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세이건은 과학자였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구약성서의 인물들을 연상시키는 기질도 어느 정도 갖고 있었다.” 그의 오랜 동지였고 부인이었고 이 책의 편집자인 앤 드루얀은 편집자 서문 첫머리에 이렇게 적어 놓았다.
내가 보기에 세이건은 과학자이기 이전에 회의론적 휴머니스트였다. 꿈꾸는 낭만주의자였고 실천하는 합리주의자였다. 그가 어느 시대를
살았건 자연스럽게 그 시대의 가장 절실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미래를 바라보는 건강한 합리적 실천의 길로 나아갔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이 16세기였다면 그는 어쩔 수 없이 사제가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20세기 현실에서 그가 택한 것은 당연히
과학자의 길이었다.
이 책은 1985년 10월 스코틀랜드 글래스고대에서 보름 동안 열렸던 세이건의 자연 신학에
관한 기퍼드 강연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종교, 과학, 철학 분야 강연들 중에서 유서 있고 수준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 기퍼드
강연은 스코틀랜드 출신 법률가 애덤 기퍼드 경의 기부금으로 시작됐다. 하마터면 칼 세이건 기록보관소의 서랍 한구석에 영원히 파묻혀
버릴 뻔했던 그의 강연을 글로 다시 만난 것은 덤으로 얻은 행운이다.
세이건은 이 책에서도 그의 평소 스타일대로
먼저 자연과 하늘을 바라보는 경이로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으면서 과학과 종교 간 대화의 물꼬를 튼다. 세이건에 따르면 우주의
경이로움 앞에서 종교와 과학은 만나게 된다. 따라서 신앙과 교리에 상관없이 우리는 우주를 향한 호기심을 억누르려 하지 말고
해방시켜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우주 속 인간의 위치에 대한 현명한 현실 인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광활하고
유구한 우주 속에서 인간은 작디작은 시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작은 별먼지에 불과하지만 그 유한함의 한계 속에서도 우주를 인식하고 그
근원을 생각할 수 있는 위대한 존재라는 것이다. 이야기의 흐름은 자연스럽게 우리의 우주 동료인 외계 지적 생명체 문제로
넘어간다.
하지만 세이건은 이 책에서 종교와 신의 문제를 정조준하고 있다. 그는 종교 또는 종교 현상이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나름대로의 의미를 갖고 존재해왔고 선행이든 악행이든 어느 정도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인정한다.
하지만 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기존의 종교 교리에서 사용했던 논리들의 허구성, 종교의 본질적이거나 현실적인 폐해에 대해선
단호하고 명쾌한 태도를 취한다. 심지어 자연과 우주 속에 있는 신의 존재 증거를 찾아야 한다는 취지로 마련된 이 강연에서 자연과
우주 속에서 발견된 신의 존재 증거는 단 하나도 없다고 단언한다.
이 책의 백미라고 할 만한 6강 ‘하느님에 대한
가설들’이라는 꼭지에서 세이건은 아리스토텔레스와 힌두교에서 근대 기독교 신학자들까지 수천 년 동안 제시된 신 존재 증명들을
하나하나 논파하면서, 만약 신이 있다면 위성 궤도에 거대한 십자가를 띄우거나 달 표면에 십계명을 새겨 놓는 식의 명확한 증거를
남기지 않았겠느냐며 “왜 하느님은 성서에서는 그렇게 뚜렷하면서도, 이 세계에서는 그처럼 모호한 것일까요”라고 공박한다.
그러나 이러한 논박과 비판은 누구처럼 종교를 박멸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세이건은 “증거의 부재가 곧 부재의 증거”는 아니고
아직 결론은 열려 있다며 종교와 과학이 서로 함께 알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함을 강조한다. 중요한 것은 과학과 종교의 공감. 이
공감을 나누어 지적 수렴점에 도달하려고 노력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태도를 바탕으로 종교가 인류의 평화와 생존을
위해서 취해야 할 현실적인 방안에 대해서도 조언하면서 숨통을 터주는 배려를 잊지 않는다.
그런데 이 책에서 정작
우리가 더 주목해야 할 것은 결론 자체보다 그에 이르는 과정에서 세이건이 보여준 이야기 전개 방식과 태도라고 생각한다. 문제의
핵심을 벗어나지 않고 정조준하기. 친절하고 따뜻하지만 회의적이고 합리적으로 접근하기. 단호하지만 배려하면서 결론짓기. 이 책에서도
그의 이러한 진면목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세이건의 이야기를 다시 만나는 즐거움과 함께 약간의
서글픔도 안겨 준다. 특히 책 뒷부분에는 강연 후 이어진 질문과 답변 내용이 정리돼 있는데, 강의 내용과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맥 빠지는 질문들(세이건이 그렇게 논박했는데도 UFO와 신의 관계, 토리노의 수의 관련 질문들이 계속 나온다)과
그에 대한 친절하고 현명한 대답들이 반복되는 것을 보면서 자괴감을 느꼈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25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 이
순간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인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과학 기술이 일상화된 시대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현실과 사건’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1985년에 열렸던 세이건의 기퍼드 강연을 옮겨 적은 이 책이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게 다가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세이건의 관점이 25년이 지난 지금도 설득력이 있는 것은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합리적 보편성을 띠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이 책의 끝머리에 인용한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우리가 지금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면 결국에는 모든 것을
잃고 말 것이다. 특히 근본주의적인 종교 이념이 어느 때보다도 강렬하게 우리 삶 곳곳에 침투해오고 있는 이 수상한 시절에
세이건의 시야와 태도와 실천에 대한 의지는 우리가 마땅히 본받아서 계승해야 할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이 더 반갑고
그가 무척 그립다. 이명현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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