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가만히 앉아서 살인하는 방법을 생각하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싸이코패스, 그리고 미스터리 작가. 그 중 돈을 더 잘 버는 쪽이 바로 나. 내가 누구냐고? 리처드 캐슬이지."
드라마의 문을 여는 리처드 캐슬의 대사가 말해주듯이 '캐슬'은 미스터리 작가인 리처드 캐슬(나단 필리온 분)과 뉴욕경찰 강력반의 형사 케이트 베켓(스타나 카틱)이 팀을 이뤄 미스터리 소설에나 나올 법한 수상한 살인사건들을 해결해 나가는, 미국 TV채널 ABC의 범죄 수사물이다. 현재 시즌2의 종료까지 2회분을 남겨놓은 '캐슬'의 인기는 한국에서도 이어져 채널 CGV를 통해 시즌2가 지난 4월부터 큰 시차 없이 방영되고 있다.
▶ 범죄자처럼, 형사처럼 생각하는 미스터리 작가, 실제 수사에 참여하다
베스트셀러 작가 리처드 캐슬이 어떤 인연으로 범죄수사에 참여하게 됐는가 하면, 그의 소설 속에서 다뤄진 적 있는 연쇄살인을 모방한 범죄가 진짜로 일어났기 때문이다. 피해자를 꽃으로 장식해 놓은 기이한 사건이었는데, 때마침 '창작의 장벽'에 가로막혀 있던 캐슬은, 자기의 작품이 묘사했던 대로 벌어지는 살인사건에 특별 자문으로 참가하게 된다. 그리고 그의 자문에 따라서 사건이 원만히 해결되자 소설 창작에의 영감도 얻고 범죄 해결율도 높인다는 일석이조의 구실로 계속해서 뉴욕경찰 강력반의 수사를 참관하기로 결정한다. "가만히 앉아서 살인하는 방법"을 생각하는 일이 그가 돈 버는 방법이라고는 하지만, 캐슬은 그 동안 범죄자처럼 생각하고, 또 형사처럼 생각해왔기에, 범죄수사에 통찰력 있는 시선을 제공한다. 물론 그렇게 된 데에는 인기 작가인 캐슬의 다양한 인맥 중의 하나인 뉴욕 시장과의 친분이 큰 영향을 미치긴 했다.
시장과 인맥이 있는 미스터리 작가라니, 이쯤 되면 캐슬의 캐릭터가 궁금해진다. 한마디로 캐슬은 뉴욕 사교계의 플레이보이다. 매력적인 외모에 사교적인 성격, 재력까지 갖춘 그는 매년 일간지가 재미삼아 선정하는 "올해의 싱글남 10"의 3, 4위를 지키는 인기절정의 반품남이다. 2번의 이혼 경력은 훈장처럼 그의 프로필을 장식하고, 어른스럽고 또 예쁜 딸 알렉시스는 오히려 캐슬에 대한 매력만 상승시킬 뿐이다. 전직 오프-브로드웨이 배우였던 어머니 마사가 철없는 캐슬보다 더더욱 철이 없는 덕분에, 이 플레이보이는 딸과 어머니의 캐릭터에 빚지며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그리고 이런 캐슬을 그림자처럼 혹은 쫄래쫄래 뒤를 쫓는 강아지처럼 달고 다녀야 하는 미모의 형사 케이트 베켓은 캐슬과는 완전히 대조되는 캐릭터다. 직업상 편의 때문이기도 하지만 늘 단정한 옷차림을 하고는 엄격한 표정으로 일관한다. 하지만 이 서늘한 미녀의 캐릭터 덕분에 얼렁뚱땅 말주변 좋은 캐슬과의 조합이 살아나는 것이 사실이다. 또, 베켓이 사실은 미스터리 소설의 광팬이며, 캐슬의 소설은 모두 섭렵한 숨은 팬이라는 사실이 이 조합을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게다가 캐슬은 베켓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니키 히트'라는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하기까지 하는데, 니키 히트를 주인공으로 한 캐슬의 신작 '히트 웨이브'가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니키는 아니 베켓은 뉴욕의 명사로 떠오른다. 하지만 유명인이 되어 사람들이 알아보건, 캐슬과의 로맨틱한 관계를 궁금해하건 베켓이 알바 아니다. 그녀는 언제나 그렇듯 냉철하게 사건에만 몰두하는 프로다.
▶ 뻔한 수사물을 살려주는 티격태격 알콩달콩, 캐슬과 베켓의 캐릭터 앙상블
"미스테리물이란, 옐로우 케이크와 같아서 누구나 어느 정도는 좋아하는데다가, 데코레이션에 따라 여러 가지 장식이 가능하다." LA타임즈가 '캐슬'에 보낸 단평을 굳이 예로 들지 않아도, 범죄수사물은, 미드 시장에서는 더 이상 발 디딜 틈 없는 꽉 찬 경기장이요, 웬만큼 새롭지 않고서야 주목 받기 힘든 치열한 경쟁의 틈바구니다. 그래서인지, 법집행인과 평범하지 않은 능력을 지닌 일반인의 조합이 최근 범죄수사물의 유행이긴 하다. '화이트 칼라' '라이 투미' '본즈' 등에 이어 '캐슬'도 마찬가지. 하지만 미스터리 작가가 범죄 수사에 도움을 준다는 아이디어도 새롭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사건해결에 기지를 발휘하는 추리 소설 작가 캐릭터를 떠올리자면, 엘러리 퀸이 단연 선두에 놓일 것이 분명한 것처럼 말이다.
'캐슬'은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 케이스다. 다시 말하면 시즌 전체를 주문 받은 정규편성 시리즈가 아니라, 시험 삼아 방영한 미드시즌(mid-season: 시즌과 시즌 사이의 휴지기, 대부분의 풀 시즌 드라마들이 쉬는 기간이라서, 에피소드 10편 정도로 짧게 편성된 드라마가 방영되거나, 인기 드라마가 재방영된다) 드라마가 인기를 얻어 다음 시즌으로 이어진 성공적인 사례라는 이야기다. 솔직히 처음엔 만화 같은 캐릭터에 만화 같은 살인사건들 때문에 '캐슬'이 과연 장수할까 싶었지만, 10편으로 마감한 시즌1은 24편짜리 시즌2로 이어졌고, 시즌3 역시 22편으로 풀시즌 방영이 결정됐다. 2주 안에 방영을 앞둔 시즌2의 결말에 대해서 캐슬을 연기하는 네이든 필리온은 "(케이트) 베켓이 다른 남자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베켓과 캐슬 두 사람에게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시점이 다가온다. 정말 감정적인 클리프행어가 될 것"이라는 힌트를 남긴 상태.
사실 캐슬과 베켓의 사이는 드라마의 시작부터 수갑으로 채워놓은 관계였다. 시즌1에서 캐슬이 베켓이 가슴에 묻은 어머니의 살해사건을 건드리려고 했던 것이 잠시 문제가 되긴 했으나, 캐슬의 선한 의도와 사과를 받아들인 뒤 현재 둘은 티격태격은 하지만 믿고 의지하는 사이다. 한동안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캐슬이 실제로 사건이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은 베켓이, 캐슬에 대한 인간적인 호감까지 발견하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 중이다. 아마 '캐슬'의 팬이라면 둘 사이를 오가는 로맨틱한 감정의 줄다리기를 가장 큰 재미로 꼽을 것 같다. 유들유들하지만 사실은 성실한 남성 캐릭터와, 경직된 듯 딱딱하고 까다롭지만 사실은 여린 여성 캐릭터의 조합이 '캐슬'에 고전적인 그러나 고전이기에 결코 녹슬 수 없는 재미와 긴장을 부여한다. 1990년대 주말 TV를 수놓았던 '레밍턴 스틸', 그리고 그보다 더 오래 전에는 '블루문 특급'에서 보여줬던 남녀 캐릭터의 앙상블이 그랬듯 말이다.
▶ 제발 두 사람이 연인이 되지 않게 해주세요, 네?
팬으로서 개인적이고 별 것 아닌 욕심을 말하자면, 캐슬과 베켓이 계속해서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은 상태로 그렇게 긴장을 유지해줬으면 좋겠다. 서로에게 끌리는 마음이야 분명 있겠지만, 남녀사이에 일어나는 감정의 화학작용이라는 건, "공식화된 관계"가 되고 나면 이전보다 시들해지는 게 보통이기 때문이다. 재미도 덜해지고, 애틋함도 반감된다. 둘이 싸우고, 놀리고, 추근덕대고, 질투할 때 까진 재밌는데, '혹시 이 사람이 내 운명의 상대가 아닐까'라고 생각하고 확인하고 싶어지는 순간, 이 한없이 가볍게 즐기고만 싶은 '캐슬'의 세계는 무겁게 가라앉기 시작할 것이 분명하다. 시즌2의 파이널이 기다려지는 동시에 보는 것을 미루고만 싶은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이다. 캐슬과 베켓은 드라마를 위해 만들어진 캐릭터지만, 그 캐릭터들이 만들어내는 재미는 진짜니까.
재미 삼아서 드라마 바깥의 이야기를 소개하면, ABC는 실제로 '히트 웨이브'라는 니키 히트를 주인공으로 한 미스테리 소설을 리처드 캐슬의 이름으로 출판했다. 2009년 9월 초판을 발행한 이 소설책은 출판 첫 주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순위 26위에 올랐고, 한달이 채 되기 전에 6위로 뛰어올랐다. 아마도 '캐슬'을 즐겨보는 사람들이라면 "소설 뒤쪽에 나오는 니키의 진한 정사신"이라든지, '히트 웨이브'를 이용해서 저지르는 살인사건 등이 드라마에서 언급되고 또 소재로 사용될수록 그 책을 손에 쥐고 펼쳐보고 싶은 욕망을 떨치기 힘들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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