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이더의 로망, 바이크로 2만4000여km 유라시아횡단
● 동아닷컴을 통해 이들의 여정을 두 달간 연재
《대한민국의 '평범남' 4명이 오토바이를 타고 유라시아 대륙횡단에 나섰다. 6월7일 서울을 출발해 속초 동명항을 거쳐 러시아 자루비노에 도착한 이들은 앞으로 2개월에 걸쳐 아시아와 유럽대륙을 관통하게 된다. 이민구(42·의대교수) 김은석(38·PD) 심재신(35·중소기업 대표) 최태원(28·회사원) 4명으로 구성된 '투 로드(Two Roads)' 팀. 동아닷컴은 투 로드 팀이 현지에서 보내온 여행기를 사진, 동영상과 함께 매주 2, 3회 연재할 예정이다.》
■ 여정 : 서울(6일) 속초 동명항(7일)-자루비노(8일)
▶ 출발 (#작성자 심재신)
어젯밤엔 2시간 정도 밖에 못 잤다. 여행 시작이다.
8개월간의 준비 기간 끝에 맞는 디데이(D-day)다. 주섬주섬 어제 정리해 놓았던 짐을 챙겼다.
와이프가 아침을 먹을 것인지를 묻는다. 속이 안 좋다고, 사람들과 만나서 먹겠다고 거짓말했다. 두 달 넘게 혼자만의 휴가를 가는 사람이 와이프에게 아침을 요구할 염치는 없는 노릇.
아이들과 함께 내려가 바이크에 짐을 싣고 기록용 사진을 찍었다. 시동을 걸고 헬멧을 쓰고 장갑을 끼고 쭈그려 앉아 아이들을 안아 주었다. 마냥 해맑게 웃는 두 딸… 이 녀석들 아직 '두 달'이라는 개념이 없기에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모른다. 뽀뽀를 해주고 싶었으나 이미 헬멧을 써 버렸으니 할 수가 없다. 여정을 시작하기도 전에 첫 실수를 했다.
"잘 놀다 올 테니 애들 잘 부탁해."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다. '미안해. 고마워….' 그리고 집과 멀어져 갔다. ▶ 액땜
1차 집결장소인 강남 모터라드에 대원들이 모였다. 잠을 설쳤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다들 잠은 잘 잤느냐며 안부를 묻는다.
잠시 후 고함소리와 함께 민구 씨의 바이크가 넘어진다. 쓰러지는 바이크를 잡으려던 태원 씨는 손가락을 다쳤는지 고통스러워한다. 민구 씨는 바이크가 넘어지는 것으로 첫 액땜을 했고 불쌍한 태원 씨는 손가락에 큰 상처를 입으면서 액땜을 했다. 액땜한 셈 쳤지만 이런 사고는 몸을 위축시켜 안전 운행에도 도움이 안 된다. 특히 태원 씨의 손가락 상처는 클러치를 잡을 때마다 고통이 생기는 딱 그 부위라 더 걱정이 된다.
동호회 환송 투어 모임이 있는 2차 집결지로 무겁게 이동했다. 그 사이, 은석 씨의 바이크 스페어 키가 날아가버림으로써 마지막 액땜을 했다.
▶ 고마운 사람들
2차 집결장소인 양평 만남의 광장에 도착하니 그야말로 장사진이다. 20대 정도의 바이크가 떠나는 우리팀을 속초까지 배웅해 주겠다고 이른 새벽부터 나와 있었다. 이어지는 촬영과 환송 행사, 그리고 구경하는 사람들…. 그날 만남의 광장 휴게소는 우리가 전세 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속초까지 150km를 달리는 동안 우리 팀의 촬영 차량은 쉴 새 없이 고마운 사람들 하나하나를 카메라에 담았다. 당연한 일이지만 바이커들은 자신이 달리는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다. 그들에게 작은 보답이 되길….
하룻밤을 잔 후 이른 아침부터 부산을 떨었다. 태원 씨의 상처 치료와 바이크 짐 배분, 숙소 정리…. 바이크라는 한정된 공간에 많은 집을 단단히 묶어낸다는 게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작업을 여행 기간 내내 매일 해야 한다는 사실이 답답할 뿐이다.
속초 동명항에 도착하니 몇몇 동호회 분들이 이미 와 계시다. 어제 못 왔으니 미안하다며, 한분은 아침 먹이겠다고 오셨고 다른 세분은 출항 때까지 잡일을 돕겠다고 서울에서 새벽에 출발해 오셨다. 그러곤 우리에게 밥을 먹이고 짐을 나르고…. 아 고마운 사람들….
▶ 동춘 페리
짐 검사를 마치고 승선을 했다. 동물원 구경하듯 신기하게 바라보는 사람들. 몇몇은 어디까지 가냐고 질문을 해댄다. 답을 해준다. 동물들이 영웅이 되는 순간이다. 1시간 이상 배를 타본 기억이 없다. 속초에서 자루비노까지 16시간이 걸린다고 하니 멀미할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영웅 대접 해준다고 늙은 선원이 침대를 바꿔 준다. 마트에서 주스를 하나 사서 만 원짜리와 함께 첫 뇌물을 드렸다. 그리곤 도착할 때까지의 편의와 짐을 잘 봐줄 것을 부탁 했다. 배가 출발한다. 좁은 객실과 냄새 그리고 엄청난 진동. 16시간이 160시간처럼 느껴지는 순간이다.
딱히 할 일이 없어 이리저리 문자를 보낸다. '배가 떠났으니 이젠 한동안 돌아갈 수 없다'고, 그리고 고맙다고… 마지막으로 와이프에게 문자를 썼다.
"배 출발하고 속초가 안 보일 정도까지 왔다. 기회 줘서 고맙다는 생각이 갑자기 드네…. 고맙다, 착한 마누라!"
문자가 발송 되지 않는다. 그새 통화권에서 이탈됐다. 오랜만에 와이프에게 고맙다는 말을 할 기회였는데…. 이번 여행 두 번째 실수다.
▶ 환송과 환영 (#작성자 이민구)
우리나라는 아시아 대륙에 붙어 있지만 분단 탓에 대륙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더욱이 요즘 차가워진 남북관계로 인해 항로마저 더 먼 공해상으로 돌아야 해 3시간이 더 걸린다.
자루비노항 배편에서도 많은 사람들과 함께한다. 백두산을 관광하는 단체 여행객이 많아서인지 승무원은 대부분 조선족이다. 어눌한 이북말투로 말을 걸어온다. "어데까지 갑니까?" "어, 대단합네다". 여기에 러시아에서 무역하는 상인들도 보인다.
2등선실 작은 방에는 화투판, 포커판이 펼쳐진다. 이런 광경은 첫날밤 가뜩이나 짐 도난을 걱정하는 우리들을 짐 곁에서 떠나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잠시 후 상인들도 궁금했는지 취기가 오르자 한 둘씩 우리 곁에 다가와 어디까지 가는지 물어본다. 한분은 여대생 딸에 대한 고민도 털어놓는다. 우리를 한 번 만나보라고 하고 싶다며 연락처를 받아간다.
블라디보스토크는 미항이라고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자루비노항은 그렇지 않다. 걱정이 앞선다. 모터사이클의 통관이 쉽지 않다고 한다. 몇 시간이 걸릴지, 혹 뇌물이라도 필요한지, 빠진 서류는 없는지 모두가 걱정이다. 사람과 짐이 먼저 상인들과 단체 여행객들과 입국심사대를 무리 없이 통과한다. 여행객들과 상인들이 모두 항구를 빠져나가고 우리만 남겨진다.
동춘항운의 자루비노항 담당자의 도움으로 현지 관세사를 만나 서류를 건네고, 러시아의 모터사이클 보험에 가입하고, 통관비를 세관에 제출한다. 2시에 항구에 도착해서 6시에야 서류를 세관에 접수한 것이다.
서류를 접수한 세관원은 방으로 들어가 감감 무소식이다.
두 시간이 흘러서 담당자가 급히 다시 와서 "여기 컴퓨터가 고장이 나서 서류등록을 못하고 있다"고 사연을 전해준다. 그러고 두 시간 정도가 더 흘러 10시경에야 모터사이클과 함께 항구를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여기서 느낀 러시아의 첫 인상은 오직 고마움뿐이다. 선진국이라 하는 나라들은 이런 경우 대부분 시간이 되면 퇴근하고 내일 오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우리를 위해 4시간이나 연장근무를 하며 우리가 모든 서류작업을 마치고 러시아를 여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러시아 관계자들에게 "스빠씨바(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러시아에서의 첫 숙박지인 슬라비양까로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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