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선 도전에 나선 한나라당 소속의 영남권 A 광역자치단체장은 이달 초 6·2지방선거의 대표 공약을 알려달라는 동아일보 기자의 전화를 받고 이같이 말했다. 한나라당이 강세인 영남권에서 당선 가능성이 높은데 귀찮게 무슨 공약 검증을 하느냐는 반응이었다.
본보는 한국정치학회 매니페스토연구회 전문가들과 함께 16개 광역단체장 주요 후보 35명의 대표 공약을 평가했다. 이 결과는 14일부터 28일까지 12번에 걸쳐 본보 지면에 상세히 소개됐다. 천안함 폭침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 행사 등 외부 요인이 선거 판세를 뒤흔들었지만 유권자들은 정책과 공약을 통해 한 표를 행사해야 한다는 정책 선거의 믿음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2006년 지방선거 때부터 시작된 매니페스토 운동이 본격화되면서 나름대로 매니페스토(대국민 정책계약)라는 용어도 익숙한 표현이 됐다. 평가단 교수들은 16개 광역단체장 후보들이 이번에 제출한 대표 공약들은 예전처럼 황당한 공약(空約)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매니페스토 운동이 나름대로 정상 궤도에 오른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본보가 직접 후보 측과 접촉한 결과 아직 정책선거의 길은 멀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정작 공약을 집행해야 할 A 단체장처럼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는 사례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본보 기자들이 공약 검증을 위해 후보 캠프와 접촉한 결과 수도권 등 접전지가 아닌 각 당의 강세지역에 나선 후보일수록 상대적으로 정책이나 공약 준비에 소홀한 것 아니냐는 느낌을 받았다. 당장의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성격이 짙은 공약도 적잖게 눈에 띄었다는 것이 공약 검증에 참가한 전문가들의 분석이었다.
공약 검증에 참가한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가상준 교수는 “각 후보가 만들겠다고 약속한 일자리 수를 합하면 전국적인 실업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을 정도”라고 꼬집었다. 건국대 사회복지학과 신준섭 교수는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을 실시할 경우 얼마나 양질의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제공할 수 있을지도 살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6·2지방선거가 28일로 이제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지방 단체장의 정책과 공약은 유권자들의 삶과 직결된 현안이다. 유권자들의 냉철하고도 현명한 한 표는 당장 삶의 지평을 바꾸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언론이 공약 검증을 소홀히 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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