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의 실세인 이재오 전 의원이 2년 만에 여의도에 귀환한다. 이명박 정부를 만든 1등 공신이면서도 2008년 4월 총선에서 낙선한 뒤 미국으로 ‘자의반 타의반’ 외유를 떠나야 했던 그였다. 평소 “나는 당을 맡겠다”고 공언했던 만큼 이 전 의원의 귀환은 여권의 권력지형 재편을 이끌 기폭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한나라당 친이(친이명박)계는 물론 친박(친박근혜)계가 이 전 의원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 친이계 구심점 될까
이 당선자가 원내에 들어올 경우 당장 모래알 같은 친이계의 구심점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친이계의 좌장이면서도 그동안 마땅한 정치적 공간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원내 진입이란 날개를 달았기 때문이다. 이 당선자는 그동안 정치권 밖에 있으면서도 상당수 당내 친이계 의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당 사무처 등 기간조직에도 ‘이재오 사람’이 적잖이 포진해 있다.
이 당선자의 귀환을 지켜보는 친이 진영 내부의 기류는 복잡한 듯하다. 자연스럽게 공조와 갈등 전선이 조성될 조짐도 감지되고 있다.
우선 그동안 이 당선자와 손을 잡아온 친이 소장파 핵심인 정두언 의원은 적극적으로 공조할 가능성이 높다. 일부 중간지대에서 표류하고 있던 친이계 의원들도 이 당선자의 행보를 주목하며 동조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하지만 7·14전당대회를 통해 당권을 잡은 안상수 대표와는 미묘한 긴장관계에 들어갈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안 대표가 이번 재·보선 승리를 계기로 기반 굳히기에 들어갈 경우 세 확산을 시도할 이 당선자와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 말 아끼는 이재오
이날 당선이 확정되자 이 당선자는 서울 은평구 불광동 선거사무소 앞 인도에 나와 지지자들에게 인사를 했다. ‘이재오’라는 연호가 나오자 선거 관계자들은 “우리는 세를 과시하지 않고 낮은 자세로 선거운동을 해왔다. 연호는 하지 말고 박수만 쳐 달라”고 부탁했다.
이 당선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 홀로’ 선거운동을 한 것이 은평구민들에게 받아들여졌다”며 “이번 선거 결과는 6·2지방선거에 참패한 집권 여당이 다시 힘을 갖고 국민의 요구를 받아들여 안정감 있게 잘 해달라는 요구”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앞으로 당내 역할에 대한 질문엔 “당에 가서 동지들의 의견을 들어보겠다”며 말을 아꼈다.
이 당선자의 이날 모습은 당내에서도 당분간 낮은 자세를 유지할 것이라는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 당선자의 측근인 진수희 의원은 28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 당선자는 ‘로키(low key)’ 행보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정치 복귀에 쏠리는 당 안팎의 긴장된 시선이 부담스러운 눈치였다. 이 당선자와 가까운 한 의원은 “당직을 맡는 것도 아니고 당분간 공천 등 영향력을 행사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 당선자가) 들어온다고 당장 무슨 큰 일이 나겠느냐”고 말했다.
다음 달부터 정치 하한기여서 국회에 들어오자마자 정치적 행보를 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9월 정기국회가 열린 후에야 ‘정치인 이재오’의 모습을 본격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그러나 그 전이라도 이 당선자는 당내 회의에서 “당이 왜 이렇게 느슨하게 돌아가느냐”는 등의 언급을 하며 당의 구심점을 자임할 것이라는 관측도 없지 않다.
또 당의 개혁적, 서민적 행보 주도 등 자신만의 고유한 색깔과 가까운 일부터 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이 당선자는 당선 직후 “(지역구인) 은평구에 서민 정책이 안 먹히면 나라 전체의 서민 정책이 안 먹힐 것”이라며 친서민 정책에 대한 관심을 나타냈다.
○ 긴장하는 친박계
친박계 내에서는 이 당선자가 국회에 복귀하면 친이계 구심점으로 세 결집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친이-친박 갈등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친박계의 한 3선 의원은 “그동안 해왔던 일을 보면 그가 다시 돌아올 경우 친이계의 세를 모아 자기만의 방식으로 대통령 만들기에 나서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2008년 총선 공천 때 이 당선자와 이방호 전 사무총장이 친박계를 대거 탈락시킨 ‘주역’이라는 친박계의 뿌리 깊은 감정은 여전히 남아 있다. 영남의 한 재선의원은 “2008년 총선 때 ‘친박계 공천 학살’의 감정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며 “이재오의 귀환을 눈여겨보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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