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중순 MB와 만나 이미 사퇴의사 표명”
鄭총리 주변 인사들은 “사퇴 속단하긴 이르다”
정운찬 국무총리가 30일 세종시 수정안 부결과 관련해 “책임지겠다”는 말과 함께 그동안 마음속에 담고 있던 심경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정략적 이해관계’ ‘충청인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정치인들의 목소리’ 등의 강한 표현을 동원해 세종시 원안 고수 세력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숨기지 않았다.
정 총리는 이날 자신의 거취에 대해 ‘사퇴’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해석도 엇갈린다.
‘지방선거 패배와 세종시 논란의 수렁에서 빠져나와 새 출발을 하기 위해선 완전히 새로운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주장해 온 여권 일각에선 이제 당·정·청 수뇌부를 전면 쇄신할 수 있는 여건이 완비됐다고 보고 있다. 정 총리가 세종시 문제를 계기로 사퇴해야 하며 본인도 이를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지방선거 이후 쇄신국면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 주고 본인도 명예롭게 퇴진하는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정 총리가 “전적으로 책임지겠다”고 말했다는 해석이다. 정무라인의 한 참모는 “정 총리가 사퇴하는 게 본인도 사는 길이다. 정 총리도 그것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정 총리는 이 대통령이 지난달 14일 라디오 연설을 통해 세종시 수정법안을 6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해 달라고 촉구했을 무렵 청와대에 들어가 이 대통령과 세종시 대책을 숙의하며 이미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후 청와대와 총리실 간에는 ‘수정안 부결→정 총리 사의 표명→인적 쇄신 본격화’라는 시나리오에 교감이 이뤄졌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이는 정 총리가 선거 참패 후 쇄신국면에서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다는 당위론으로 이어진다.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와 정정길 대통령실장이 직을 던진 만큼 정 총리도 사퇴함으로써 정부와 여당이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정 총리가 이 대통령이 3일 해외순방에서 돌아오면 공식적으로 사의를 표명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반면 정 총리가 여전히 ‘진짜 한번 제대로 일해보고 싶다’는 의지를 접지 않았다는 분석도 많다. 정 총리 주변 인사들은 그가 그동안 청와대와 여권 일부의 견제 속에 손발이 묶인 채 10개월 가까이 국정을 끌어왔다고 평하고 있다.
정 총리 주변에서는 “정 총리는 ‘현직을 더 할 수 있지만 이런 구도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전한다. 이런 맥락에서 정 총리가 이날 ‘현실정치의 벽’을 언급한 것도 중의적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친박(친박근혜)계와 야당의 반대를 지적한 것이기도 하지만 본인에 대한 친이(친이명박)계 내부의 견제에 대한 비판의 뜻도 숨어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 대통령의 판단에 자신의 거취를 맡김과 동시에 유임이 가능하다면 이번 기회에 자신의 의지대로 일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달라는 뜻이 정 총리의 발언에 암묵적으로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부에선 정 총리가 자신의 정치적 소신과 미래를 위해서도 이대로 물러서지는 않을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이 대통령도 정 총리가 전적으로 수정안 부결의 책임을 질 필요는 없다는 견해를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의 한 참모는 “이 대통령은 이번 사안이 처음부터 쉽지 않은 구도 속에서 진행됐고, 정 총리는 본인의 역량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더구나 세종시 추진이 국익을 위한 사심 없는 선택이었다고 강조해 온 이 대통령으로선 수정안 좌절이 정 총리 개인의 잘못이 아닌데도 세종시 문제의 책임을 물어 정 총리를 경질할 경우 스스로 수정안 추진의 대의명분을 부정하는 모양새가 될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 대통령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미지수지만 정 총리의 거취는 향후 여권의 인적쇄신과 이 대통령의 집권후반기 국정 구상에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