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 북스/커버스토리] “브루니, 임기 후 사르코지 버릴 수 있는 여자”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5월 6일 15시 00분


'프랑스 여자처럼' 저자 심우찬 인터뷰

● 능력만큼 발휘 못하는 한국 여성 현실 아쉬워
● 자의식 강하고 남자 '이용'하는 프랑스 여자들
● '한국 여성'만큼 매력적인 '한국 남성' 없는 듯

심우찬 씨가 최근 펴낸 책 \'프랑스 여자처럼\'에는 각계 각층에서 족적을 남긴 프랑스 여성 30명의 삶이 담겨있다. 사진제공 시공사. ☞ ‘카를라 브루니’ 여사 누드 사진 2만달러 낙찰
심우찬 씨가 최근 펴낸 책 \'프랑스 여자처럼\'에는 각계 각층에서 족적을 남긴 프랑스 여성 30명의 삶이 담겨있다. 사진제공 시공사.
☞ ‘카를라 브루니’ 여사 누드 사진 2만달러 낙찰
'럭셔리란 가난함의 반대말이 아닌, 천박함의 반대말이다'(가브리엘 샤넬),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스스로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프랑수아즈 사강),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시몬 드 보부아르)….

'프랑스 여자'들에 대해서는 항상 프리미엄이 따라 붙는다. 아무렇지도 않게 걸친 옷이 '프렌치 시크'가 되고 치즈와 바게트를 먹어대도 살도 찌지 않는다. 심지어 한 남자의 삶을 파괴해도 '팜 파탈'이라 불리며 로맨스의 상징이 된다. 이런 프랑스 여자들에 대해, 그리고 이들의 자유로운 자의식에 돋보기를 들이댄 사람이 패션평론가 심우찬 씨라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서울 청담동을 중심으로 한 한국 명품 패션가에서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는 파리에서 패션 광고,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면서 한국 디자이너의 파리 진출을 돕거나 명품업체와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보그 코리아' 같은 패션잡지에 칼럼도 기고하는 그의 직함은 그래서 한 두 개가 아니다.

지난해 케이블TV '엠넷'을 통해 방영된 '아임 어 모델'에서 심사위원을 맡아 대중적 인지도도 더욱 높아졌다. 한국외국어대 불어과를 졸업하고 파리 에스모드에서 패션 공부를 하면서 맺은 파리와의 인연은 그곳에서 일하고, 생활하고, 사랑에 빠진 지난 22년간 계속됐다.

지금도 카페와 철학과 명품의 거리, 파리 '생제르망데프레'와 가까운 곳에서 살고 있는 그가 얼마 전 프랑스 여성에 대한 책 '프랑스 여자처럼'(시공사)을 펴냈다. '패션피플' 가운데 흔치 않게 오늘자 신문 1면과 사설의 주요 내용, 정치인 누구누구의 행보를 줄줄 꿰는 그를 지난 30일 서울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 파리의 '기센' 여인들에게서 타산지석을

그가 쓴 책 '파리여자 서울여자', '청담동 여자들', '프랑스 여자처럼'은 여자를 소재로 했다는 점 말고도 공통점이 있다. 능력만큼 대접받지도, 스스로를 대접하지도 않는 한국 여성들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심 씨의 페미니스트적 시각이 깃들어 있다는 점이다. 그는 "1994년에야 겨우 해외 라이센스 패션지가 들어온 한국이 패션 포토그래피, 스타일링, 메이크업 등 패션 미디어 관련 분야에서 아시아 최고가 된 것은 이 업계의 극성스럽고, 학습력 좋은 여자들 덕분"이라며 "패션은 사치라고 말하던 '한국 아저씨 이데올로기'를 국가적 역량으로 전복시킨 것만 봐도 우리나라 여성의 저력을 알 수 있다"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프랑스의 퍼스트레이디 카를라 브루니와 '샤넬'의
 창시자 가브리엘 샤넬(왼쪽)은 본인이 가진 능력도 뛰어나지만 남자를 이용해 스스로를 업그레이드시켰다는 점이 공통적이다. 로이터, 
동아일보 자료사진. ☞ ‘카를라 브루니’ 여사 누드 사진 2만달러 낙찰
프랑스의 퍼스트레이디 카를라 브루니와 '샤넬'의 창시자 가브리엘 샤넬(왼쪽)은 본인이 가진 능력도 뛰어나지만 남자를 이용해 스스로를 업그레이드시켰다는 점이 공통적이다. 로이터, 동아일보 자료사진.
☞ ‘카를라 브루니’ 여사 누드 사진 2만달러 낙찰


- 프랑스 여자들을 통해 한국 여성들에게 전하려 했던 메시지는?


"지금의 대한민국 여자들이 겪는 총체적인 문제를, 같은 고민을 앞서 했던 프랑스 여자들에게서 듣고 지혜를 얻어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프랑스의 유명 시사지 '렉스프레스'의 발행인에 이어 문화부차관에까지 오른 프랑수아즈 지루의 예를 들어보죠. 그는 여성 차별이 심했던 1970년대 프랑스 사회에서 후배 여성들의 롤모델이 됐어요. 그렇지만 2003년 사망 전 한 인터뷰에서 '내 시대에는 여자가 성공하기 위해 남자와 잠을 자지 않으면 안됐다. 남자가 학연 지연을 이용하는 것처럼 여자가 미모를 이용하는 것이 뭐가 문제가 되느냐'는 '고백'을 했습니다. 또 '모성은 본능이 아니라 학습이다'라고 말한 시몬 드 보부아르도 있죠. 이들의 행보와 의견에 동조하고 않고를 떠나 이런 주체적 발언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우리나라 여성들도 가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왜 여성 탐구를 계속하는지요.


"아직 한국 사회에선 여성이 마이너리티이기 때문이죠. 한국 TV를 볼 때마다 남자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여자의 몸매를 예찬하며 1차적 욕구와 판타지를 드러내는 모습을 보고 놀라곤 해요. 여성들도 'S라인' '쭉쭉빵빵' 신드롬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죠. 우리는 여성의 아름다움과 젊음을 마치 크리넥스 티슈처럼 소비하는데 익숙한 것 같아요. 남자는 차장, 부장급은 돼야 앵커 자리에 앉는데 여자는 얼굴만 예쁘면 초년병 때도 앵커가 될 수 있는 것부터 이상합니다. 전 입사한지 3개월 만에 앵커가 된 눈부시게 예뻤던 백지연보다 인생의 부침을 겪고 단단하게 변한 지금의 백지연에게 듣고 싶은 게 더 많은데 말이죠."

- '프랑스 여자처럼'을 기획하게 된 직접적 계기는?

"사르코지 대통령과 이혼한 전 퍼스트레이디 세실리아가 단초가 됐어요. 원래 그를 엄청 혐오했거든요. 자신도 스페인 이민자 집안 출신이면서 외국인이나 마이너리티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고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안달복달 하는 모습이 꼴 보기 싫었어요. 그런데 그가 권력의 정점에 선지 6개월도 채 안돼 '왕관'을 내려놓는 모습에서 망치로 머리를 맞는 듯한 충격을 받았어요. 역시 '프랑스 여자들은 다르구나' 하고 무릎을 쳤죠."

사실 세실리아와 니콜라 사르코지는 드라마틱하게 만났다. 28세에 뇌이 쉬르센 시장으로 당선된 사르코지가 결혼식장에 들어선 신부 세실리아를 보고 한 눈에 반한 것. 결혼을 주관하는 시장과 신부와의 '잘못된 만남'은 결국 결실을 맺었고 세실리아는 그 후 10여년간 남편의 '대통령 만들기 프로젝트'에 매달려 왔다.

- 책에서 다룬 30명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누구죠?

"시몬 베이유예요. 우리나라에도 학생운동이나 위장취업, '농활'등에 영향을 미친 혁명적 운동가죠. 대학생 때도 관심이 갔던 인물이지만 그가 쓴 책을 불어로 다시 읽다보니 그 청아한 문체와 사려 깊은 단어 선택에 다시 한 번 놀랐어요."

- 최근 맞바람설과 관련된 보도가 나온 현 퍼스트레이디 카를라 브루니는 어떤지….

"사실 그와는 개인적인 인연이 있어요. 모델로 활동하던 브루니가 은퇴할 무렵 패션계 파티와 패션쇼장에서 만나 네댓 번 얘기를 나눈 적이 있거든요. 말하기보다는 듣기를 좋아하고, 상대방의 눈을 뚫어질 듯 응시하는 모습에서 그에게 그렇게 숱한 남자들이 빠져드는 이유를 알겠더군요. 브루니를 보면 브랜드 '샤넬'의 창시자 가브리엘 샤넬 여사가 생각나요. 이 두 여인은 남자를 통해 인생을 배웠고 인맥을 넓혔으며 자신을 업그레이드했죠. 그러면서도 한 남자에게 종속되지 않고 그를 현명하게 '이용'할 줄 알았어요. 사랑에 '올인'하지 않는 거죠."

브루니는 일부다처제를 공개적으로 옹호한 바 있다. 또 남편 사르코지의 정적이자 사회당 차기 대권 후보 중 한명으로 꼽히는 로랑 파비우스와 염문을 뿌린 적도 있다. 브루니야말로 '자유로운 영혼'으로 남자들을 '연주'하는 이 시대 최고의 팜 파탈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 그렇다면 브루니가 사르코지를 떠날 수도 있다고 보시나요?

"프랑스 TV채널인 '프랑스2' 토크쇼에 브루니가 출연해 '혹시 사르코지가 대통령이라 사랑한 것은 아니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평소 같으면 침착하게 답변했을 그가 갑자기 냉정을 잃더니 어리석은 질문이라고 화를 냈죠. 저 뿐 아니라 많은 프랑스인들이 바로 그 모습에서 사르코지가 더 이상 대통령이 아닐 때, 어느 날 갑자기 브루니가 그를 떠나더라도 전혀 놀랄 일이 아닐 것이라는 사실을 예감했죠."

▶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은 세계 패션계

철학가, 예술가, 정치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여성을 아우른 이 책에서 심 씨는 정작 자신의 전문 영역인 패션 업계 관련 인물로는 유일하게 가브리엘 샤넬에 대해서만 썼다. 왜 그랬을까.

"사넬과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여성 디자이너 중에 마들렌 비요네 같은 훌륭한 인물들도 물론 있었죠. 하지만 이들은 이제 복식사 책에서나 발견할 수 있어요. 반면 샤넬은 지금도 전 세계 수 백 개 매장을 통해 만나볼 수 있죠. 샤넬은 '패션은 팔려야 한다'는 생각을 한 비즈니스 우먼이었다는 점이 위대해요. 원로 디자이너들이 흔히 저지르는 오류가 '나는 예술가'라고 착각하는 건데 샤넬은 죽는 날까지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았죠. 디자이너가 살아있는 '소니아 리키엘' 브랜드보다 '샤넬'에 열광하는 사람이 더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그는 지금의 패션계가 LVMH, PPR 과 같은 거대 기업들이 헤게모니를 잡고 있어 더 이상 창의적이지도 매력적이지도 않다고 평가했다. 이들이 세계 패션계를 좌지우지 하면서 창의적이어야 할 패션계의 질서와 미래가 예측가능한 것이 돼 버렸다는 것이다.

- 개인적으로도 패션에 관심이 덜해졌다는 뜻인지….

"저도 파리 패션계에 진입하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했고 덕분에 좋은 사람도 만나고 돈도 벌수 있었죠. 하지만 그렇게 동경했던 '정상'의 모습은 그리 아름답지 않았어요.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유명디자이너가 마약에 취해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것을 우연히 목격해 구급차에 실어 보낸 적도 있죠. 앞으로도 패션 관련 일을 계속하긴 하겠지만 좀 더 마음을 비우고 패션계를 쳐다볼 수 있게 됐어요."

패션평론가 심우찬 씨는 "경쟁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나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한국 여성들이 프랑스 여자처럼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사진제공 시공사. ☞ ‘카를라 브루니’ 여사 누드 사진 2만달러 낙찰
패션평론가 심우찬 씨는 "경쟁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나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한국 여성들이 프랑스 여자처럼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사진제공 시공사.
☞ ‘카를라 브루니’ 여사 누드 사진 2만달러 낙찰


- 우리나라 패션계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을 것 같아요.

"얼마 전 끝난 서울패션위크를 보고 정말 실망했어요. 관객과 모델 수준은 이제 뉴욕, 파리 부럽지 않은데 디자이너 수준과 행사를 주관하는 공무원들의 마인드는 여전히 낙후돼 있더군요. 서울패션위크의 국제화에 모두가 매달려 있던데, 사실 이걸 이루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과제가 될 거예요. 오히려 인천공항을 아시아의 허브 공항으로 활용하듯 서울을 중국과 한국, 다른 나라를 잇는 '허브 도시'로 육성하는 편이 낫지 않나 싶어요."

심 씨는 한국 패션을 살리기 위해서는 국내 대기업의 역할이 가장 절실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많은 외국의 '패션피플'이 서울은 '10 코르소코모'(2008년 제일모직이 국내에 도입한 밀라노의 복합 문화·쇼핑공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얘기합니다. 비록 일년에 몇 십억씩 적자가 나더라도 트렌드의 메카를 만드는, 이런 훌륭한 시도를 할 수 있는 주체는 대기업밖에 없죠. 저는 대기업들이 지금처럼 흘러간 일본 디자이너 브랜드를 수입하는데 열을 낼 것이 아니라 젊고 재능 있는 국내 디자이너들을 발굴하는데 힘을 쏟아줬으면 좋겠어요."



▶ 매력적인 한국 남자는 찾기 힘들어

그는 또 다른 두 권의 책을 출간할 계획이다. 외국인으로 파리에서 오래 살며 프랑스 사회에 대해 느낀 바를 담은 '아직도 파리를 사랑할 수 있을까'와 '구찌'를 이끌었던 유명 디자이너 톰 포드에 대한 책이다. 게이 캐릭터를 소재로 한 소설도 구상중이다.

패션과 셀러브리티를 잇는 작업도 계속한다. 3년 전부터 기획해 파리 뉴욕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 등에서 촬영한 송혜교 사진집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참여했다. 현재 막바지 작업 중으로 올해 안에 선보이는 이 사진집 촬영을 위해 그는 피터 린드버그 등 세계적인 포토그래퍼들을 직접 섭외했다.

'한국 여자처럼'이란 책을 쓰는 것도 꿈이다. 이 책을 쓰게 되면 어떤 인물들을 포함시키고 싶냐는 질문에 그는 주저 없이 류관순, 현정은, 김영명, 심상정, 김연아, 장미희의 이름을 쏟아냈다.

"특히 장미희 선생님은 연기도 잘하시지만, 제가 '청담동 여자들'이라는 책을 쓸 때 칼 구스타프 융, 버트런드 러셀 등이 쓴 철학책을 열권이나 사다주신 독서광이시기도 해요. 럭셔리와 관련된 내용을 쓸 때 이들이 말한 '무의식 중 욕망' 등을 참고하라는 말씀을 하셨죠. 류관순 열사는 가장 먼저 넣고 싶은 인물이죠. 저는 5만원권 지폐에 신사임당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 정말 놀랐어요. '아, 신사임당이 '한국 아저씨'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한국 여성상이구나'라고 생각하고 다시 한 번 실망했거든요."

2시간 반 동안 계속된 인터뷰의 마지막 질문은 '한국 남자처럼'을 쓸 생각은 없냐는 것이었다. 모든 질문에 거침이 없었던 그는 이번에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여전히 빠르고 높은 하이톤의 목소리로….

"한국 여성들만큼 제게 열정과 영감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아무래도 그 주제로 책을 쓰기는 어렵겠는데요."


김현진기자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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