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돌 그룹 아닌 아이돌'… 시시한 반응은 필연적?
● 박진영의 '그늘'은 득일까 독일까
● 비주류적 컨셉트 '레트로 아이돌'은 식상하다
\'노바디\'에 이어 새 앨범 ‘2 Different Tears(2DT)\'에서도 복고풍을 지향하는 \'레트로 아이돌\' 컨셉트를 들고 나온 원더걸스. 스포츠동아 자료화면. ☞ 사진 더 보기
여성 아이돌그룹 원더걸스가 돌아왔다. 지난 16일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새 앨범 '2 Different Tears(2DT)' 론칭 이벤트를 열고, 유스트림을 통해 싱글 뮤직비디오를 전 세계에 생중계했다.
뮤직비디오는 한국에서도 네이버, 멜론 등을 통해 생중계됐다. 동시에 음원판매도 시작됐다. 2008년 '노바디' 이후 1년8개월 만의 컴백이다.
그러나 막상 국내 반응은 다소 허전하다. 음원 공개 즉시 각종 차트 1위를 차지하긴 했다. 그러나 의외로 대중 반응이 딱히 폭발적이진 않다. 일단 곡 자체가 널리 퍼져나가고 있지를 않다. 거기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실망스럽다는 평가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속속 신곡을 발표하는 포미닛, 씨앤블루 등에 곧 밀리리라는 예측까지 나오고 있다. 빌보드 '핫100' 차트 76위까지 이룬 그룹치곤 꽤나 싱거운 컴백이다.
▶ 아이돌 그룹 공식에 맞지 않는 그들
이에 대한 미디어의 분석은 여러 가지다. 일단 1년8개월여 동안 국내 무대를 비우면서 초반 폭발을 일으켜주는 열혈팬층이 와해됐다는 분석이 있다. 또한 그 1년8개월여 동안 2NE1을 중심으로 카라, 티아라, 포미닛, 애프터스쿨 등 여타 여성 아이돌 그룹들이 급성장하는 변화가 일어나기도 했다. 즉 여성 아이돌의 주류시장이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는 지적이다.
2PM 박재범 탈퇴 등의 문제로 소속사 JYP엔터테인먼트 자체의 이미지가 실추됐다는 의견도 있다. 대부분 다 맞는 이야기다. 그런 면들이 작용했을 근거가 있다.
그러나 '2DT'의 '시시한 반응'을 설명하려면 그보다 좀 더 본질적인 문제를 짚어야 할 필요가 있다. 원더걸스 자체에 이미 일반 아이돌 그룹 속성과 크게 다른 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성격도 그렇고 방향성도 그렇다. 그런 요인들이 중첩돼 1년8개월만의 컴백을 시시하게 이끌었다고 봐야한다.
먼저 성격 측면이다. 원더걸스는 사실상 국내는 물론 아이돌 천국 일본에서조차 그 모델을 발견하기 힘든 그룹이다. 한 마디로 '아이돌 그룹이되 아이돌 그룹이 아니다'. 그래서 아이돌 특유의 폭발력이 나오지 않아 간만의 컴백도 제대로 받쳐주질 않는 것이다. 희한하게 들릴 수 있지만, 풀어보면 쉽다.
아이돌은 음악만 파는 연예인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각종 부가활동을 통해 개인적 인지도와 인기를 쌓고, 그에 걸맞은 음악을 얹어 판다. 그래서 폭발력을 내려면 그만큼 대중에 알려질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원더걸스의 라이벌 소녀시대 역시 데뷔 후 1년 반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지(Gee)'로 대박을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원더걸스는 이 아이돌 개념에 들어맞질 않는다. 일단 멤버들 개개인의 인지도와 인기가 높지 않다. 소희 정도만 삼촌 팬들로부터 열광을 얻었을 뿐, 멤버들 이름과 얼굴을 구분 못하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
원더걸스는 '조나스 브라더스' 북미 투어에 참여하면서 미국팬들에게 얼굴을 알렸다. '2DT' 역시 미국 시장에 핀트를 맞춰 제작됐다. JYP엔터테인먼트 제공. ☞ 사진 더 보기
애초 부가활동용으로 만들어낸 그룹이 아니기 때문이다. 원더걸스는 그간 드라마, 오락 프로그램 출연 등에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경험이 쌓이질 않다보니 어쩌다 출연하는 오락 프로그램에서도 제대로 활약을 못했다.
결국 원더걸스의 인기는 철저히 그들 음악 자체의 인기에 근거한다고 봐야한다. '텔 미'가 즐겁고, '노바디'가 흥겨워 스타가 된 것이지, 그룹 멤버들 인기를 통해 싱글이 뜬 건 아니라는 이야기다. 멤버 개개인의 인기와 개인기에 기대는, 아이돌의 기본 전략구조에서 벗어나 있다.
그렇다면 원더걸스는 아티스트, 또는 2NE1처럼 아티스트형 아이돌로 인식되는가. 그렇지도 않다. 일단 음악적 부분을 총괄하는 박진영의 그늘이 너무 짙다. 여기서 벗어나려면 2NE1처럼 실력파로 인식돼야 하는데, 원더걸스는 그렇지도 못하다. 적어도 멤버들 실력이 드러날 만한 노래를 하고 있진 않다.
결국 원더걸스는 아이돌로서의 폭발력도, 아티스트 또는 아티스트형 아이돌로서의 신뢰도 얻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이야기다. 그저 박진영의 음악을 소화해내는 대리인, 심하게 말하면 '인형'들로만 보일 뿐이다. 그래서 선미의 탈퇴도 큰 이슈가 되지 못하고, 혜림의 첫 등장 역시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던 것이다.
▶ 미국진출용 '레트로 아이돌'의 한계
다음으로 컨셉트 측면을 짚어야 한다. 원더걸스는 언제부턴가 레트로 아이돌, 즉 노래와 퍼포먼스 등 컨셉트 전반에 걸쳐 복고풍을 지향하는 아이돌로 분류되고 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애초 원더걸스는 '레트로 아이돌'이라 불리기 힘든 측면도 있었다.
음악적으로 일렉트로니카와 연결되는 부분이 있었고, 의상 및 퍼포먼스도 딱히 레트로 지향이라 보기엔 어려웠다. 그러나 '노바디'가 등장하고, 이를 통한 미국시장 진출 계획이 가시화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은 절대 만만한 시장이 아니다. 과거 마츠다 세이코, 우타다 히카루 등 일본 최고급 솔로가수들이 메이저 레이블을 통해 대대적으로 입성을 선언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애초 동양인에 호의적인 시장이 아니고, 문화적 성향 차도 뚜렷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더걸스는 여타 '실패한 아시아권 도전자'들과 다른 방향을 택했다. 이들의 실패가 무리하게 주류시장을 치고 나가려는 데서 비롯됐다고 판단, 원더걸스는 철저히 비주류적 컨셉트로 밀어붙인 것이다.
'노바디'는 복고풍 디스코 싱글이다. 뮤직비디오 컨셉트와 의상 및 퍼포먼스도 1960~70년대 모타운 흑인 뮤지션들 이야기를 담은 영화 '드림걸스'에서 차용했다. 그런 부분이 미국시장에서 흥미를 끌었다. 한 마디로 신기했다는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 보자면, 푸시캣돌스가 '빤짝이' 옷을 입고 나와 뽕짝을 부르는 식이다. 명절 때마다 방송되는 '외국인 장기자랑'과도 유사하다. 그렇다면 이런 엽기적 컨셉트는 과연 어느 계층에 어필했을까. 어린이들이다.
원더걸스는 지난 6일 미국 포털사이트 AOL의 '트윈 세대(tween generation)' 유저를 위한 사이트 KOL(kids.aol.com) 음악 섹션에서 '5월의 아티스트'로 선정됐다. 트윈 세대는 영미 등지에서 8~12세 어린이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물론 의외는 아니다. 미국 음반 마케팅 자체가 어린이 의류매장 판매를 중심으로 삼았으니, 애초 이 계층을 미리 내다보고 공략한 결과다. 또한 이들이 성원을 보내준 덕택에 빌보드 '핫100' 76위가 가능했다는 이야기도 된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한다. 원더걸스는 어찌됐건 미국시장 진출에서 성과를 보인 그룹이 됐다. 그러니 차후 방향성도 미국시장에 핀트를 맞추게 됐다. 그 결과물이 바로 '2DT'다. 한 번 동양에서 온 엽기 레트로 아이돌로 시장에 침투했으니 그 방향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여전히 디스코를 선택하고, 뮤직비디오 무대 및 의상 컨셉트도 1960~70년대 싸이키델릭풍으로 꾸며졌다. 거기다 어린이들 상대니 전문 세션을 구비해 온전한 흑인풍 디스코를 구현하기도 힘들다. 그러다보니 '뿅뿅'거리는 미디 사운드에 아무 의미 없는 랩 파트까지 끼워 넣게 됐다.
결국 원더걸스의 현 방향성은 국내시장을 감안해 설정된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오직 미국시장만 바라보고 설정됐으며, 국내시장은 미국시장 반응에 영향 받는 사대적 시장으로 치부됐다. 결과적으로 미국 비주류 시장, 그 중에서도 어린이들 들으라고 만든 음악을 한국 주류 시장에 내민 셈이 됐다. 더군다나 원더걸스는 1년8개월 공백 동안 '노바디' 미국 활동만 소개되고, 출연CF까지 '노바디' 컨셉트에 맞춘 터라 대중의 식상감이 극에 달한 상태였다.
이런 점을 고려조차 않은 채 '노바디'와 유사한 컨셉트, 그것도 상당부분 불성실한 싱글로 시장을 두드렸다. 거기다 국내 활동은 2주로 제한하고, 나머지는 모두 미국 활동에 올인한 상태다. 사실상 국내에선 '미국시장 진출에 성공한 그룹'이라는 사대적 마케팅 하나만 미는 식이다. 이런 막무가내 발상이 먹혀 들어갈리 없다.
그룹명을 딴 화장품 브랜드 ‘WG by WONDERgirls'의 모델로 활동하게 된 원더걸스. 탈퇴한 선미 대신 새 멤버 혜림이 참여했다. 사진제공 뱀코. ☞ 사진 더 보기
▶ 미국시장 성과, 그리고 남은 과제
끝으로 JYP엔터테인먼트 측 이미지 문제도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2PM 박재범 사건 등에 크게 영향 받았다 보긴 힘들다. 아무리 대중이 기획사 시스템에 많은 지식을 갖게 됐다 해도, 한 그룹에서 벌어진 사건을 동일 소속사 타 그룹에까지 연결 지어 생각지는 않는다. 철저히 원더걸스에 국한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한정지어 생각해봐도, JYP엔터테인먼트 측은 여전히 이미지가 실추될 만한 일을 많이 벌였다.
빌보드 '핫100' 76위 이슈만 해도 그렇다. 실질적인 대중 인기를 보여주는 음원 다운로드나 에어플레이 측면에선 형편없는 결과를 낳았고, 어린이 의류매장 판매를 중심으로 달성한 결과임에도 이 부분을 명확히 알리질 않았다. 한 마디로 '어린이 아이돌'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원더걸스가 미국시장을 제패했다'는 식의 보도가 질릴 만큼 이어지고 난 뒤에야 결국 누리꾼들에 의해 그 실체가 밝혀져 큰 실망을 사게 됐다.
더군다나 '아시아인으로서 29년 만의 빌보드 핫100 진입'이라는 JYP엔터테인먼트 측 주장은 아예 거짓으로 드러났다. SBS '스타킹'에도 출연한 바 있는 필리핀 출신 소녀가수 샤리스 펨핀코가 지난 2007년 이미 '핫100' 진입을 이뤘기 때문이다. 그것도 원더걸스보다 월등히 높은 44위에 랭크됐었다. 물론 펨핀코는 리메이크곡으로 진입한 것이어서 '노바디'와는 상황이 다를 수 있지만, 어찌됐건 홍보 과정에서 거짓이 개입된 것만은 분명했다.
이렇게 실망을 주는 실체들이 이어지다보니 자연스레 JYP엔터테인먼트의 옛날 과대 홍보 사례들이 연상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원더걸스의 대중적 이미지도 상당부분 추락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1년8개월만의 컴백임에도 '약발'이 잘 안 섰다는 분석이다.
이처럼 '2DT'는 원더걸스, 그리고 JYP엔터테인먼트를 둘러싼 잠재된 문제점들을 일거에 드러내는 싱글이라 볼 수 있다. '2DT'의 초반 부진은 결국 원더걸스와 JYP엔터테인먼트의 근원적 속성과 판단에 따른 결과라는 것이다. 싱글 하나의 흥망 정도로 치부될 수가 없다.
그리고 만약 '2DT'의 초반 부진이 끝까지 이어진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원더걸스는 사실상 1년8개월 동안 '자리를 비웠기에' 여전히 소녀시대와 함께 여성 아이돌그룹 양대 산맥으로 남을 수 있었다. 그 빈틈을 미디어가 대신 채워줘 위상을 유지했다. 그러나 '2DT' 결과에 따라 미디어도 다른 자세를 취할지 모른다. 미디어가 가장 넘어가기 쉬운 사대적 마케팅의 허울이 벗겨지고 나면, 남는 것은 '과대포장'이라는 또 다른 이슈거리다.
어찌됐건 박진영이 원더걸스를 통해 도달코자 하는 궁극적 목표가 '미국시장에서의 성과'라면, 그 부분은 전략적 사고와 치밀한 시스템을 통해 충분히 이룰 수 있을 것이라 본다. 그러나 박진영이 미국시장에 올인하듯 한국 대중 역시 미국시장만 바라보고 있으리라는 기대는 무리다. 그동안 한국시장은 또 다른 방향을 설정해 계속 진화할 것이고, 원더걸스가 이 부분을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이상 완만하지만 분명한 하강곡선을 그릴 것은 자명하다.
치열하고 광포하게 꿈틀대는 대중문화산업 내에서, 두 마리 토끼란 개념상으로만 존재할 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박진영이 이 지점에서 결국 미국시장이라는 토끼를 선택한다면, '2DT'는 어쩌면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될 원더걸스와 한국 대중 사이 마지막 작별인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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