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중국 상하이엑스포 홍보 노래 '2010 너를 기다려'(2010 等你来)가 일본 가요를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후 중일 양국에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문제의 곡은 중국 작곡가 먀오선이 만든 것으로 엑스포 홍보곡으로 선정됐다. 지난달 1일부터 중국 방송을 통해 상하이엑스포 소개와 함께 이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노래를 접한 중국 누리꾼들은 일본 중견 여가수 오카모토 마요(36)가 1997년 발표한 '그대로의 너로 있어줘'(そのままの君でいて)와 멜로디가 흡사하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후 홍콩 언론이 이 같은 사실을 보도하면서 양국에서 표절 논란이 큰 이슈가 됐다.
▲ 오카모토 마요 '그대로의 너로 있어줘' 뮤직비디오
■ 왜 표절했을까?
상하이엑스포 조직위원회는 중국 내에서 표절 의혹이 먼저 제기되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엑스포를 개최하면서 이를 대표하는 노래가 일본 가요 표절곡이라면 국가 이미지에 엄청난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짝퉁 천국'으로 불리는 중국은 사회, 문화 각 분야에서 표절이 확산돼 세계적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다. 정당한 라이선스를 지급하지 않고 외국 기업의 제품 디자인을 거의 똑같이 본떠 시장에 내놓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한국 기업들도 많은 피해를 보고 있다.
중국의 시장 규모와 생산력은 급성장하는데 이를 뒷받침할 아이디어가 부족한 것이 원인이다. 디자인에 아낌없이 투자하고 창의력을 발휘해 자신들만의 제품을 만들기엔 시간과 노하우가 부족하다. 라이선스에 들어가는 비용도 줄여 수익만 올리려고 욕심을 부리다보니 남이 만든 것을 도둑질하는 것이다.
가요 등 대중문화 분야도 마찬가지다. 중국에서 한류 열풍이 불자 한국 가요를 표절한 노래들이 쏟아졌다. 뮤직비디오나 스타일링이 흡사한 것들도 많아서 국내 누리꾼들 사이에 이를 비교하는 동영상과 사진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세계 2위의 음반시장인 일본의 대중음악 콘텐츠도 중국의 주요 표절 대상이다. 대중문화 시장 규모와 소비력이 어마어마한 일본에선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발달해 있다. 이 때문에 인터넷이 발달하기 전까지 한국에서도 톱가수들이 일본 가요를 표절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처럼 표절에 익숙해진 문화적 특성 때문에 중국을 세계에 알리는 엑스포의 홍보곡까지 일본 가요를 표절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상하이엑스포 조직위는 청룽 등 중국 톱스타들이 대거 출연한 '2010 너를 기다려'의 뮤직비디오까지 제작하고도 이 노래의 사용을 잠정 중단하며 사실상 표절을 인정했다.
상하이엑스포 조직위가 이 노래를 엑스포 홍보곡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오카모토 마요 측에 요청하면서 논란은 마무리되는 듯 했다. 오카모토 마요의 소속사는 지난달 19일 "상하이엑스포 조직위가 '그대로의 너로 있어줘'의 공식 홍보곡 사용을 의뢰했다. 세계가 주목하는 행사에 협력하게 돼 영광이다"라고 발표했다.
상하이엑스포 홍보곡 표절 논란의 원곡 '그대로의 너로 있어줘'를 부른 일본 가수 오카모토 마요 . 사진출처=오카모토 마요
공식홈페이지
■ 표절 논란 2라운드
양 측은 이처럼 '2010 너를 기다려'가 표절곡인 사실을 인정하고 별다른 법적 제재나 조치 없이 엑스포 홍보곡으로 계속 쓰는 것에 합의하면서 서로 '윈-윈'하는 길을 택했다. 표절 논란 이후 '그대로의 너로 있어줘'는 일본에서 큰 관심을 모으며 휴대전화 음원 다운로드 건수가 평소의 82배로 늘어나기도 했다.
오카모토 마요는 이 노래가 화제를 모으자 이달 10일로 예정됐던 자신의 15주년 기념 베스트앨범 발매까지 26일로 연기했다. 이 음반에 원래 수록 계획이 없었던 '그대로의 너로 있어줘'를 추가로 넣게 됐기 때문이다. 한 동안 활동이 뜸했던 오카모토 마요가 '표절 논란 효과'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은 것이다.
그러나 표절 논란의 장본인 먀오선의 소속사가 지난달 22일 공식성명을 내면서 상황은 또 다시 바뀌었다. 먀오선 측은 이날 표절이 아니라고 강하게 부인하면서 일본 언론을 가리킨 듯 "해외 언론이 사실이 아닌 내용을 보도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오카모토 마요 측은 두 노래가 완전히 다른 곡인 점을 인식하고 있다"며 "두 노래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으며 속셈 있는 인간이 민중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끄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성명이 발표되자 오카모토 마요 측도 즉각 반박하고 나섰다. 오카모토 마요의 베스트앨범 제작 프로듀서는 지난달 27일 "(먀오선 측의 성명은) 있을 수 없는 발언이다. 본인으로선 (표절 인정이) 하기 힘든 얘기인 모양"이라며 "저작권은 기본적으로 지켜져야 한다. 제대로 대처해 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논란이 마무리되지 않자 상하이엑스포 조직위원회는 1일 엑스포 개회식에서 '2010 너를 기다려'를 틀지 않았다. 일본 언론은 엑스포 홍보 노래 없이 개회식이 진행된 이례적인 상황을 비중 있게 다뤘다.
그동안 침묵해온 오카모토 마요 본인은 8일 콘서트 무대에서 팬들에게 "걱정을 끼쳐 드려 죄송하고 많은 응원에 감사하다. 이번 일에 관해선 모두 소속사에 맡겼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11일 이번 표절 논란과 관련해 "중국 정부가 일본 정부에 사과하지 않았다"며 "지적재산 보호 제도 개선을 중국에 요구하는 등 적절히 대처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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