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전군 지휘관회의’ 첫 주재]“안보대상 뚜렷하지 않게 만들어 軍내부 혼란도 있었을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5월 5일 03시 00분


■ 초점1 - ‘北=주적’ 부활?
“불과 50km 거리에 장사포가 우리를 겨누고 있음을 잊고 산 것도 사실이다”

“주적 삭제→軍혼란” 비판 반영
北-中회담 봐가며 결정 내릴듯


4일 이명박 대통령의 전군 주요지휘관회의 모두발언에선 “안보대상이 뚜렷하지 않도록 만든 외부환경이 있었고, 그로부터 비롯되는 군 내부의 혼란도 있었을 것”이라는 대목이 단연 눈길을 끈다. 우리 군의 ‘안보대상’이 불분명해 군이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 헷갈리는 상황이 빚어졌다는 지적이었다.

이 대통령은 특히 뚜렷하지 않은 ‘안보대상’을 언급한 직후 “국민들도 불과 50km 거리에 장사포가 우리를 겨누고 있음을 잊고 산 것도 사실이다”라며 “천안함 사태는 이를 우리에게 일깨워줬다”고 강조했다. “현실보다는 이상에 치우쳐 국방을 다뤄온 것은 아닌지 반성해봐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는 우선 군과 일반 국민의 안보의식 해이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 대통령이 “목숨을 건다는 각오로 대비하지 않으면 자유를 지킬 수 없고 평화를 얻을 수 없다”고 강조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안보대상이 뚜렷하지 않다’는 대목에서는 정부가 이른바 ‘주적(主敵)’ 개념의 부활을 검토할 가능성이 읽힌다. 사실 천안함 사건 후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북한은 주적’이라는 개념을 부활해 2010년 국방백서에 명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지난달 23일 청와대 오찬간담회에서 “지난 10년 동안 주적 개념조차 없어지는 등 정체성 혼란을 겪었다”며 국방백서에 명시할 것을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이 대통령은 뚜렷한 태도를 밝히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30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주적 개념 자체는 그대로 존재하고 있고 장병들에게 교육하고 있다”면서 “다만 표현을 주적이라고 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검토해야 한다”고 주적 개념 부활에 다소 부정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천안함 사건이 북한 소행임이 확실해질 경우엔 정부의 태도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외교안보라인의 고위관계자는 전군 주요지휘관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주적 개념 부활 여부는 천안함 사건의 원인 규명과 연계해 검토될 문제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안보대상이 뚜렷하지 않게 됐다’고 지적한 데 이어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북한 소행 규명 여부에 따른 후속 대응 방향의 하나로 주적 개념 부활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처음으로 언급한 것이다. 청와대의 또 다른 관계자도 “국방부가 국방백서에 주적 개념을 명시하는 것에 청와대는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여기엔 최근 급박하게 돌아가는 한반도 안보정세, 군의 정신력 강화 필요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대통령과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정상회담을 가진 지 사흘 만에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전격적으로 방문하는 등 미묘한 시점에서 북한 등을 겨냥해 우리 정부의 단호한 메시지를 전달하겠다는 뜻도 담겨 있다는 관측이다.

국방백서에 주적 개념을 부활하는 문제는 단순히 표현 하나 바꾸는 차원을 넘어 상징적 의미가 크다. 대북정책 기조와도 연관된 사안이다.

‘북한은 주적’이란 개념은 특사교환을 위해 1994년 3월 판문점에서 열린 제8차 실무 남북접촉에서 북측 박영수 대표(2003년 사망)의 ‘서울 불바다’ 발언이 나오면서 1995년 국방백서에서 처음 사용됐다. 2004년 국방백서에서 ‘직접적 군사위협’, 2006년 국방백서에선 ‘현존하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 등으로 완화됐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 초점2 - 고강도 국방개혁
“국가안보총괄점검기구를 한시적으로 구성하고 위기상황센터를 위기관리센터로”

대통령이 ‘강한안보’ 직접 지휘봉
전작권 포함 모든 시스템 재검토


이명박 대통령은 4일 ‘강한 안보’ 구상 실현을 위한 첫걸음으로 국가안보총괄점검기구 구성과 국가위기상황센터 확대 개편 등을 제시했다.

가칭 국가안보태세검토위원회(The Commission for National Security Review)로 명명된 대통령 직속 안보총괄점검기구는 국가 안보태세를 종합 점검하고 개선 방안을 내놓는 한시 기구다. 이르면 이번 주 중 공식 발족한다.

대통령 외교안보자문단과 국방부 산하 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 소속 일부 위원, 예비역 장성 등 군사전문가를 포함해 10여 명의 안보전문가들로 구성될 예정이다.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이 조정 역할을 맡으며 이 대통령이 정기적으로 주재할 예정이다.

국방개혁 작업을 맡고 있는 선진화추진위 위원이 멤버로 참가하지만 국방부 등 일선 부처는 배제돼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 대통령이 직접 칼자루를 쥐고 국가 전체의 위기대응 시스템은 물론 군 개편 방향까지 포괄적으로 재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전시작전권 전환 등 외교·안보 현안도 점검 대상에서 배제하지 않을 방침이다. 청와대 외교안보라인 고위 관계자는 “특수전 등 비대칭 전력의 문제, 육해공군 합동성 강화 방안 등도 기구에서 논의될 것”이라며 “전작권 문제는 우리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 위기상황센터는 위기관리센터로 바뀐다. 위기상황센터는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을 계기로 신설됐는데 천안함 사태를 계기로 위기 대응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지적에 따라 역할과 조직이 확대되는 것이다. 안보라인 관계자는 “상황센터는 말 그대로 상황이 발생하면 청와대 내에 이를 전파하는 기능을 담당했지만 관리센터는 상황 보고·전파뿐만 아니라 위기를 사전에 진단하고, 원인과 대응책을 분석·기획하는 역할까지 맡게 된다”고 설명했다. 현재 20명 안팎인 인원도 일부 보강된다.

신설될 안보특별보좌관은 대통령에게 안보 분야 상시 조언을 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이 대통령은 이날 비공개회의에서 “안보특보를 통해 매일 매일 군을 모니터링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안보특보는 대통령의 신임과 본인의 능력에 따라 정책과 인사에 깊숙이 관여할 수도 있다. 국가안보총괄점검기구에도 참석한다. 외교안보수석비서관과의 업무 조정이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김대중 정부 때 임동원 외교안보통일특보는 대통령 특사로 북한을 방문하는 등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안보특보로는 예비역 장성 출신이 등용될 가능성이 크다. 외교안보라인 고위 관계자는 “군 출신 인사를 생각하고 있다. 현직은 어렵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안광찬 전 국가비상기획위원장 대북감청부대장을 지낸 한철용 예비역 소장, 국군기무사령관을 지낸 김종태 예비역 중장 등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 초점3 - 국제문제 ‘천안함’
“천안함 사태가 터지자마자 남북관계를 포함해서 중대한 국제 문제임을 직감”

“단순 사고로 침몰한것 아니다”
北소행 처음부터 염두에 둔듯


이명박 대통령은 4일 전군 주요지휘관회의 모두연설에서 “현재까지 분명한 사실은 천안함은 단순한 사고로 침몰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사태가 터지자마자 남북관계를 포함해 중대한 국제문제임을 직감하고 국제협력을 통해 원인을 밝힐 것을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이는 그동안의 발언 흐름을 놓고 볼 때 상당히 진전된 것이다.

이 대통령은 천안함 사건 발생 후 한동안 “심증만 갖고 예단해서는 안 된다”는 태도를 취해 왔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들은 “(북한 연루 여부에 대한) 이 대통령의 생각은 정중앙에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상당수 국민들과 전문가들이 북한 소행으로 심증을 굳혀 가는 상황에서도 “남북이 분단돼 있는 국경 바로 밑에서 일어난 사건이라서 더 예민하고 더 많은 나라가 이번 사고에 큰 관심을 가지고 예의 주시하고 있다”며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그런 맥락에서 이 대통령이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며 “남북관계를 포함해 중대한 국제문제임을 직감했다”고 밝힌 것은 사실은 이 대통령도 사건 직후부터 북한 소행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은 채 대책을 강구해 왔으며, 현재는 그런 내부적 검토가 더 진전되고 있음을 의미한 것으로 풀이된다.

청와대가 천안함 대응책 마련에 있어 조사 상황의 진척과 더불어 북한 소행을 염두에 두고 치밀하게 한발 한발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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