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드레스 여인과 사랑에 빠진 젊은 화가가 있다. 화가는 사랑을 애원하지만 여인에게 농락당할 뿐이다. 절망에 빠진 그에게 여인은 천장의 올가미를 가리킨다. 화가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곧 가면을 쓴 죽음이 방 안으로 들어선다. 가면을 벗자 바로 그 노란 드레스 여인의 얼굴이 드러난다.
프랑스 시인 장 콕토의 시를 바탕으로 하는 롤랑 프티의 ‘젊은이와 죽음’은 죽음마저 숙명이 아닌 인간의 선택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죽음과 그에 대한 공포가 만연해 있던 유럽에 충격을 던진 작품이다.
4일 오후 러시아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에서 이 작품이 공연됐다. 볼쇼이 발레단으로서는 초연 무대다. 작품은 양발을 바깥쪽으로 벌리는 턴아웃이나 무릎을 굽히는 플리에 등 기본적 발레 자세로 시작했다. 바흐 ‘파사칼리아와 푸가’의 느린 박자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무용수의 기본기가 그대로 드러나는 순간이다. 테이블을 뛰어넘거나 의자를 넘어뜨리는 등 곡예에 가까운 동작이 많아 점프력, 힘, 균형감각도 필요하다. 젊은 화가 역을 맡은 이반 바실리예프는 이번 공연이 첫 주역인데도 기술적으로 완벽한 무대를 선보였다. 특히 점프가 높고 체공시간이 길었다. 노란 드레스 여인 역의 스베틀라나 자하로바도 균형 잡힌 신체가 돋보였다.
표현력에서는 아쉬움이 남았다. ‘젊은이와 죽음’은 약 18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사랑으로 인한 고통, 죽음에 대한 공포 등 깊고 어두운 감정을 담아야 하는 작품이지만 20세의 바실리예프는 유기적으로 역할에 몰입하기보다는 기계적으로 동작을 수행하는 데 그쳤다.
이날 함께 공연된 프티의 ‘스페이드 여왕’과 조지 발란신의 ‘세레나데’는 볼쇼이 발레단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는 공연이었다.
푸시킨의 동명 소설이 원작인 ‘스페이드 여왕’은 무대 미술이 돋보였다. 18세기 후반 러시아라는 시대 배경을 그대로 담기보다는 거대한 카드를 그린 무채색 배경막으로 초현실적 분위기를 연출했다. ‘세레나데’는 동작으로 음악을 표현해내는 작품이다. 수학적으로 계산된 안무이기 때문에 군무가 완벽히 일치하고 무용수들의 실력이 고르게 좋아야 한다. 어릴 때부터 같은 발레학교에서 훈련을 받고 전체 인원이 200명이 넘는 볼쇼이 발레단의 명성을 보여줄 수 있는 작품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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