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감을 갖게 하는 선수가 됐다는 게 기쁘다. 부담감은 소화해야 하며 또 그렇게 할 것이다.”
‘주장으로서 팀을 이끌고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 나서야 하는 부담감이 클 것 같다’는 취재진의 질문에 박지성(29·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은 예의 그 표정 없는 얼굴로, 그러나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또박또박 이렇게 답변했다. 박지성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누구도 깨뜨릴 수 없는 자신감으로 단단히 무장했다는 인상을 줬다. 화려하진 않지만 믿음이 가는 그의 축구 스타일과 꼭 닮았다.
‘캡틴’ 박지성이 돌아왔다. 10일 스토크시티와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시즌 4호 골을 기록하며 시즌을 마무리한 뒤 한국대표팀에 합류하기 위해 비행기에 올라 11일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입국장을 혼자 뚜벅뚜벅 빠져나와 자신을 향한 엄청난 카메라 부대 앞에서 유유히 손을 흔든 뒤 인터뷰에 나선 박지성은 ‘팀이 우승 못해 아쉽지 않으냐’는 물음에 “다 지난 일이다. 지금은 대표팀에 대한 생각뿐”이라며 결의를 보였다.
허벅지를 다쳐 재활 중인 박주영(모나코)에게 ‘대표팀 공격의 핵’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박지성이 대표팀에서 차지하는 비중에는 견줄 수 없다. 한국축구는 ‘박지성의 팀’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허정무 대표팀 감독도 “박지성 없는 한국축구는 상상할 수 없다”고 표현할 정도로 박지성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특히 박지성이 2008년 10월 15일 아랍에미리트와의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 2차전부터 주장 완장을 차기 시작한 이후 더욱 그렇다. 당시 27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주장을 맡았지만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팀을 훌륭히 이끌고 있다. 경기장 밖에선 코칭스태프에게도 할 말은 다 하면서 경기장에선 항상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후배들의 귀감이 됐다. ‘허정무호’는 한때 ‘색깔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박지성이 주장 완장을 찬 이후 공격적이면서도 지지 않는 팀으로 변모했다. 박지성은 동료들이 팀플레이를 극대화하도록 만드는 데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측면 미드필더부터 중앙의 수비형과 공격형 미드필더 역할까지 모두 소화하는 그의 멀티포지션 능력은 그라운드의 리더로서의 자질을 더욱 강화한다. 3월 11일 AC 밀란과의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은 좋은 사례였다. 당시 박지성은 소속 팀에선 처음으로 중앙 미드필더로 출전해 상대 공격의 중심인 안드레아 피를로를 꽁꽁 묶으면서 골도 넣어 팀의 4-0 승리를 주도했다. 이 경기를 본 허 감독은 “지성이가 전술에 따라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다는 걸 제대로 증명했다”며 기뻐했다. 한국이 조별리그에서 차례로 맞붙는 그리스,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는 각각 색깔이 다른 팀으로 박지성은 상대 팀에 따라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지성은 “월드컵 지역예선 때부터 대표팀은 잘해왔다. 그 좋은 흐름을 유지해 월드컵을 맞겠다”고 말한 뒤 공항을 빠져 나갔다. 박지성은 11일 하루를 쉰 뒤 12일 대표팀에 합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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