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권희]일자리 나누기 속임수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4월 22일 03시 00분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선정한 작년 고용시장 10대 뉴스 중 첫 번째는 잡 셰어링(일자리 나누기), 두 번째는 청년인턴이었다. 일자리 나누기는 이명박 대통령과 경제장관들의 역점사업이다. 이 대통령은 작년 1, 2월 비상경제대책회의 때마다 ‘고통분담 차원의 잡 셰어링’을 강조했다. 정부는 공기업과 금융기관에 지나치게 높은 대졸초임을 깎아 마련한 재원으로 추가 채용을 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1년여가 지난 지금 일자리 나누기는 빛깔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았음이 드러나고 있다.

▷본보가 한나라당 김성식 의원실과 함께 246개 공공기관을 점검해보니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대졸초임은 4∼26% 내렸지만 대졸 신입사원 채용은 전체의 39%인 95곳, 1906명에 불과했다. 전체의 61%인 151곳은 대졸초임을 깎고도 아예 채용을 하지 않았다. 신입사원들은 반 강제로 고통을 분담했는데 여유재원은 약속대로 고용 확대로 들어가지 않고 사업비 등으로 쓰였다. 공기업과 정부가 합작해 취업 희망자들을 속인 것이다.

▷일부 대학생은 애초부터 각종 웹사이트에 “임시방편으로 될까” 또는 “인턴만 늘어날 것”이라며 불신을 표시했다. 나쁜 예측은 다 맞았다. 이 대통령이 일자리 해법으로 청년인턴을 강조한 뒤 공기업 민간기업을 가리지 않고 인턴 붐이 불었다. 작년 942개 상장기업은 전년보다 신입사원 채용을 6% 줄였지만 인턴채용(211개사)은 무려 191% 늘렸다. 기업들은 올해도 인턴을 작년보다 약간 늘려 뽑을 계획이다. 인턴은 6개월 내지 1년 동안 일을 배우다 그만두는 일자리다. 결국 기업이 대졸초임을 깎아 만든 재원으로 임시직 같은 일자리만 대거 만들어낸 셈이다.

▷작년 기획재정부는 297개 공기업의 대졸초임 삭감으로 인턴 등 1000개가량의 일자리를 더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행정안전부는 97개 지방자치단체와 지방공기업의 잡 셰어링으로 3만4000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좋은 일자리를 많이 공급할 것처럼 국민의 기대를 잔뜩 부풀려놓은 것이다. “일자리 나누기를 우리 사회가 가져가야 할 시대정신으로 이끌어가자”고 외쳤던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무슨 변명이라도 해보기 바란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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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추천 많은 댓글

  • 2010-04-22 10:19:04

    따끔한 지적이다. 윤장관이 전에 토로했듯이 '혼'을 지키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결과가 이러니, 지금부터라도 혼을 찾도록 힘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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