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맨발’로 뛰었고 또 뛰고 있다. 이미 뉴질랜드의 설산을 헤맸고, 호주의 빠져나올 곳 없는 숲 속을 내달린 적이 있지만 이번엔 정말 ‘맨발’로 이역의 땅을 뛰었다.
인도네시아령의 작은 나라 동티모르에서 보낸 한 철. 2009년 말, 두 달 동안 낮에는 “40도가 넘어 머리카락이 탈색될 정도의 더위”에 시달리고, 밤에는 몰려드는 모기떼를 내쫓으며 달렸다. 하지만 배우 박희순에게 이런 어려움보다 더 힘겨웠던 건 “현지 아이들과의 소통”이었다.
24일 개봉하는 영화 ‘맨발의 꿈’(감독 김태균·제작 캠프비)은 박희순과 현지 아이들이 펼치는 소통의 일기이며 희망이다. ‘맨발의 꿈’은 ‘동티모르의 히딩크’라 불린 김신환 감독이 동티모르 아이들과 함께 2004년 일본 히로시마 유소년축구대회 우승을 거머쥐기까지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영화. 절망을 뒤로 한 한국인 감독과 순진무구한 동티모르 아이들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이다.
그런 만큼 주연배우 박희순과 아이들의 소통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저 멀리서 카메라가 운동장 한복판에 모인 우리를 담아내는 장면이었는데, 인솔자는 나였다. 오로지 내가 그들의 감독일 수 밖에 없었다. 주위가 산만해지면 대책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췄고 친구가 됐다. 박희순은 “골목대장이었다”며 그러나 “그러기까지 과정은 너무도 힘들었다”고 돌아봤다.
“특히 유일한 소녀였던 조세핀(마리나 시모스)을 끼고 살았다”는 그는 “실제로 딸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일단 연애를 하고 나서 결혼도 해야 하는데”라고 슬쩍 너스레의 말끝을 흐렸다.
- 촬영 과정이 상당히 힘겨웠던 것 같다. 예상한 바였을 텐데, 출연을 결심한 계기는 뭔가.
“한국의 어디에선가 벌어진 이야기였다면 (시나리오를 보고)그렇게 열광하지 않았을 거다. 동티모르라는 낯선 곳의 아이들과 소통한다는 점에 마음이 끌렸다. 아이들과 내가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을까 하는 것. 그런 얘긴 드물지 않은가. 그 도전의 가치가 있었다.”
- 그렇다면 ‘맨발의 꿈’이 당신에게 남겨준 건.
“소중한 추억과 경험. 내가 뭔가에 모험을 걸거나 도전을 하는 편은 아닌데, 영화를 통해 많이 해보는 것 같다.(웃음) 식민과 전쟁의 아픔 등 동티모르는 우리의 역사와 닮기도 했다. 그들을 통해서 날 바라볼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우리도 ‘맨발’이었을 때 꿈을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그걸 잊고 사는 건 아닐까.”
박희순은 그동안 강렬한 캐릭터로 자신을 각인시켰다. 그만큼 힘겨운 촬영과정이 있었다. 그 과정 역시 자신을 “넓혀”주기도 했지만 이젠 “사랑 이야기”도 하고 싶다고 박희순은 말했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사진|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