸 신입사원을 채용한 95곳 가운데 삭감된 임금만큼 남은 여유 재원을 일자리 나누기에 활용한 곳도 근로복지공단 등 53곳(1255명)에 그쳤다. 나머지 42곳은 이 돈을 활용하지 않거나 자체사업 재투자 등 엉뚱한 곳에 사용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친 지난해 2월 정부는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제8차 비상경제 대책회의’를 열고 297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대졸 초임을 낮추는 대신 일자리를 늘리는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이 정책은 “신입사원에게만 고통 분담을 요구한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일자리 나누기’가 더 중요하다는 대의명분 때문에 전격 시행됐다. 김 의원은 “재정부가 대졸 초임 삭감으로 발생한 여유 재원을 일자리 나누기에 활용하겠다고 했지만 당초 취지와는 동떨어진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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