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후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실에 ‘의외의 방문객’이 나타났다. 서남표 KAIST 총장이었다. 보통 때 같으면 이상할 것도 없는 방문이겠지만 교과부가 서 총장의 연임을 막기 위해 KAIST 이사회를 상대로 ‘외압’을 넣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던 터라 그의 방문은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안 장관이 부른 것인지, 아니면 서 총장이 면담을 요청한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두 사람의 만남은 그간의 외압설 논란을 종식시켰다. 안 장관이 서 총장을 만났다는 것 자체가 사실상의 승인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날 오전 KAIST 이사회가 이사 18명 중 16명의 찬성으로 서 총장을 재선임하기로 의결했지만, 이사회 의결은 최종적으로 교과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서 총장은 안 장관을 만난 직후 동아일보 기자에게 “말이 많았는데 내가 덕이 모자라 그런 것 같고, 앞으로 소통에 신경쓰겠다”며 “(교과부와의 불협화음은) 잘 정리가 됐다”고 말했다.
외압설의 정황으로 거론됐던 이사회 정관 문제도 일사천리로 해결됐다. KAIST 정관은 총장후보선임위원회가 총장 후보를 3명 이내로 압축해 이사회에 추천하도록 돼 있다. 서 총장의 임기만료일은 13일. KAIST 총장후보선임위는 이에 따라 지난달 7일과 14일 후보로 출마한 5명을 놓고 교통정리를 시도했으나 결국 3명 이내로 압축하지 못했다. 공은 이사회로 넘어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교과부 간부가 일부 이사를 만나 ‘총장후보선임위 추천 없이 이사회가 직접 총장을 결정하려면 정관을 바꿔야 한다’고 요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즉각 외압설로 번졌다. 일부 언론은 ‘교과부가 서 총장의 연임 반대 의사를 피력했다’는 보도까지 했다.
외압설이 확산되자 교과부는 부담을 느낀 듯하다. KAIST 이사회가 2일 정관에 ‘총장후보선임위에서 후보자를 3인 이내로 추천하지 못한 경우에는 이사회에서 총장을 선임한다’는 규정을 신설하자 교과부는 즉각 전자문서시스템을 통해 승인했다. 보기 드문 스피드다.
서 총장 연임을 둘러싼 외압설은 이렇게 일단락됐지만 모든 갈등이 해소된 것은 아니다. 이사회의 재선임 결정 이후에도 이번 파동이 교과부의 외압 때문에 빚어진 것인지, 아니면 서 총장 측의 언론플레이 탓인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서 총장 측은 개혁에 대한 반감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하다. 테뉴어(정년보장) 심사 강화, 100% 영어 강의 도입 등 서 총장이 실시한 개혁 정책들은 그동안 KAIST 내부에서 적지 않은 불만을 샀다.
교과부 쪽에서는 서 총장이 그동안 ‘언론플레이’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며 이번 외압설도 서 총장 측에서 ‘자작(自作)’한 것 아니냐고 의심하는 눈치다. 교과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KAIST는 정부 출연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국책사업과 연계해야 할 부분이 많지만 정부와 긴밀히 협조해 추진해야 할 일도 성급하게 먼저 발표하는 등 서 총장의 일방적 리더십으로 불협화음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다른 관계자는 “개혁의 대명사처럼 굳어진 이미지를 이용해 정부와 협의 없이 독단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며 “이번 이사회 소동도 서 총장이 연임을 위해 언론플레이를 벌였다고 생각하는 시각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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