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7.4m. 계방산은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덕유산에 이어 국내 다섯 번째로 높은 산이다. 당연히 차령산맥에서 가장 높다. 그러나 그 높이와 풍광에도 불구하고 인접한 오대산 명성에 가려져 있다. 산은 높되 명성은 낮고, 산세는 수려하되 뽐내지 않는다.
강원 평창군 용평면과 홍천군 내면에 걸쳐 있는 계방산을 찾았다. 산 아래는 이미 봄이 왔건만 계방산은 아직 봄맞이 채비가 안 됐나 보다. 산 정상에는 아직도 눈이 남아있고 바람도 제법 세찼다. 나무들도 추위에 떨고 있는 듯했다. 계방산 정상에서는 사방으로 겹겹이 둘러싼 산들이 보인다. 날씨만 좋으면 인접한 오대산뿐 아니라 동쪽으로 설악산과 대관령, 서쪽으로 회기산과 태기산까지 선명하게 보인다고 한다. 계방산의 성수기는 겨울이다. 능선을 따라 형성된 울창한 원시림이 계절마다 색다른 멋을 자아내지만 주목군락 등이 연출하는 겨울철 설경이 단연 백미다. 또 해발 1089m 지점인 운두령까지 차로 간 뒤 산행을 하면 정상까지 쉬엄쉬엄 2시간이면 오를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계방산은 설경을 구경하러 오는 등산객들로 북적인다. 등산객들의 입소문이 퍼지면서 약 10년 전부터 증가 추세다. 주민들에 따르면 겨울철 주말과 공휴일이면 관광버스만 하루 150∼200대 찾아온다. 운두령에서 마을로 이어지는 도로변이 온통 주차장으로 변한다. 여름에는 수려한 계곡, 가을에는 오색 단풍을 보러 오는 이들이 많다. 계방산마을에서 송어회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는 나용균 노동리 이장(41)은 “계방산의 매력은 중간적인 위치에 있다”고 말한다. 전문 산악인이 오르기엔 다소 아쉽고, 초보 등산인에겐 조금 벅차다는 뜻이다.
계방산은 높은 산 구석구석, 깊은 골 여기저기에 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산에 칡이 드문 것과 관련한 전설도 흥미롭다. 산신령이 용마를 타고 달리다가 칡넝쿨에 걸려 넘어지자 화가 나 부적을 써서 산에 던진 뒤 칡이 없어졌다는 것. 1968년 11월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의 이승복 군이 무장공비들에게 변을 당한 곳도 바로 이곳이다. 이 군은 당시 속사초교 계방분교 2학년이었다.
계방산마을은 용평면 노동리와 속사1, 2리가 해당된다. 노동리에는 상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많고 속사1, 2리에는 농민이 많다. 해발 700m의 고지대답게 고랭지 배추와 감자를 주로 재배한다. 예로부터 계방산에서는 산채와 약초가 많이 나 부업 또는 취미 삼아 심마니 일을 하는 주민도 상당수 있다. 요즘도 수십 년 된 산삼 10뿌리 정도는 매년 발견되고 있다.
계방산 등산은 초보자에겐 운두령∼정상 4.1km코스가 적당하다. 이 코스가 조금 아쉽다면 노동리 아래삼거리에서 정상까지 오르는 4.8km 노선이 괜찮다. 하산 후엔 도로를 따라 줄지어 서 있는 송어횟집에 들러 회맛을 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이승복기념관과 신약수도 들러볼 만하다.
이곳 토박이인 김충식 계방산마을 위원장(56)은 “이 지역은 남한 5위봉인 계방산과 수려한 계곡, 맑은 물 등 천혜의 자연 조건이 으뜸이지만 그보다 콩 한쪽도 나눠먹는 주민들의 순박한 인심이 최고의 자랑거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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