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 2권의 저서와 1권의 번역서를 낸 작가
● 황석영 선생 섭외하려 100번이나 전화를 거는 독종
‘북클럽’ 첫손님으로 온 황석영 작가(왼쪽)과 함께
아나운서 김지은이 책 프로그램을 새로 진행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여의도 MBC아나운서실을 찾았다. 책상 위에 수북이 쌓인 책들, 그 책들 사이사이 수없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포스트잇이 인상적이다. 그는 "책에 대한 강박이 있어서인지 늘 가방이 무거워 보인다고 할 정도로 책을 가지고 다닌다"고 말한다.
김지은은 이미 '서늘한 미인'과 '예술가의 방'이라는 두 권의 저서와 '나를 더 사랑하는 법' 이라는 한 권의 번역서를 낸 작가다.
그의 책 '서늘한 미인'과 '예술가의 방'은 출판계에서도 비주류에 속하는 미술 서적이다. '색다른 자기계발서'라는 평가를 듣는 번역서 '나를 더 사랑하는 법' 역시 예술서에 가깝다.
그러나 그의 책들은 대중과 전문가 집단 모두에게 호평 받은, 흔치않게 성공한 교양예술서적이기도 하다('서늘한 미인'은 한 포털 사이트가 선정한 '오늘의 책'에, '예술가의 방'은 문화체육관광부와 출판협회 등에서 '올해의 책'으로 꼽히기도 했다).
■ 아나운서에서 작가로 진화한 아나운서 김지은
개인적으로, 기자는 '작가 김지은'의 팬이다. 책 속의 김지은은 젊은 예술가들의 생각을 사려 깊게 헤아리는 비평가이자 어린 아들의 문자를 지우지 못하고 간직하고 있는 엄마였고 타인의 슬픔을 마음으로 공감하는 사람이다.
인형 같은 외모로 빈틈없이 뉴스를 진행하고 늘 발랄하고 우아하게 문화예술을 논하는 아나운서로만 알던 그를 다시 보게 됐던 것도 그의 책을 통해서였다.
한 때는 담당기자와 필자의 관계로 그의 글을 받기도 했었다. 뉴욕 현대미술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 연재코너였는데, 사실 김지은은 글뿐 아니라 이미지 하나하나에 무척 신경 쓰는, 에디터로서는 조금 까다로운 필자였다.
설상가상 당시 뉴욕에서 유학 중이던 그와 종종 연락이 안 돼 마감을 앞두고 발을 동동 굴러야 했던 적도 있었는데 그럼에도 그를 과감히 자르지 '못하고' 심지어 '편애'까지 했다. 이유는 하나, 그의 글이 탐났기 때문이다. 기자는 김지은을 "아나운서 가운데 가장 글을 잘 쓰는 사람"라고 부른다.
이러한 이유로 김지은과 책 전문 라디오 프로그램은 썩 잘 어울리는 듯하다. 그는 7월 4일부터 장진 감독의 뒤를 이어 MBC '라디오 북클럽, 김지은입니다'의 DJ를 맡게 됐다. 책 소개와 함께 작가를 초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이 프로그램에는 첫 게스트로 황석영 작가가 다녀간 데 이어 가수 조영남 씨가 출연했고, 앞으로 김영하, 신경숙, 공지영 작가 등이 방문할 예정이다.
뉴욕생활의 반을 차지했던 뉴욕공립도서관에서. (사진: 아트앤커머스 김민관)
■ 아나운서 가운데 가장 책과 어울리는 사람
"황석영 선생님을 섭외하고 싶은데 출판사조차 황 선생님과 연락이 안 된대요. 어디 계신지를 모르겠대. 그래서 전화를, 정말 100번 했어요. 그랬더니 황 선생님한테서 전화가 온 거예요. '뉘신데 나한테 이렇게 전화를 많이 했냐'고 하시면서. 운 좋게 섭외가 됐죠."
그는 '라디오 북클럽'과 다른 책 프로그램의 다른 점으로 "책 읽으라고 강요하지 않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을 꼽았다. 책 이야기는 1/3도 안돼서, 게스트와 나누는 대화는 대부분 개인적인 수다에 가깝다. 실제로 작가 황석영에게 김지은은 "요즘 들어 책장을 덮기만 하면 줄거리와 등장인물이 모두 사라진다"는 자신의 독서고민을 털어놓았고, 가수 조영남에게는 "여자친구가 많은 비결"을 묻기도 했다.
"(방송이 나오는 시간이) 일요일 아침 7시에요. 피곤하잖아요. 일어나는 것도 피곤한데 왜 자꾸 책 읽으라고 강요해요? 가벼운 방송은 아니지만, 방송은 가볍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20가지 질문했으면 두 가지만 진짜 대답을 얻으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또, 제가 책 프로그램 진행자답지 않게 '푸하하' 웃으면서 주책 맞게도 나오는데… 사실 예전엔 다시하자고 했을 텐데, 이제 그런 거 상관하지 않아요."
김지은은 1992년 MBC에 입사해 올해 경력 19년 차에 접어든 베테랑 아나운서다. "땅만 보고 다닐 만큼 내성적이었다"는 그는 "이렇게 살다간 인생이 너무 재미없겠다 싶어 성격과 반대되는 직업을 찾다가" 방송국에 지원했고, 아나운서가 됐다. 20년 가까이 9시 뉴스데스크를 비롯한 뉴스와 출발비디오 여행, 즐거운 문화읽기 등 다양한 교양 프로그램과 라디오프로그램 등을 진행해왔다.
사실 책 이야기, 프로그램 이야기보다 더 궁금했던 게 아나운서로서의 생활에 관한 것들이었다. 한국에서 아나운서, 그중에서도 공중파 방송국의 여자 아나운서는 다소 특별한 직업군으로 분류된다. 수백, 수천 분의 1의 경쟁을 뚫고 카메라테스트와 논술, 작문, 교양 등으로 구성된 방송사 필기시험을 통과한다는 것은 거칠게 표현해서, 우월한 '미모'와 '지성'을 사회적으로 검증받았다는 걸 의미한다. 어릴 때부터 예쁘고 공부도 잘하더니 좋은 회사에 취직해서(게다가 아마 시집도 잘 갈 것 같은!), 존재에 커다란 열등감을 안겨준 '엄마 친구 딸' 같다고 할까.
■ 1992년 MBC에 입사한 경력 19년차 베테랑 아나운서
여기에, 방송에서 보이는 아나운서의 이미지도 어떤 고정관념을 쌓는데 한몫했다. 단정하고 아름다운 그들은 늘 교양 있게 표준어를 구사한다. 잘 다듬어진 목소리와 또박또박한 발음처럼 정돈된 생활을 영위하며 성공가도만 걸었을 것 같다. 인생에 굴곡이나 빈틈 따윈 상상할 수 없다. 그러나 김지은은 "화려해보이지만 오해가 많다"고 말한다.
"예컨대, 제가 지금 일요일 아침 6시 뉴스를 혼자 진행하잖아요. 새벽 4시에 눈비비고 일어나서 아무도 없는 회사에 도착하고, 또 혼자 준비를 해요.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그건 좀 쓸쓸한 거예요. 그 시간대 뉴스를 보는 사람은 많지 않잖아요. 사실 아나운서실에서도 이 프로그램을 맡고 싶어 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하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해야 하는 거예요."
- 9시 뉴스를 진행했어도 여자 아나운서들은 나이가 들면 별로 그 경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럼 제가 묻죠. 아홉시 뉴스를 했던 아나운서는 다음에 뭘 해야 하나요? 그 다음이 없어요. 때로 이 시스템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더 이상 (자리)욕심이 없으니까 말하자면, 뉴스는 서른 넘는 사람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자 아나운서도 서른다섯이 넘으면 좋겠어요. 리딩이 중요한 게 아니라 세상을 보는 시각이 중요하고, 표정을 연기하는 게 아니라 표정이 자연스럽게 나와야 하잖아요."
그는 "아나운서로서도 때때로 '루저'가 되어야만 하고, 그런 상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여자 아나운서에 대한 고정관념이 많거든요. 하지만 그렇지 못한 여자아나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 때 이른바 루저 스피릿이 필요하겠죠. 사실, 프로그램은 그저 나를 거쳐 가는 것 혹은 내가 거쳐 가는 거예요. 내 프로그램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불행이 시작돼요. 저는 이런 모드가 조성된 게 입사 10여년 쯤 지나고 나서였는데, 사실 그 때도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았던 거 같아요. 그러다 최근 유학을 다녀 온 뒤로 좀 더 편안해진 것 같아요."
화제가 자연스럽게 유학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는 2007년 미국 뉴욕 크리스티 대학원으로 미술 이론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을 떠났다. 그의 나이 서른아홉 살이었다. 성공한 여성의 자아실현 스토리가 떠오르지만, 그 반대다.
"이혼을 하고 불행했던 때였어요. 사람들은 쉽게, 자기 야망이 너무 많아서 애 놓고 공부한다고 말하겠지만… 저는, 어디든 가야하는 상황이었고, 마음이 너무 황폐해서 간 거예요. 그런데 가서도 쉽지는 않았죠. 난 내가 그렇게 영어를 못하는 줄 몰랐었거든요. 말이 직업이었던 사람이 말을 잃어버린 거예요. 그런데 또 행복하고 멋있게 보여 한다는 강박이 있어서, 학교에서는 늘 밝고 우아한 척 했죠. 전날 밤을 새서 다크써클이 얼굴을 덮었는데 다음날 아침엔 또 화장 곱게 하고 옷도 예쁘게 입고 등교했어요. 그러다 집에 오면 다시 무릎 닳은 트레이닝 바지입고 몽유병 환자처럼 잠도 못 들면서 울어대는 거지."
평균 연령 24세인 교실에서 스물아홉 살 인 척 하며(학우들은 실제로 그렇게 믿고 있다고 한다) 2년을 보냈다. 극도의 스트레스로 머리카락이 빠지기도 했고, "이렇게 사느니 죽겠다"며 옥상에 올랐다가 "죽기엔 너무 낮은 높이인데다 보험도 없는데 부상을 입으면 안 된다"는 방향으로 생각을 정리하는 식의 슬픈 코미디 같은 에피소드도 많다.
김지은은 “탱고를 멋지게 추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사진 : ‘아트앤커머스’ 김민관
■ 착한 공주병? 완벽주의? 이제는 탱고를 꿈꾸는
"꼭 시험 전날만 되면 긴장이 되서 멸치 들어간 된장찌개가 먹고 싶은 거야. 일본 슈퍼 가서 국거리용 멸치를 사서 끓여 먹곤 했는데, 어느 날인가 화장실에 갔더니 애들이 자기들끼리 '여기 마른 멸치 냄새가 나지 않냐'고 수군거려요. 그 얘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 나갈 때까지 화장실 칸막이 안에서 숨어 있었던 적도 있어요."
-사실 그렇게 힘들면, 그냥 포기하실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꼭 학위가 필요한 건 아니잖아요.
"나와서 되돌아보니까, 왜 그 때 박스에 갇힌 쥐처럼 그랬을까 생각되는데… 당시엔 그래야만 했어요. 과제는 산더미 같고, 수업에서 뭔가를 자꾸 시키는데 그걸 안 읽으면 알아들을 수가 없고… 그런데 저질러 놓은 일은 많아서, 그 때 두 번째 책 '예술가의 방'도 쓰고, '나를 사랑하는 법' 번역도 했어요. 결국 손목터널 증후군도 왔는데… 문을 못 열어서 또 울고."
자신의 성격을 "착한 공주병"이라고 표현하는 김지은은 사람들에게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어 하고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내야 직성이 풀리는 완벽주의자다. 그는 "어쩌면 실패의 경험이 적었기 때문에 이혼의 상처가 더 깊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가 그 아픔을 계기로 글을 쓰게 됐다는 점이다.
"별거상태에서 쓴 게 '서늘한 미인'이에요. 두 달 만에 쓴 거예요. 내 안에 폭포처럼 막 쏟아져 나왔어요. 내가 가장 눈물을 많이 쏟았을 때, 그 때 처음으로 글을 쓴 거잖아요. 어쩌면 그 덕에 조금씩 치유가 된 거 같아요.
"긴 터널을 통과하듯" 5년을 보내며, 김지은은 "바닥을 쳐보니까 다시 튀어오를 힘이 생겼다"고 말한다. 타인에게 더 너그러워지고 자신에게는 더 솔직해졌다고 한다. 덕분에 그는 한결 자유로워졌다. 방송 역시 그렇다.
"예전에 나는 진짜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어요. 아나운서고, 우아하고, 성공한… 그래서 가리는 게 많았어요. 뭘 대답할 때도 이런 말은 하면 안 되겠지, 또 저건 아니지. 그런데 이젠 그런 것들이 사라졌어요."
방송과 글쓰기 외에 지난 학기부터는 서울대에서 말하기 강좌를 하게 됐는데 처음해보는 강의가 무척 재미있다고 했다. "시간을 흘러 보내는 게 아까워서" 1~2주에 한번은 짧게라도 여행을 떠나 "열심히 논다"는 이야기도 들려줬다. 그는 또, 언젠가는 이미지로 이뤄진 소설을 쓰고 싶다고 했다.
인터뷰 후 그에게 기사와 함께 실을 사진 서너 장을 부탁했다. 그는 라디오 프로그램 첫 초대 손님인 황석영 작가와 찍은 사진과 뉴욕 도서관에서의 사진과 함께 탱고를 추는 모습이 담긴 '아나운서로서는 파격적인' 사진을 보내왔다. 4년 전 시작된 그의 춤바람(?)은 유학시절까지 이어져, 잠 못 이루던 밤이면 뉴욕의 탱고 바를 찾아가 밤을 새며 춤을 췄다고 한다.
그는 탱고를 '3분간의 고통 없는 사랑'이라고 표현했다. 탱고를 멋지게 추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그의 바람이 꼭 이뤄지길, 그의 삶도 그 춤처럼 더욱 더 자유로워질 수 있길.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