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자로 활동하다 미술전시회를 열었고, 장편소설을 출간했으며, 자작곡을 담은 음반을 발표하고 영화연출까지 했다. 여러 분야에 걸쳐 다재다능함을 뽐내는 구혜선은 연예계에서 ‘르네상스적 인간’의 전형으로 불린다. 하지만 그녀는 “(언론이)좋게 포장해줘서 그렇지, 전 이것도 저것도 아닌 ‘명확하지 못한 사람’이었다”며 웃었다.
부러움만 샀을 것 같은 다재다능함이 구혜선에겐 “명확하지 못한 재능”이었고, 그래서 “앞으로 살아갈 것에 대한 고민”을 줬다. “제가 이것저것 하다보니 주위에서 ‘넌 도대체 앞으로 뭐가 되고 싶은 거니’라는 욕도 많이 먹었어요. 그래서 사는 것에 대한 고민이 많았죠.”
구혜선의 그런 고민들은 영화연출을 하면서 멈췄다. 2004년 MBC 시트콤 ‘논스톱5’에 출연하며 연기를 시작했지만 동시에 연출에 대한 꿈도 이때부터 꾸기 시작했다. 마침내 2008년 단편영화 ‘유쾌한 도우미’로 감독 데뷔했고, “명확하지 못해 고민이 많았던” 미래도 명확해지기 시작했다. 24일 개봉하는 자신의 첫 장편영화 ‘요술’을 연출하면서 “감독이 운명”임을 절실히 깨닫게 됐다.
“연출을 하면서 ‘이걸 하려고 내가 여태껏 명확하지 못하게 살았나보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무엇도 아니었고, 내가 그린 그림, 음악, 글도 아무 존재도 아니었어요. 그저 나 혼자만의 작품이었는데, 드러내고(발표하고) 소통하면서 존재의 가치가 생기기 시작했고, 감독을 하면서 모든 걸 아우르게 됐죠.”
그러나 영화에 출연조차 해본 적 없는 구혜선의 감독 데뷔는 좌충우돌의 과정이었다. 촬영현장에서 그녀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그건 안돼!”였고, 이와 비례해 가장 많이 한 말은 “왜 안돼?”였을만큼 촬영 메커니즘이나 시스템을 몰랐다.
“그래도 ‘요술’하면서 타협도 필요한 것이란 걸 알게 됐고, 귀도 많이 열렸어요. 알면 알수록 겁이 나니까 겁 없이 했지만, 이번엔 철이 좀 든 것 같아요. 저와 계속 작업한 촬영감독님이 ‘애 키우는 것 같다’고 하실 정도니까요.”(웃음)
‘요술’은 예술학교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세 명의 젊은 음악가들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경쟁, 그리고 그들의 미묘한 삼각관계를 그린 작품이다. 러닝타임 95분 내내 음악이 흐른다.
첫 작품 ‘유쾌한 도우미’는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 차이나모바일영화제 등 여러 영화제에 초청돼 호평을 받았지만, ‘요술’은 흥행을 신경써야 하는 장편상업영화다. “어렵게 촬영했는데 흥행에 부담되지 않느냐”는 물음에 “감독 계속 하고 싶다”며 유쾌한 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