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산업의 재편을 알리는 총성이 울렸다. 정부가 30일 우리금융그룹 민영화 방안을 확정하면서 그동안 숨을 고르며 탐색전을 펼쳤던 금융회사들은 본격적으로 우리금융 인수전에 뛰어들 채비를 갖추기 시작했다.
금융산업의 경쟁구도가 어떻게 재편될지 현재로서는 예측이 어렵다. 정부가 보유한 우리금융 지분을 쪼개서 매각하는 방안과 다른 금융지주회사와 대등 합병하는 방안을 함께 제시했기 때문이다. 둘 중 어떤 방안이 채택되느냐에 따라 금융산업은 ‘3룡(龍)’ 체제로 재편될지, 현재의 ‘4룡’ 체제가 고수될지 판가름이 날 것으로 보인다.
우리금융 민영화는 외환위기 이후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권 민영화를 마무리한다는 의미도 있다. 권혁세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2001년 우리금융 출범 이후 2004년부터 소수 지분을 매각했지만 지배 지분을 매각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2002년 서울은행, 2003년 조흥은행에 이어 내년 상반기면 공적자금 투입 은행의 민영화가 완료될 것”이라고 말했다.
○ ‘금융 삼국지’로 재편될까
금융권 판도는 1990년대 중반까지 이른바 ‘조상제한서’(조흥 상업 제일 한일 서울은행)로 불리던 5강 체제에서 외환위기 이후 현재까지 KB 우리 신한 하나 등 4대 금융지주 체제로 굳어졌다. 정부가 제시한 방안 중 합병이 성사되면 3강 체제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가장 유력한 인수 후보는 하나금융지주다. 3월 말 현재 하나금융의 총자산은 192조 원으로 300조 원이 넘는 자산을 보유한 KB 우리 신한 등에 크게 뒤떨어진 4위다. 규모의 경쟁에서 뒤지는 탓에 인수합병(M&A)에 가장 적극적이다. 내부적으로는 우리금융을 1순위, M&A시장에 매물로 나온 외환은행을 2순위로 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나금융은 거액의 자금이 필요한 지분 인수보다 주식 맞교환을 통한 대등 합병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KB금융도 유력 후보다. 어윤대 KB금융 회장이 “당분간 M&A에 나서지 않겠다”며 한발 물러섰지만 ‘하나+우리’ 합병이 성사되면 1위에서 한참 뒤진 2위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에 M&A 경쟁에 가세할 가능성이 있다고 금융권은 보고 있다.
신한금융은 후보군에서 빠져 있다. 조흥은행과 LG카드 등을 잇달아 인수한 후유증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기 때문에 그동안 M&A에 불참하겠다는 방침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 4대 금융지주 공존 가능성도
지분 매각으로 민영화되면 4대 금융지주 체제가 그대로 유지될 수 있다. 우리금융에 관심을 가진 전략적, 재무적 투자자들이 컨소시엄을 이뤄 정부 지분의 전부 또는 상당량을 인수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금융의 지배구조는 KB 신한 하나 등 나머지 금융지주사처럼 뚜렷한 주인 없이 과점적 대주주그룹을 형성하게 된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지배주주가 없어 해외 헤지펀드 등의 적대적 M&A 공격에 노출돼 있는 국내 주요 기업이 경영권 방어 차원에서 컨소시엄을 이룬 뒤 우리금융의 지분을 인수하고 우리금융도 역으로 해당 기업의 지분을 교차 소유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현재 컨소시엄에 들어갈 기업 후보는 KT, KT&G, 포스코, 한국전력공사 등 우리금융의 핵심 자회사인 우리은행의 기업 고객들로 각각 최대 9%의 지분(의결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최대 10%)을 인수할 수 있다. 국민연금과 사학연금 등 각종 연기금도 후보로 거론된다.
현실적으로는 지분 매각 방안이 합병보다 실현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오랜 기간이 필요한 합병보다 민영화 속도를 앞당길 수 있고 정치적 특혜 시비를 줄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주요 합병 파트너로 꼽히는 하나금융의 김승유 회장, KB금융의 어윤대 회장이 각각 이명박 대통령과 절친한 관계인 데다 고려대 인맥이어서 합병이 추진될 경우 향후 특혜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금융권은 예상하고 있다. 금융노조도 합병을 통한 은행 대형화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
○ 포스트 M&A 후폭풍
금융산업의 메이저 플레이어뿐 아니라 지방은행도 M&A의 격랑 속에 빨려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미 부산은행과 대구은행은 매물로 나올 경남은행을 놓고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경남은행의 자산규모는 24조6000억 원으로 부산은행(33조5000억 원), 대구은행(31조5000억 원)에 이어 3위. 경남은행을 인수하는 곳이 압도적인 1위가 되는 구도가 형성돼 있다. 또 경남은행을 인수하면 시중은행인 한국씨티은행(58조 원)에 맞먹는 대형 지방은행으로 도약할 수 있다. 광주은행(17조7000억원) 역시 광주·전남지역 상공회의소 등을 중심으로 오래전부터 인수 준비를 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융권 재편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금융 합병 또는 지분 인수에 실패한 금융회사들은 M&A시장에 매물로 나온 외환은행을 인수하기 위해 덤벼들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국내 금융회사들은 “우리금융 민영화 방안을 보고 결정하겠다”며 외환은행 인수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내년 증시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는 산은금융지주, 지주회사 전환을 준비하는 기업은행 등 국책은행의 민영화 일정도 금융권 판도를 흔들 수 있는 변수다. 이미 시장에서는 ‘KB+외환’ ‘하나+외환’ 등 우리금융 이후 2단계 시나리오와 함께 ‘산은+외환’ ‘산은+기은’ 등 국책은행이 포함된 후속 짝짓기 시나리오가 다양하게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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