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대표팀이 12일 남아프리카공화국 포트엘리자베스 넬슨만델라베이에서 열린 월드컵 B조 첫 경기에서 이정수(가시마)의 헤딩 선제골과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쐐기 골을 앞세워 유럽의 복병 그리스를 2-0으로 물리쳤다. 이날 승리는 큰 의미가 있다. 한국이 월드컵 원정에서 유럽 팀을 꺾은 것은 이번이 처음. 또 허정무 감독은 한국인 사령탑으로 월드컵 사상 첫 승을 거뒀다.
한국은 첫 경기를 잡아 승점 3점으로 이날 나이지리아를 1-0으로 잡은 아르헨티나를 다득점에서 제치고 조1위가 돼 16강에 진출할 가능성을 크게 높였다. 32개 팀이 본선 조별리그를 치르기 시작한 1998년 프랑스 월드컵부터 첫 판을 이긴 팀은 86.1% 16강에 올랐다. 하지만 아직 안심할 수는 없다. 한국은 17일 요하네스버그 사커시티 스타디움에서 남미의 강호 아르헨티나, 23일 더반 스타디움에서 아프리카의 복병 나이지리아와 2, 3차전을 치러야 한다. 태극전사들의 몸은 가벼웠다. 그리스를 꺾겠다는 비장함도 묻어났지만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허 감독이 강조한 '승리를 원하지만 즐기는 축구를 하자'는 유쾌한 도전에 걸맞게 느긋하게 경기를 즐기며 그리스를 지배했다. 김정우(광주)와 기성용(셀틱)은 중앙에서 공수를 조율하며 볼을 배급했고 좌우에선 박지성과 이청용(볼턴)이 사이드를 돌파하며 상대 수비라인을 흔들었다. 염기훈(수원)은 박지성과 자리를 바꿔가며 상대 수비라인을 혼동케 했고 수비 땐 페널티지역까지 내려오며 압박했다. 첫 골은 예상보다 일찍 터졌다. 전반 7분 이영표(알 힐랄)가 왼쪽 사이드를 돌파하다 코너 부근에서 얻은 프리킥을 기성용(셀틱)이 잘 감아 올렸고 골 지역 오른쪽에서 이정수가 오른발로 골네트를 갈랐다. 콘스탄티노스 카추라니스(파나티나이코스)가 머리로 걷어낸다는 게 살짝 스치고 뒤로 빠지는 것을 이정수가 놓치지 않고 골문 안에 차 넣었다.
박지성은 후반 7분 승부를 결정짓는 쐐기 골을 터뜨렸다. 미드필드 중앙에서 볼을 잡아 루카스 빈트라(파나티나이코스)와 아브람 파파도풀로스(올림피아코스)의 더블 수비 사이로 골 지역 왼쪽으로 파고들어 골키퍼 알렉산드로스 조르바스(파나티나이코스)의 역을 찌르는 왼발 슛으로 골네트를 갈랐다.
그리스는 첫 골을 일찍 내준 뒤 당황한 빛이 역력하며 플레이를 잘 이끌어나가지 못했다. 후반 시작과 동시에 공격형 미드필더 요르고스 카라구니스(파나티나이코스)를 빼고 흐리스토스 파차조글루(오모니아)를 투입했고 후반 15분 판텔리스 카페타노스(스테아우아)를 투입해 공격의 흐름을 바꾸려 했지만 한국의 짜임새 있는 수비라인을 뚫지 못했다. 그리스는 후반 35분 테오파니스 게카스(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가 골 지역 정면에서 회심의 왼발 슛을 날렸지만 골키퍼 정성룡(성남)의 선방에 막혀 땅을 쳤다.
허 감독은 노장 이운재(수원) 대신 정성룡이 선발로 투입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통산 네 번째 월드컵(1994, 2002, 2006, 2010년) 무대에 오르는 이운재였지만, 장신 선수들이 즐비한 그리스 전을 감안해 키가 크고 순발력이 좋은 정성룡을 낙점했다. 정성룡은 상대 크로스 때 펀치를 날리고 공중 전 때 몸싸움까지 하며 골문을 잘 지켰다.
허 감독은 또 오른쪽 수비수에 차두리(프라이부르크)를 세웠다. 차두리와 오범석(울산), 왼쪽 풀백 자원인 김동진(울산)까지 모두 실험대에 올려놓고 좌우 풀백진의 운용을 고심해 왔는데 결국 선수들의 체격 조건이 좋은 그리스와 대결인 점을 고려해 차두리를 선발로 내보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