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을 뒤엎은 초접전이었다. 2일 개표 초반에는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가 1∼2%포인트 앞서 나갔지만 오후 9시 45분경 민주당 한명숙 후보가 역전했다. 두 후보는 3일 0시 30분까지도 1%포인트 이내에서 피 말리는 경합을 벌였다.
양측 캠프의 표정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낙승을 점쳤던 오 후보 측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반면 고전을 예상했던 한 후보 캠프는 환호하며 고무된 표정이었다.
실제로 2일 오전까지만 해도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 마련된 오 후보 선거운동본부는 느긋한 분위기였다. 선거 전에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많게는 20%포인트 차로 앞섰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 후보의 지지율이 선거 초반 반짝 상승세를 타다 정체됐다는 점에서 추세로 보면 오 후보가 여유 있게 승리할 것으로 내다봤다. 일부 캠프 관계자들은 이번 지방선거보다는 다음 대선에서 오 후보가 어떤 스탠스를 취할 것인지를 놓고 의견을 나눌 정도였다.
하지만 오후 들어 방송사 출구조사에서 양측의 격차가 좁혀지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긴장이 감돌기 시작했다. 특히 투표 마감 직후 발표된 방송 3사의 출구조사에서 0.2%포인트 차로 한 후보가 뒤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자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종현 선거본부 언론특보는 “한 후보가 막판에 ‘전쟁론’을 들고 나와 젊은층의 감성을 자극하면서 예상외로 어려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특보는 “한 후보와 달리 일관된 정책을 제시하며 신뢰를 쌓아온 만큼 끝까지 결과를 지켜보자”며 애써 담담한 태도를 보였다.
좀처럼 한 후보를 따라잡지 못한 채 불과 수천 표 차로 계속 뒤지자 캠프 분위기가 눈에 띄게 가라앉았다. 보다 못한 한 참모는 “죽은 사람(노무현 전 대통령)이 산 사람 못 잡아 먹는다. 끝까지 응원하자”라며 기운을 북돋우려 애쓰기도 했다. 일부는 격차가 좁혀질 때마다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지만 이내 착잡한 표정으로 돌아가곤 했다. 캠프 측은 개표가 가장 늦었던 강남구의 득표 상황에 마지막 희망을 거는 모습이었다. 오 후보는 3일 오전 1시경 선거본부에 나와 굳은 표정으로 개표결과를 지켜보다 “민심의 무서움을 깨달았다. 기초단체장 결과를 보면 한나라당의 패색이 짙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반면 한 후보 캠프는 한껏 상기된 분위기였다. 당직자들과 캠프 관계자들은 취재진에게 “어떻게 될 것 같냐”며 신중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전체적으로는 대역전극이 현실로 나타난 게 아니냐는 반응이었다.
한 당직자는 “방금 마포구 공덕동이 개표를 시작했는데 아파트촌이라 민주당에 불리한 곳인데도 우리가 1000표가량 앞서고 있다고 한다. 내용으로 보면 우리가 압승한 것”이라며 강한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선거본부에서는 특히 서울 강북권에서 우세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나자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층이 다시 응집하고 있다며 반가워했다. 또 투표 당일까지도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투표를 독려한 게 큰 도움이 됐다며 덕담을 나누기도 했다.
이해찬 선거대책위원장은 3일 0시 무렵 기자들에게 “방송을 보면 현재 15% 정도 개표된 것으로 나오지만 우리가 파악한 현장 집계 상황을 보면 22.1% 개표됐고 표 차는 3만6000여 표에 이른다”며 “판세가 바뀔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3.5∼4%포인트 차로 이길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시내 모처에서 휴식을 취하며 개표 결과를 지켜보던 한 후보는 이날 0시 5분경 선거대책본부가 있는 민주당 여의도 당사에 들어섰다. 그는 만면에 웃음을 지으면서 “끝까지 봐야 알겠지만 지금 추세라면 당선이 희망적이다. 저는 시민들이 이번 선거에서 이명박 정부의 실정을 심판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명숙 개인의 승리가 아니라 서울시민의 승리다. 감사드린다”며 “범야권 시민세력이 함께했다. 선거 결과를 겸손한 마음으로 지켜보겠다”고 덧붙였다. 일부 지지자들은 서울광장에 모여 개표 결과를 지켜보며 최종 승리를 기원하는 모습도 보였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류원식 기자 rew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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