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9일 오전 7시(현지 시간). 14시간의 야간비행 내내 닫혔던 기내 덧창을 올린다. 아침햇살 아래 요하네스버그가 환히 빛난다. 늘 그렇듯 다운타운의 마천루는 눈부시게 번득인다. 황금빛 유리창에 반사된 햇빛 덕분. 이 도시가 남아프리카공화국 황금과 다이아몬드로 일어선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굿모닝, 아프리카.’
여기다. 남아공 월드컵이 개막될 사커시티 스타디움이 있는 곳. 우리는 안다. 축구가 인류를 소통시키는 또 다른 언어임을. 그걸 우린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깨달았다. 4강에 오른 태극전사의 투지, 붉은 악마로 변신한 4800만 한국인의 열정. 그때처럼 사람과 사람이, 이웃과 이웃이 잘 통했던 때도 없었다. 축구는 게임 이상의 게임이었고 공은 인류를 형제애로 맺어준 말없는 언어였다.
그 가슴 뿌듯한 감동. 이번 취재 도중 또 한번 느꼈다. 기자는 남아공 월드컵(6월 11일∼7월 12일)을 앞두고 남아공 나미비아 보츠와나 짐바브웨 등 4개국에서 펼쳐진 ‘오버랜드 트러킹 투어(Overland Trucking Tour)’에 일원으로 참가했다. 오버랜드 트러킹 투어는 캠핑 장비를 갖춘 사륜구동차 혹은 트럭으로 캠프사이트에서 야영하며 육로로 오지의 비경(秘境)을 찾아가는 모험여행.
여행 5일째 나미브 사막(나미비아)에서였다. 소수스플라이의 사구를 떠나 대서양변 사막의 항구 월피스베이로 가던 도중 숙박차 들른 사막 황무지의 ‘솔리테어’라는 곳이다.
우체국과 상점, 자동차정비소를 겸한 주유소에 로지를 낀 자그마한 캠프사이트였다. 주민이라고 해야 여기서 일하는 십수 명이 전부. 그런데 거기서 뜻밖의 이벤트가 열렸다. 오버랜드 트러킹 투어 중 들른 기자 일행(여행객)과 솔리테어의 아프리카 청년들 간 축구경기였다.
철사로 얽은 펜스 너머 먼지 풀풀 날리는 공터. 사방이 지평선으로 이어진 이 팍팍한 황무지에 뎅그러니 서 있는 어설픈 골대가 전부였다. 전후반 40분 경기는 치열했다. 솔리테어의 아프리카 청년과 처녀 8명도, 네덜란드 뉴질랜드 한국 미국인으로 구성된 오버랜드 여행자 7명도 모두 양보란 없었다. 피부색은 달라도 열정은 같았다. 먼지 속에서도 사자처럼 돌진하며 낡고 바람 빠진 축구공을 차고 또 받았다.
한 번도 만난 적 없고 이름은커녕 어디서 왔는지조차 모르는 이들. 그래도 문제될 건 없었다. 축구라는 대화가 끝없이 즐거워서다. 사막의 지평선 너머로 해가 지고 황금빛으로 물든 먼지 밭에 땅거미가 드리워질 때가 되어서야 게임은 끝났다. 그리고 모두는 이미 친구였다. 서로 격려하며 맞잡고 나눈 뜨거운 악수, 그 손을 통해 전해진 따뜻한 마음. 아프리카 명소의 그 어떤 낙조보다도 더 큰 감동이었다.
그렇다. 축구는 언어였다. 공을 통해 소통하는 무언의 언어. 6월 11일 남아공에서 열릴 아프리카대륙 최초의 월드컵도 그렇게 되리라 확신한다.
동아일보는 오버랜드 트러킹 투어로 취재한 여행기 ‘굿모닝 아프리카’를 6회 연재한다. 2∼6회는 매주 금요일자 마이위크엔드 섹션에 게재된다. 이번 취재는 5t 트럭을 개조한 특수차량을 가이드가 20일간 5500km를 운전해 남아공 등 4개국의 비경과 사파리공원으로 안내하는 노매드 어드벤처 투어(www.nomadtours.co.za)의 ‘케이프타운∼빅토리아폭포’ 투어를 통해 진행됐다. 요리사와 기자를 포함해 각국에서 온 관광객 등 모두 15명이 야생동물이 오가는 캠프사이트의 텐트에서 자고, 캠프에서 즉석조리한 음식을 먹는 캠핑투어로 총 25일간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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