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이란제재법 세칙 발표]제재동참 어디까지가 성의표시?… 정부 딜레마

  • Array
  • 입력 2010년 8월 18일 03시 00분


코멘트

■ 한미 동맹과 경제 악영향 사이 깊어가는 고민

미국 정부가 16일(현지 시간) 이란제재법 시행세칙을 발표함에 따라 한국 정부도 이란에 대한 추가 제재를 검토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이란계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의 모습. 이 은행은 미국 정부가 발표한 거래금지 리스트에 포함됐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미국 정부가 16일(현지 시간) 이란제재법 시행세칙을 발표함에 따라 한국 정부도 이란에 대한 추가 제재를 검토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이란계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의 모습. 이 은행은 미국 정부가 발표한 거래금지 리스트에 포함됐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미국 정부가 마감시한을 한 달 반이나 앞당겨 관보를 통해 이란제재법의 시행세칙을 발표한 것에 대해 정부 당국자들은 당황해하는 분위기다. 한 당국자는 17일 “법안의 시행세칙이 나오기까지 보통 기한을 넘기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 절반도 안 되는 시점에서 발표가 이뤄졌다”며 놀라워했다. 기획재정부 금융감독원 등 관련 부처 관계자들은 이날 긴급회의를 열고 △미국이 발표 시기를 앞당긴 의도가 무엇인지 △이란 제재에 대한 대응조치를 어떻게 취해 나갈지 등을 장시간 논의했으나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이 예상보다 빨리 이란제재법의 시행세칙을 발표한 것은 이란 제재를 서두르는 동시에 한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의 신속하고 적극적인 제재 동참을 압박하는 효과도 노린 것으로 풀이된다. 다른 정부 당국자는 “미국이 한국에 대해서도 암묵적으로 동참과 독자적인 추가 제재의 시행을 서두르도록 촉구한 셈”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이란제재법에 기본적으로 동참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도 제재로 피해를 볼 국내 기업의 보호 방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한 당국자는 “국제법의 원칙을 따지고 들면 미국 국내법을 제3국에 적용하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고 이를 정부 차원에서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국내 기업이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국제적 평판에 치명적일 뿐 아니라 미국과 거래를 중단해야 하는 현실적 위험에 부닥친다”며 “정부가 시키지 않아도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문제는 미국의 이란제재법 시행세칙이 실제로 어떻게 적용되는지 정부가 아직 세밀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미국이 대이란 일반거래는 막지 않는다는 점에서 미 재무부의 시행세칙 관여자에게 자세한 정보를 얻어 기업과 기관에 알려주는 것이 정부가 앞으로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미국의 시행세칙 발표 이후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에 취할 수 있는 조치가 무엇인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이란 제재 결의에 따라 정부가 취해야 일이 무엇인지 △미국의 제재 관련 협조요청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중요한 대책으로 꼽고 있다. 이 3가지 문제가 우리 정부가 독자적으로 추진할 추가 이란 제재와 연관된다는 것이다.

정부가 추가 제재 1순위로 고려하고 있는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에 대해서는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멜라트은행은 대량살상무기(WMD) 관련 제재 대상을 지정한 미국의 행정명령 13382호 제재 리스트에 이어 이번 미국의 이란제재법 시행세칙 리스트에도 올랐다.

미국은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에 대해 한국 정부가 폐쇄 등 두드러진 제재 조치를 취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당국자는 “정부가 멜라트은행 서울지점 폐쇄 조치를 취하려면 핵 연루 의혹 등 범법행위를 분명히 증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 영국이 핵 연루 의혹으로 멜라트은행 런던지점의 폐쇄 조치를 취하자 은행 측이 소송을 건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경제부처 당국자들은 추가 제재에 대해 “미국의 이란 제재 시행세칙이 나오는 ‘10월 초’까지 일단 기다려보자”고만 말해 왔다.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에 대한 조치도 그때가 돼서야 결정하겠다고 밝혀 왔다. ‘강도 높은 제재를 검토해 달라’는 미국의 요구와 ‘안보리 결의 수준을 넘는 제재가 이뤄지면 보복하겠다’는 이란의 경고 사이에서 고심해온 것이다.

정부는 포괄적이고 강력한 유럽연합(EU)의 제재 수준에는 못 미치지만 미온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일본보다는 제재 수준을 높게 조절해 미국에 ‘협조국가’로 인식시키는 데 중점을 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정부는 미국에 협조국가로 인식되는 동시에 이란과 교역하는 국내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적절한 균형’을 찾아 추가 제재를 결정해야 하는 기로에 서게 된 셈이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