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대정리라는 마을에 홀로 사는 할머니와 여섯 자매가 살고 있었습니다. 첫째는 멀리 던지는 걸 잘하였고 둘째는 힘이 세고….”
10일 전북 남원시 산내면 대정리 산내초등학교 도서관. 오색 종이인형을 손에 든 아이들이 칠판 밑에 쪼그려 앉았다. 옆 친구의 대사가 끝나면 자신의 차례에 맞춰 인형을 흔들며 “도둑이 왔나? 호랑이가 왔나?” 하며 재잘거렸다. 색종이를 잘게 잘라 모자이크한 강과 색연필로 칠한 산 등 배경판과 종이인형은 모두 아이들이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만들었다.
아이들을 지도하는 선생님은 정식 교사가 아니라 대학생들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는 ‘대학생 농촌문활-문화배달부’ 참가자들. 5일부터 산내초등학교에 머물며 아이들의 독서교실을 진행해왔다. 문화배달부는 대학생들이 방학을 이용해 농촌으로 가 9박 10일 일정으로 머물며 농촌에 젊음과 활력을 불어넣는 활동을 한다. 8월에 10개 팀이 강원 영월군과 횡성군, 충북 보은군, 경남 통영시, 전남 해남군, 제주 등에서 마을 콘서트와 여름캠프, 다큐멘터리 제작 등을 진행한다.
산내초등학교에 온 4명의 대학생은 독서교실을 진행하며 마을을 배경으로 한 동화를 만들었다. 냇가를 건널 때마다 불편함을 느끼는 어머니를 위해 돌다리를 놓은 아이들이 훗날 북두칠성이 됐다는 동화를 각색했다. 여섯 자매의 성격은 아이들이 상상해 만들었고 배경에는 ‘넓은 밥상’ ‘정통반점’ ‘세미속셈’ 등 실제 마을에 있는 가게들이 나온다. 대학생 박혜지 씨(21·여)는 “책을 읽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내용을 재구성해 인형극을 만들어 공연한다”며 “자신이 사는 마을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자긍심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책 읽고 마을배경 동화로 각색해,9박10일 ‘문활’에 마을전체 생기
첫날 대여섯 명만 왔던 아이들은 날이 갈수록 늘어 이날은 12명이 왔다. 오후 2시부터 시작하는 수업보다 한 시간 일찍 와서 기다리는 아이도 있었다. 비가 오는데도 산길을 30여 분 걸어온 최현성 군(11)은 “여기 와서 친구들하고도 놀고 형 누나들과 동화 만드는 것도 재미있다”고 말했다. 도서관 사서 봉사를 하고 있는 안영미 교사는 “근래 본 아이들의 모습 중 가장 밝다”며 “독서교실 프로그램도 알차고 아이들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기쁨을 깨닫고 있어 마음이 흐뭇하다”고 말했다.
대학생들은 활동을 통해 아이들과 가까워지면서 점점 농촌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양주현 씨(22·여)는 “‘빨래해서 널고 싶은 것’을 쓰라고 했더니 ‘집’이라는 대답이 나왔다. 깨끗하게 빨아 말려 집에 찬 습기를 날리고 싶다는 발상이 놀라웠다”고 말하며 “얼마 전에는 산길의 한 공방에 가 차를 마시며 등산객들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낯선 이들과도 정담을 나눌 수 있어 마음이 따뜻해졌다”고 말했다.
대학생들은 매일 자신들의 활동 내용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찍어 인터넷에 올린다. 다른 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팀들이 올린 사진과 글을 보며 참고하거나 댓글을 달아 응원하기도 한다. 이들의 활동은 문화배달부 홈페이지(www.ccmessenger.org)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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