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영화 '포화 속으로'에서 주인공을 맡은 빅뱅의 T.O.P. 최승현은 올해 스물세 살이다. 올해 발발 60주년이 되는 한국전쟁은 아마 그의 부모도 태어나기 이전의 일일 것이다. 아예 유전자가 다른 것 아니냐는 소리를 듣기도 하는 이 어린 세대에게, 전쟁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이 영화의 연출을 맡은 이재한 감독은 12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성장했다. 대학 역시 뉴욕에서 다녔다. 한국보다 외국생활을 더 오래한 이 해외파 감독에게, 한국전쟁은 또 어떤 의미일까.
▶ 모난 데 없는 웰 메이드 전쟁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기 전 영화 자체보다는 영화 외적인 질문들이 먼저 떠올랐다. 아마도 한국전쟁이라는 특수한 소재를 다루기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최근 천안함 사건으로 우리는,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아직 '휴전' 중인 분단국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체감하지 않았던가.
결론부터 말한다면 '포화 속으로'는 그다지 모난 데가 없는 영화다. 상업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마치 대중의 눈높이를 자로 잰 듯 정확히 맞추어 그 높이에 맞게 만들어낸 상품과 같다. 극적인 소재와 감각적인 편집, 그리고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의 사실성이 잘 결합된 한편의 웰 메이드 전쟁 블록버스터다. 6월 박스 오피스를 기대해 볼만하다.
전작 '내 머릿속의 지우개'로 서정적인 영상감각을 보여준 적 있는 감독의 영상미학 역시 기대해도 좋다. 영화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전투신은 잘게 쪼개어 뮤직 비디오로 써도 좋을 정도이고 (긍정적인 의미로 말하는 것이다), 화려한 색감과 정교한 빛의 조화는 소위 '때깔 좋다'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오게 한다. 더구나 그야말로 '유전자가 다른 듯' 멋진 남자 배우들의 뛰어난 영상미(!)와 호연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그러나 학도병과 전쟁이라는 다면적 소재를 다룬 만큼, 이 영화를 잘 만든 오락거리 한편으로 갈음하고 넘어가기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앞서 '상업적'으로 모난 데가 없다고 한정 지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 어린 영웅들의 슬픈 참상 전하기엔 아쉬운 드라마
학도병이라는 소재는 그 이름만으로도 무척이나 극적이다. 아직 어른들의 사랑과 보호만 받기에도 부족한 어린 학생들이 인생에 대한 꿈 한번 제대로 꾸어보지도 못하고 포화 속에서 스러져갔다. 이들은 소속도 군번도 없기에 이름조차 남기지 못했다고 한다. 전쟁이라는 소재 역시 사랑, 운명, 증오, 우정, 잔인함, 딜레마 등등, 인간의 삶과 감정에 대한 무궁무진한 사연이 녹아있는 거대한 샘이다. 소재만으로도 이미 많은 것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포화 속으로'는 이러한 드라마의 실타래를 풀지 아니하였다. 대신 하나의 영웅 만들기 식 구조로 영화의 스토리를 평면화하였다. 이는 아마도 한국전쟁이 임진왜란만큼이나 멀게 느껴질 수 있는 감독과 배우, 그리고 현재 우리 모두의 인식을 반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물질적 풍요 속에 자라난 우리 모두에게 민족상잔의 비극이라던가, 전쟁의 참상과 같은 글귀들이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테니까.
1950년 6월, 한국 전쟁이 시작된다. 북한군은 파죽지세로 진격을 거듭하고 남한군은 연합군이 도착할 때를 기다리며 최후의 전선인 낙동강으로 전력을 집중시킨다. 포항을 지키던 강석대(김승우 분)의 부대도 집결명령을 받지만, 전선의 최전방이 되어버린 포항을 비워둘 수 없어 학도병 71명을 그곳에 남겨둔다. 단지 전투경험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중대장으로 임명된 오장범(T.O.P.)은 소년원에 끌려가는 대신 전쟁터에 자원한 구갑조(권상우)를 포함한 학도병들을 이끌기 시작한다. 그리고 북한군 진격대장 박무랑(차승원)이 이끄는 인민군 유격대가 포항을 향해 진격하자, 그들은 모든 것을 던져 전투를 시작한다.
▶ 71명의 학도병은 누군가의 아들이고, 오빠이며, 동생이고, 친구이다
이 71명의 학도병은 총 한 번 잡아본 적이 없는 학생이다. 아직 교복을 벗지도 못한 채 전쟁터에 나섰다. 이들은 모두 누군가의 아들이고, 오빠이며, 동생이고, 친구이다. 고등교육을 받고 있던 이들은 해방 직후 빈곤에 허덕이던 국민들에게 미래를 책임질 희망이기도 했다. 이들 중 누군가는 홀어머니의 눈물을 닦아주고 나섰을 것이고, 누군가는 가족을 책임질 형 대신 나섰을 것이며, 누군가는 사랑하는 이를 잃고 슬픔 속에 자원했을 것이다. 이렇게 각자의 사연을 가슴에 품고 전쟁터에 온 것이, 바로 이들 71명의 학도병들이다.
그러나 전쟁은 이들을 개개인이 모인 71명의 인간이 아니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하나의 적으로만 본다. 북한군과의 전투 중 오장범이 자신보다 훨씬 어린 북한군 어린아이를 쏘아 죽이는 것처럼, 전쟁은 인간을 그저 총을 든 전쟁무기로만 여긴다. 막상 전장에 있는 그 누구도 시작되길 원치 않았던 폭력 속의 몰인간성. 바로 전쟁의 잔인함이다.
만일 '포화 속으로'가 이러한 전쟁의 이면을 들여다보기 위해 조금만 더 노력했다면, 이 영화는 훨씬 더 강한 폭발력을 가졌을 것이다. 주인공인 오장범은 트럭에 실려 가던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모습을 회상하고, 구갑조는 북한군에 의해 부모를 모두 잃고 전쟁에 나섰다는 사연이 수송원의 입을 통해 전달된다. 하지만 이 둘을 제외한 나머지 학도병들은 어디서, 어떻게 전쟁터로 실려왔는지 알 수가 없다. 장범과 갑조의 사연마저도 그들의 처지에 공감하기엔 충분히 그려지지 않았다. 의지할 수 있는 정규군은 단 한 명도 없이 목숨을 담보로 전장에 남겨진 학도병들의 두려움 역시 절박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이들은 다소 천진난만하게 학교를 지키다가, 투항하지 않으면 모두 죽여버리겠다는 박무랑의 대담한 통첩에도 크게 동요치 않고 전투 준비를 한다. 결국 이들은 포탄 속에서 하나씩 스러져가지만 각자의 사연과 애틋함을 알 길이 없기에 그 희생이 그리 입체적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장범과 갑조의 최후 역시 전쟁에 희생된 안타까운 어린 영혼들로서의 아픔은 배제되고, 전쟁 영웅이 된 학생들의 장렬한 전사로만 보인다. 긴장을 응집시켰다가 터뜨리는 힘은, 그래서 약해진다.
▶ 영화의 또 다른 재미…재능 있는 배우 T.O.P.의 발견
한편 이 영화로 그 누구보다 큰 관심을 받고 있는 사람은 아마도 T.O.P.일 것이다. 이는 그를 신처럼 숭배하는 어린 세대뿐 아니라 다양한 나이 대를 가진 내 주위 사람들의 반응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보통 영화에 대해 이렇게 묻는다. "그 영화 어때요?"라고. 하지만 이 영화에 대해서는 이렇게 물었다. "T.O.P. 어떻던가요?".
이 시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아이돌 가수이자 영화의 주 관객층을 극장으로 끌어들일 메인 티켓 파워로서, 그리고 일천한 연기 경력에도 113억원이 투입된 대작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된 신인 배우로서, 그가 극복해야 할 과제가 누구보다 묵직하기 때문일 것이다.
'오장범'이라는 캐릭터는 본격적인 첫 연기 도전장을 내밀기엔 무겁고 어려운 역할이다. 그러나 보통 아이돌 스타들이 선호할 법한 폼 나고 트렌디한 작품이 아니라 이처럼 위험이 높은 역할을 맡았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가 연기에 대해 진지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스물 세 살의 이 개성강한 힙합 래퍼는 60년 전 열여섯 살 학도병의 겁먹고 애잔한 눈빛을 무척이나 훌륭하게 표현하였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경상도 사투리 연기는 다소 부자연스럽고 대사 전달력은 아직 미흡한 측면이 있으나, 그의 몸짓과 표정은 배우로서의 태생적 끼와 재능이 잠재되어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이 한편으로 모든 것을 말 할 수는 없겠지만, 그가 이 영화를 통해 배우로서 성공적인 첫 걸음을 내디뎠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낙동강 전선으로 향하며 강석대는 오장범에게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진다. "학도병은 군인인가, 군인이 아닌가?" 올해 영화와 방송계에는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을 기념해 막대한 예산을 퍼부은 기획물들이 대거 쏟아져 나오고 있다. 우리는 과연 전쟁 중일까, 전쟁 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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