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 나오토는 누구
시민운동가 출신 맨땅서 출발
하토야마와 민주당 창당 주도
관료에 호통 잘쳐 ‘가시’ 별명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신임 총리의 정치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세습정치인처럼 대대로 내려오는 정치인 집안도 아니어서 맨땅에서부터 표를 긁어모아야 했다. 세 차례 연속 낙마한 끝에 34세인 1980년 처음으로 도쿄 선거구에서 중의원 배지를 달았다. 배지를 달자마자 “천하를 잡겠다”는 일성을 토해냈다고 한다. 30년 만에 그 꿈을 이뤘다.
그의 부친은 유리회사 중역이었다. 그는 재수 끝에 도쿄공업대 응용물리학과에 들어갔고, 변리사 시험에 세 번 낙방한 뒤 1971년 자격증을 땄다. 그를 두고 집념의 정치인이라는 말이 따라붙는 것은 이런 경력과 무관하지 않다.
그가 정치인으로 우뚝 선 것은 1996년 연립정권인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내각에서 후생상을 맡았을 때다. 당시 혈액제제에 의한 에이즈 감염이 사회문제로 대두되자 각료이면서도 관료의 잘못을 입증하는 서류를 찾아낸 뒤 관료사회의 거센 반발을 누르고 공개했다. 곧바로 피해자를 찾아가 진솔하게 사죄하는 그의 모습이 국민에게 신선한 감동을 안겼다. ‘관료개혁의 선봉’ ‘장래의 총리감’이라는 이미지를 굳힌 계기였다. 의원 활동은 약품과 경제, 토지 문제 등에 치중하면서 정책통으로도 두각을 드러냈다.
사회민주연합에서 정치인생을 시작한 그는 자민당에는 한 번도 의탁하지 않았다. 1996년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총리와 함께 옛 민주당을 창당했고 1998년 다른 야당을 흡수해 현재의 민주당을 만들어 초대 대표를 맡았다. 1998년과 1999년, 2002∼2004년에도 대표를 지냈다. 그러나 당 대표 선거에 일곱 번 출마해 네 번 떨어지고 세 번 당선했을 만큼 그의 정치인생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후생상 시절 관료들에게 버럭 화내는 목소리가 집무실 밖에까지 들리곤 한 데에서 ‘이라(刺·가시) 간’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아내와 2남이 있으며 장남 간 겐타로(菅源太郞)도 중의원 선거에 낙선한 경험이 있다. 술과 바둑, 고양이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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