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cm그녀, 3년새 11좌 가볍게 오른 ‘철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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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28일 03시 00분


■ 오은선이 걸어온 길

11세때 인수봉 보고 꿈 키워… 1997년 8000m급 첫 등정
2006년 7대륙 최고봉 올라… 2008년 8463m 무산소 등정

키 155cm. 오은선(44·블랙야크)은 작다. 여성 최초 히말라야 14좌 완등의 경쟁자였던 스페인의 에두르네 파사반(180cm) 옆에 서면 꼬마 같다. 그는 어릴 때부터 크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거의 없다. 얼굴도 별로 예쁜 편이 아니다. 오은선은 예전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고등학교 때 별명이 오랑우탄이었다. 성이 오씨인 데다 생김새도 비슷했다. 그나마 지금은 많이 나아진 거다”라며 웃었다.

오은선은 어릴 때부터 산에 끌렸다. 서울 중곡초등학교 5학년 때 가족들과 나들이 가던 중 북한산 인수봉을 봤다. 11세 소녀의 눈엔 웅장한 거벽이었고 언젠가 오르고픈 동경의 대상이 됐다. 수원대 1학년 때 산악부에 들어가 2학년 때 인수봉을 찾았다. 처음에는 그저 텐트만 지켰다. 인수봉은 다시 그를 불렀고 오은선은 바위를 오르기 시작했다.

오은선은 수원대 졸업 후에도 주말이면 산을 찾았다. 그는 좋아하는 산에 가기 위해 평일에는 더욱 열심히 살아야 했다. 컴퓨터 학원 강사, 학습지 교사 등 다양한 일을 했고 음식점을 직접 꾸리기도 했다. 그는 “내가 스스로 밥벌이를 하면서 산에 간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살았다”고 말했다.

오은선이 처음 히말라야와 연을 맺은 건 1993년 에베레스트 한국 여성 원정대에 참가하면서부터이다. 그는 아쉽게도 정상 공격조에 속하지 못했다. 하지만 사방을 둘러싼 만년설은 그의 몸과 마음을 휘감았다. 그때부터 히말라야는 오은선에게 아련한 그리움이 됐다.

그는 1997년 7월 가셰르브룸Ⅱ(8035m)를 무산소로 등정하며 처음으로 히말라야 8000m 이상 고봉 등정자에 이름을 올렸다. 오은선은 “그때 너무 힘들어서 다시는 고산 등반을 안 하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그의 각오는 오래가지 않았다.

오은선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히말라야를 포함해 세계 곳곳의 산들을 찾아 다녔다. 2004년 5월에는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50m) 등정에 성공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자그마한 체구의 여성이 불과 몇 년 만에 국내외의 주목을 받는 인물이 될 줄은 오은선 자신도 몰랐다.

2006년 12월 한국 여성 최초로 7대륙 최고봉 등정에 성공한 그는 이듬해 7월 K2(8611m)도 한국 여성으로는 처음 올랐다. 그는 K2 등정을 마치고 히말라야 8000m 14좌 완등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8년 5월 무산소로 마칼루(8463m) 정상을 밟았다. 그는 “마칼루 등정이 큰 전환점이었다. 그 전까지 무산소로 오른 산은 8100m 내외였는데 8400m 이상 고봉을 무산소로 오르니 자신감이 많이 생겼다”고 했다. 그때부터 그는 거칠 것이 없었다. 그해 4개, 2009년 4개의 히말라야 고봉을 오르며 단숨에 여성 최초 히말라야 14좌 완등의 선두주자가 됐다.

그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지난해 7월에는 낭가파르바트(8126m) 등정 후 경쟁자이자 동료였던 고미영 씨를 잃었다. 지난해 말에는 5월 등정한 칸첸중가(8586m)가 미등정 논란에 휩싸이며 곤혹을 치렀다.

크고 작은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그가 역사의 주인공으로 선 데는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는 의지’가 바탕이 됐다. 155cm의 오은선은 지금 누구보다 크다. 그의 얼굴도 주름살만 늘었을 뿐 어느덧 아름다워졌다.

안나푸르나=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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