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칼럼/염희진]레이디 가가가 무릎 꿇은 ‘팝의 여신’ 테일러 스위프트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6월 24일 11시 41분


2006년 17살의 나이에 데뷔한 테일러 스위프트는 솔직한 가사와 담백한 멜로디, 소박한 기타 연주로 사랑받고 있다.
2006년 17살의 나이에 데뷔한 테일러 스위프트는 솔직한 가사와 담백한 멜로디, 소박한 기타 연주로 사랑받고 있다.

"스무 살의 내가 내린 중요한 결정이라곤 치과 보조사가 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스무 살인 테일러는 그래미 시상식에서 네 차례나 상을 탔다! (중략) 여성 록앤롤 컨트리 팝 싱어송라이터가 돌아왔고 그의 이름은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21)다. 음악 시장은 그가 구해줄 것이다."

'플릿우드 맥(Fleetwood Mac)'의 보컬인 스티비 닉스(62)는 최근 '타임'에 이렇게 썼다. 타임은 '올해의 인물 100인'에 테일러 스위프트를 선정했고 닉스는 그의 추천사를 맡았다. 1989년 12월 생으로 갓 스무 살을 넘긴 테일러는 프린스, 엘튼 존, 오프라 윈프리, 제임스 캐머런 등과 함께 아티스트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기록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두 번째 앨범인 '피어리스(Fearless)'는 지난해 미국 내에서 모든 장르를 불문하고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 됐다. 또 동명의 곡은 10년 만에 빌보드 톱 200에 11주 동안 정상을 차지했다. 최근 '작곡가 명예의 전당' 입성했고, 1800억 달러의 수입을 거두며 지난해 포브스가 선정한 '영향력 있는 유명인사' 69위에 올랐다.

레이디 가가도 테일러의 노래 '유 빌롱 위드 미(You belong with me)'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올 때마다 크게 따라 부르는 자신이 당황스럽다고 했을 정도. 지난주에는 13시간동안 '마라톤 사인회'를 여는 진기록을 세웠으며 로스앤젤레스 스테이플센터에서 열릴 예정인 콘서트 티켓은 2분 만에 매진됐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2집 \'피어리스(Fearless)\'로 그래미 상에서 올해의 앨범상을 받았다. 2집 발표 후 미국 인디애나주 에번즈빌에서 열린 콘서트 중 한 장면. 사진제공=유니버설 뮤직
테일러 스위프트는 2집 \'피어리스(Fearless)\'로 그래미 상에서 올해의 앨범상을 받았다. 2집 발표 후 미국 인디애나주 에번즈빌에서 열린 콘서트 중 한 장면. 사진제공=유니버설 뮤직


▶ 영리하게 솔직한 '하이틴 팝의 여신'

펜실베이니아주 와이오미싱(Wyomissing)의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그는 어릴 적부터 글재주가 뛰어났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전국백일장 대회에서 '내 옷장 안에 괴물(Monster in my closet)'이라는 시로 입상했고, 열두 살 여름 방학 땐 350쪽짜리 소설도 썼다.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고충도 글을 통해 풀었다.(물론 이것은 급우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고 테일러는 홈스쿨링을 통해 18세 때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가사는 가감 없이 솔직하다.

'너무 솔직한' 그는 한때 사귀다 헤어진 보이밴드 멤버 조 조나스와의 이별도 노래 가사(Forever & Always)에 담았다. (조가 전화로 28초 만에 이별을 통보했다는 테일러의 주장을 조는 부인하고 있다.) 상업적 계산이 깔려있음을 부인할 순 없겠지만 치부까지 당당하게 드러낼 줄 아는 건강함이 엿보인다.

올해 그래미상 '올해의 노래' 후보였던 '유 빌롱 위드 미', 다시 말해 '넌 내 꺼'의 가사를 보자.

"걘 짧은 스커트를 입고 난 티셔츠를 입어/걘 치어리더 단장이고 난 벤치에 앉아있지/네가 알아줄 날 만을 꿈꾸고 있어/그리고 내가 보낸 이 시간들을 네가 알게 되길 바라고 있어/이 모든 걸 왜 모르니/넌 내꺼야 넌 내꺼 라고"

로미오와 줄리엣에 빗대 이뤄질 수 없는 남녀의 사랑을 그린 '러브스토리(Love story)'부터 사랑하는 이와의 만남이 한편의 동화 같았다는 '투데이 워즈 페리 테일(Today was fairy tale)', 이별을 통해 백마 탄 왕자님은 없다는 걸 깨달았다는 '화이트 호스(White horse)'까지, 그의 노래는 하이틴 로맨스 소설을 읽는 것처럼 풋풋하다.

농염한 가사와 욕설에 익숙한 10대들은 조미료를 치지 않은 청정무구한 그의 노래에 열광하고, '한 때' 소녀였던 사람들은 과거의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아련한 향수를 느낀다. 전 세대를 걸친 인기는 미국의 엄마들이 아이를 재우는 데 테일러의 노래가 효과적이라는 기사에서도 입증됐다.



▶ 능력과 외모를 겸비한 '컨트리 팝의 여신(女神)'

담백한 멜로디에 소박한 기타 연주의 노래는 모두 테일러 작사 작곡. 빼어난 노래 실력에 그는 미모까지 갖췄다. 금발에 파란 눈, 바비 인형처럼 전형적인 서구형 미인으로 가수뿐만 아니라 배우로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게다가 꽃미남 보이밴드의 기타리스트 조 조나스, 영화 '트와일라잇'의 '늑대인간' 테일러 로프너 등과 열애설에 휩싸였다. 급작스레 '10대의 우상'이자 '하이틴 팝의 여신(女神)'이 되어버린 테일러에 대해 '외모가 아니었다면 가능했을까'란 물음이 제기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실력 없이 기획사의 상품으로 키워진 가수였다면 평단의 인정과 함께 팝계의 혜성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을까. 차근히 밟아온 가수가 되기 위한 길을 되짚어보면 누구도 외모의 덕을 본 반짝 스타라는 말을 쓰진 못할 것이다.

컴퓨터 수리공에게 기타를 처음 배운 테일러는 '럭키 유'라는 노래를 작곡했다. 생애 첫 자작곡이었다. 열 살 때 컨트리 가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고, 그러기 위해선 '컨트리 음악의 고장'인 내슈빌로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테일러는 그 때부터 가라오케에서 자신의 우상인 페이스 힐, 샤이냐 트웨인, 티나 터너의 창법을 흉내 내며 데모 테이프를 만들었다.

청운의 꿈을 안고 도착한 내슈빌에서 음반사에 데모 테이프를 보냈지만 어느 곳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다시 펜실베이니아로 돌아온 테일러는 심기일전하며 기타를 배우고 노래를 지었다. 그 후 4년. 15세의 그는 다시 돌아온 내슈빌 송라이터 거리에서 공연을 하며 주목을 받는다. 그리고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보이스카웃 모임이든, 정원에서 열리는 파티든 마다하지 않았다. (당시 동네의 조그만 카페에서 연주했을 때 쓰던 기타를 그는 아직도 애용하고 있다.)

몇몇 인터뷰 기사를 읽어보면 테일러가 목표 지향적인 사람이란 걸 느낄 수 있다. "음악을 만드는 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일"이라고 밝힌 그에게 사랑하는 한 가지가 더 있다면 목표를 세우는 것. "이제까지 내가 해온 성과를 깨부수며 다음에 내디딜 열 걸음을 생각한다"는 야심 찬 그였다. 내슈빌에서도 우연한 '길거리 캐스팅' 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는 "내슈빌에서 원했던 모든 걸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며 "차근차근 계획된 일이 일어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콘서트 투어 중인 그는 휴식을 포기하고 바로 음반 작업에 들어갈 계획. 여기서 휴식이란 '쉬지 않고 곡을 쓰고 완벽한 노랫말을 얻기 위해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는 것'이란다. 이제 갓 스물을 넘긴 그는 인생을 이렇게 비유했다. "제게 인생은 낱말 맞추기 퍼즐과 같아요. 빈칸을 다 채우면 그것이 비로소 의미 있어지는 것처럼요."

쉼 없이 하루하루를 채워나가는 테일러의 다음 빈 칸은 무엇일까. 나이답지 않은 치열함이 테일러를 오랫동안 스타로 만들어 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염희진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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