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후 인천 강화군 강화종합병원 영안실. 구제역으로 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우던 한우 39마리를 한꺼번에 도살처분한 슬픔에 전날 하천에 몸을 던져 숨진 여성 농민 석모 씨(52)의 문상을 위해 영안실을 찾은 동네 주민들도 큰 슬픔에 빠졌다.
강화군 선원면사무소에 따르면 석 씨와 남편(54)은 10여 년 전부터 한우를 키워 왔다. 석 씨 부부는 논농사를 지으면서 자식과 손자처럼 소를 사랑했다. 하지만 8일 구제역이 발생하면서 선원면 91개 축산농사를 공포에 떨게 했다. 석 씨 부부도 직선거리로 2km 떨어진 선원면 금월리에서 첫 구제역이 발생한 뒤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밤낮으로 방역에 힘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반경 3km 안의 모든 소, 돼지, 사슴, 염소에 대한 도살처분 지시가 내려지면서 13일 자식 같은 소들을 땅에 묻어야 했다. 결국 석 씨는 슬픔을 이기지 못한 채 신변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1일 오후 3시경 강화군 선원면 냉정리 앞 삼동함천에서 석 씨가 숨진 채 물 위에 떠 있는 것을 주민 윤모 씨(54) 부자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유가족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석 씨가 소들을 모두 잃은 뒤 우울증에 시달려 왔다고 밝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3일 오전 5시경에는 석 씨 집에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해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화재 당시 집에는 석 씨 부부가 있었지만 밖으로 피해 무사했다. 유족들은 경찰 조사에서 “평소 소를 자식처럼 끔찍이도 아꼈는데 도살처분돼 땅에 묻히는 처참한 광경을 지켜본 뒤 충격이 컸던 것 같다”고 밝혔다.
강화군 선원면 관계자는 “이번 도살처분으로 선원면에는 단 한 마리의 소, 돼지도 없다”며 “지금 농민들에게 어떤 위로의 말로도 슬픔을 달래주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번 구제역으로 자식 같은 가축을 도살처분한 농민에 대한 신속하고 실질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인천 강화군 관계자는 “축산농가 대부분이 시설투자 및 사료 값으로 최소 수억 원의 빚을 지고 있는 상황에서 전 재산과 다름없는 가축을 도살처분해 허탈감과 함께 대출금 상환이라는 현실적인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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