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최민식 “실은 벌레 한 마리 못 죽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8월 12일 17시 12분


11일 영화 '악마를 보았다' 기자시사회 무대에 선  최민식, 김지운 감독, 이병헌(왼쪽부터). 연합
11일 영화 '악마를 보았다' 기자시사회 무대에 선 최민식, 김지운 감독, 이병헌(왼쪽부터). 연합
다음은 11일 오후 8시 10분 서울 동대문 메가박스에서 열린 '악마를 보았다' 기자 간담회 일문일답 전문이다. 이 자리에는 김지운 감독과 이병헌 최민식 두 주연배우가 참석했다. 손범수 아나운서가 사회자로 나서 행사를 진행했다.

김지운 감독 : 재미있게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영화는 감정선은 이병헌 씨, 즉 수현 역을 따라가게 만들었고 동선으로는 예측불허 막무가내, 점입가경의 경철 역을 따라가게 하여 시종일관 틈 없이 숨 막히는 복수전을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이병헌 : 지금 영화를 막 보고 나와서 서로 재미있게 봤는지 얘기를 나눌 시간조차 없었고 아직 못했습니다. 생각이 많아지는 영화인 것 같고 여러분들 생각이 궁금합니다.

최민식 : 저도 영화를 처음 봤습니다. 감독님께 먼저 보여 달라고 할 수도 있었는데 자제하고 극장에서 보고 싶었습니다. 만감이 교차합니다.

-'악마를 보았다'라고 제목을 붙인 이유가 궁금합니다.

김지운 : 원래 제목은 '아열대의 밤'이었습니다. 배경이 여름이었는데 제작 여건상 겨울에 찍어야 했습니다. 시나리오를 보면서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은 어쩔 수 없이 복수를 감행하는 사람이 그 못지않게 파멸에 이르는 상황들, 자기 정신과 심신을 황폐화하면서까지 극단적인 복수를 감행해야 하는 사람에 초점을 맞추던 중에, 니체의 '선악을 넘어서'의 구절을 발견해서 그것을 토대로 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괴물을 쫓는 자는 자신이 괴물이 되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심연을 오래 들여다보면 심연 또한 당신을 오래 들여다볼 것이다' 는 글귀가 이 영화의 근간을 이루고 영화에 나오는 복수를 하는 수현의 상태가 되지 않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괴물에게 복수하려는 자와 괴물이 될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 부조리를 영화에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시나리오를 보고 처음 느꼈던 강렬함, 본능적인 것, 솔직함, 영화 도처에서 느껴지는 힘들을 영화 안으로 옮기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악마를 상대할 때 그 자신이 악마가 되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는 것. 영화에도 나오지만 짐승을 잡기 위해 짐승이 되어야 하는 상황들을 실감나게 영화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최민식 씨는 상업영화로는 5년 만의 복귀 작인데, 시나리오를 선택하신 이유와 인물에게 어떤 매력을 느끼셨는지 알려주십시오.

최민식 : 처음에 시나리오를 접했을 때는 원색적인 색깔에 반했습니다. 굉장히 많은 여백이 느껴졌습니다. 지독한 살인마 장경철이 자신보다 더한 수현이라는 인물을 만나 충돌하는데, 처음부터 범인이 누구인지, 살인의 동기가 뭔지가 드러난 상황에서 두 남자의 치고받는 아주 처절한 복수극이 어떤 연출에 따라 굉장히 색깔이 달라질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단순히 도덕적 인과에 의한 복수극에 될 수도 있겠지만, 폭력이 점점 유희화 되어가고 폭력에 중독된 사람들의 극단적인 모습에서 뭔가 찾을 것이 있겠다고 느꼈습니다.
저 스스로가 캐릭터를 접하면서 처음 읽었던 대본과 제 몸으로 표현하면서 그 작업 과정이 끔찍하고 고통스러웠습니다. 어찌 보면 이때까지 출연한 작품 중에서 가장 몰입이 덜 된, 뭔가 좀 더 테크니컬한 자세로 이 작품을 대하지 않았나 고백해 봅니다.

-이병헌 씨는 약혼녀를 잃고 복수를 하는 수현 역할을 연기하면서 어떤 점에 가장 신경을 썼는지 궁금합니다.

이병헌 : 절제되고 아주 드라이한 연기를 내내 해야 했는데 그 안에서 복수심에 불타는 절제된 무표정의 느낌으로 희로애락, 분노, 슬픔, 복수심을 조금씩 보여줘야 하는 캐릭터였기 때문에 생각보다 단선의 연기 패턴이 필요했습니다. 쉽게 보았었는데 막상 할 때는 그 점이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연기 중에 작은 모니터에서는 그런 표현을 보기 힘들어서 모니터링이 무의미 할 정도로 매번 잘 하는 건가라는 생각을 하며 연기했습니다.

-편집을 해서 청소년불가 등급을 받았는데 편집한 부분을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세요.

김지운 : 삭제한 시간은 총 1분30초가량 됩니다. 어떤 컷을 고스란히 들어내기보다는 컷의 지속시간을 줄이는 방식으로 최대한 영화의 기운을 잃지 않으려고 편집을 했습니다. 와사비를 덜 묻힌 생선초밥을 먹는 느낌. 육질의 맛은 분명히 있습니다. 와사비의 톡 쏘는 맛이 조금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드는데, 육질의 맛은 고스란히 남겨놨습니다. 조리사가 와사비의 양을 첨가하는 것도 레시피 중의 하나고, 육질의 맛을 내는 것도 연출력이고 톡 쏘는 맛을 내는 것도 연출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체적인 두 사람의 구도에서 크게 상관되지 않을 거라고 판단을 내렸고 컷된 부분들이 영화의 기운들, 특히 두 분의 명연기가 손해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을 해서 삭제를 했습니다. 그런 것들을 종합하면 시간상으로는 1분 30여초 되며, 영화의 전체 본질이나 기운에 크게 작용하지 않는 선에서 삭제했습니다.

-불만은 없다는 말인지.

김지운 : 머릿속에 있는 말과 마음속에 있는 말이 다를 수 있습니다. 가슴속에 있는 말은 평생 (묻고) 가져갈 생각입니다.

-최민식 씨도 악마를 보았겠지만 이병헌 씨도 자기 안의 악마를 보았다고 봅니다.

이병헌 : 우선 감독님은 마음속에 있는 말은 평생 가져가실 분입니다.(웃음) 오늘 영화를 처음 봤는데 충분히 '와사비 범벅이 된 회 무침'이라고 생각합니다. 제목은 개인적으로 상징적인 의미가 더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제가 악마인지 아니면 최민식 선배가 악마인지 묻는데 그건 보시는 분의 생각에 따라 다른 것 같습니다. 자기에게는 해야 할 만 한 이유가 충분한 일을 하고 있으면서 자기도 모르게 많이 가는 그래서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악마성이 점점 생겨나는 부분이 수현에게서 발견됩니다. 더 나아간다면 지금 시대에 살아가는 사람에게 누구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잘못된 일이더라도 많은 사람, 예를 들어 인터넷 문화의 안 좋은 점을 이야기 하지만 다들 하니까 보편화 되는 것은 그렇게 나쁜 죄가 아니라고 하는데, 어쩌면 그것도 인간의 악마성의 표출이며 단, 그것을 모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안의 수현도 자기가 저지른 일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악마성이 느껴진다고 생각진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영화와 다른 점은 다른 영화에서 복수하면 관객들은 통쾌함을 느낄 겁니다. '악마를 보았다'는 대사로는 안 나오지만 본인도 피곤, 피로해 합니다. 이런 행위가 신난다, 재미난다가 아니라 자신도 힘겹게 복수를 해나갑니다. 이렇게 복수를 해야 할지 말지에 대한 갈등과 피로해하는 이런 부분이 기존 복수 영화에 나오는 복수를 하는 사람과는 다른 감성인 것 같습니다.

-최민식 씨는 하도 피 범벅으로 촬영해서 머리에서 핏물이 빠지지 않는다는 말을 했는데 많이 힘들었는지?

최민식 : 보시다시피 힘들었습니다. 한겨울에 시작해서 월드컵기간에 끝났는데 죽을 맛이었습니다. 야외에서 모기들과 친하게 지냈습니다. 물리적으로 격한 신이나 육체적으로 힘들기도 했지만 격한 감정과 극단적인 감정을 표현하는데 있어서는 정신적인 피로도 쉬이 오고, 더 무겁게 짓누르고, 물론 작품을 선택하고 각오했었지만. 그런 것들이 이중고로 힘들었습니다.

-최민식 씨는 5년 전 '친절한 금자씨'에 이어 또다시 연쇄살인마를 연기했는데 두 캐릭터의 차이와, 두 감독님에 대해 말씀 부탁합니다.

최민식 : 금자 씨는 짧게 조금 나와서 조금 목이 말랐습니다. 더 나쁜 짓을 하고 싶었는데 제 기억으로는 원래 세 컷이었는데, 박 감독이 개로도 만들었다가 그랬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도 많이 맞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영애 씨에게 맞아서 그래도 아파도 참을 만했는데, 이번엔 더 많이, 이병헌 씨한테 맞아 아프고 징글징글했던 것 같습니다.(웃음) 박찬욱 감독과는 술을 많이 마셨고, 김 감독과는 에스프레소 커피를 많이 마셨던 기억이 남습니다.

-이병헌 씨에게 질문합니다. 최민식 씨와 연기 호흡은 어땠는지요?

이병헌 : 사실 따로 연기한 부분들이 많습니다. 마지막에만 길게 붙어 있었는데, 세트 촬영할때 대기실이 같았습니다. 선배님이 신나게 '룰루랄라' 스태프와 놀다가도 제가 들어가면 바로 나가세요. 아 진짜 이게 영화의 캐릭터가 어쩔 수 없이 영화를 찍고 있는 동안에는 느껴진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엽기적인 살인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혹시 영화를 보고 모방범죄가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김지운 : 영화는 기본적으로 현실을 모방한다고 생각합니다. 영화가 현실에 일어났던 것들, 오히려 영화가 못 따라 간 것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등급위원회에서 지적하는 장면들을 1, 2차에 걸쳐서 대사 포함하여 7, 8군데를 잘라냈습니다. 모방범죄를 염려하신 것 때문에 잘라냈습니다. 영화를 보고 그것을 범죄를 옮긴다는 인성은, 영화와 상관없이 언젠가 그런 범죄를 할 소질을 가지고 있는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을 미리 방지하는 시스템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육을 먹는 장면은 없어졌는데, 최근 할리우드 영화 '씬시티', '한니발'에도 인육이 나오고, 최근에는 '왓치맨'에서도 인육을 개에게 던져주는 장면도 나왔고 '친절한 금자씨'에도 나왔는데 '친절한 금자씨' 때문에 모방범죄가 일어난 적은 없습니다. 창작은 현실에 대한 비약되고 고조된, 또한 극적인 반영입니다. 그것을 특별한 두 시간을 몰입 하게하는 것은 드라마와 리듬입니다. 훌륭한 연기자가 표현했을 때 오는 실감 때문에 그런 염려가 있으실지 모르겠지만 영화를 보고 만일 그런 범죄를 일으킨다면 그 영화와 상관없이 그런 소지가 있는 사람일 거로 생각합니다.

최민식: 감독님의 영화는 현실을 반영한다는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문화를 소비하는 형태, 문화의 파급력과 사회적 도덕성이 많이 회자되고 논란이 되기도 하죠. 감독님 말씀에 덧붙이자면 우리는 그야말로 우리가 숨쉬는 공기만큼이나 폭력 속에 중독되어 살아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리적으로 때리고 맞고 죽이고 하는 폭력도 있겠지만 이병헌씨가 말씀하셨던 언어, 정치적 폭력 등 폭력의 홍수 속에서 스스로 중독 되어 가면서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죠.

최근 감명을 받았던 일이 있습니다. '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으로 까를로비바리 영화제에 갔었는데 정말 보고 싶었던 라스폰트리에 감독의 '안티 크라이스트'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영화 보면서 눈을 잘 안 감는데 그건 보면서 두세 번 눈을 감았던 기억이 나네요. 그 후 근처 맥줏집에서 열띤 토론이 벌어진 걸 봤습니다. '그런 표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나는 좋다' '싫다' 등 논란이 벌어지는 모습이 아주 좋았습니다. 우리 사회의 모습 중에 이런 끔찍한 폭력이 존재하고 있다면, 이렇게 드러내 놓은 폭력을 얘기하는 계기가 되었다면 좋겠습니다.

-최민식 씨, 이병헌 씨 각자 서로 인상 깊게 봤던 연기가 있습니까?

이병헌 : 많은 분들이 라이벌 의식, 연기 잘하셔서 꺼려지지 않았느냐고 물으시는데요. 저는 배우, 스태프 모두 잘하기로 소문난 분들이 모여서 해야 흥행도 되고 사랑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선배님과 함께 해서 위안이 되고, 디딤돌처럼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기분이었습니다. 각자 촬영하는 게 많았는데 간혹 부딪히면서 촬영을 할 때면 장난치다가도 카메라 앞에서 표정,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정말 배우 같은 느낌이 드는 사람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최민식 선배님도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을 거예요.(웃음)

최민식 : 그렇죠, 우리는 프로죠. 직업, 이걸로 밥을 먹고 사니까 프로죠. 절대 자만심에서 드리는 말씀은 아닙니다. 인생자체도 그렇지만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고, 사람 때문에 행복하고, 좌절하게 되는 것의 연속이고, 영화도 마찬가지로 서로 잘 맞는 사람들이 해야 잘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자기 분야의 전문성을 유감없이 거침없이 보여주는 열정이 있는 이병헌 씨, 김지운 감독 같은 동료와 작업한다는 것은 즐겁고 보람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작품의 결과, 흥행여부를 떠나서 일단 이병헌 씨 김지운 감독, 스태프, 후배, 선배님들과 같이 나눴던 5개월의 시간이 배움의 디딤돌이 된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 주세요.

김지운 : 사실은 아직은 (할리우드 진출) 타진 중이라고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번에 일련의 과정들을 거치면서 다른 환경에서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지어는 '영화를 그만둬야 하나? 이런 일을 겪으면서 해야 하나?'라는 고민을 했어요. 어디서든 더 좋은 영화 만들려고 노력할 겁니다. 다음 달 정도에 미국 팀들과 미팅을 할 것 같은데 순수한 상태의 미팅이니 그 후에 윤곽이 잡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병헌: 얼마 전에 '지 아이 조 2'의 시나리오가 드디어 나왔다고 합니다. 정확하진 않지만 내년 초에 시작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최민식: 제가 하게 되면 국내 작품이겠죠.(웃음) 아직 결정된 건 없고요. 그런데 이렇게 해서 어떤 여배우가 저랑 공연하겠습니까. 실제로는 벌레도 못 죽입니다. 여태까지 작품 속에서 여배우 복이 없었죠. 이번에 여배우들이 많이 나오는데 다 때려죽였으니 다음 작품이 아주 걱정이 됩니다.(웃음) 분명히 말씀드리는 것은 이것과는 다른 작품입니다. 결정되면 알려드리겠습니다.

정리=최현정 기자 phoe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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