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커버스토리]“하도 울어서 남편이 못 보겠대요”…똑 소리 나는 배우 김지영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8월 19일 13시 28분


● 떡 팔아 교수 만들어놨더니, 남편은 "이혼하긴 싫지만 연애하고 싶어"
● 진짜 남편이 '다른 여자가 있다'고 고백한다면? "실컷 때려준 다음 도망갈래"
● 이종혁 한상진, 오윤아…김지영을 응원하는 든든한 동료

서울 종로구 부암동 주택가. 쏟아지는 뙤약볕 아래 한 가냘픈 여성이 양손에 무와 배추, 파가 가득 든 커다란 장바구니를 힘겹게 들고 발걸음을 옮긴다. 누군가 "장바구니가 너무 무거운 거 아냐?"라고 하지만 "전직 국가대표 핸드볼 선수잖아. 씩씩하게 가자!" 라는 감독의 말이 떨어진다. 이윽고 "컷!" 사인. 배우 김지영(36)이 출연 중인 KBS2 주말연속극 '결혼해주세요'(극본 정유경, 연출 박만영)의 야외 촬영 현장이다.

김지영은 똑 부러지는 배우다. 복길('전원일기')이나 핸드볼 선수 정란('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같은 조연을 맡아도 그녀의 존재감은 뚜렷하다. 요즘 찍고 있는 '결혼해주세요'에서는 결혼 7년 차 주부 남정임을 실감 나게 연기해 이 드라마를 '제빵왕 김탁구'에 이은 주간 시청률 2위로 올려놓았다. 시청자들은 그에게 '눈물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달아주기도 했다.
KBS2 드라마 ‘결혼해주세요’에서 7년차 주부 남정임 역으로 열연 중인 탤런트 김지영. 원대연기자 yeon72@donga.com
KBS2 드라마 ‘결혼해주세요’에서 7년차 주부 남정임 역으로 열연 중인 탤런트 김지영. 원대연기자 yeon72@donga.com

"우는 장면이 많다 보니 화장기가 다 지워진 민낯으로 엉엉 울기도 했어요. 남편(배우 남성진)은 '저걸 찍으면서 얼마나 극에 빠져 울었을까' 생각하니 짜증이 나서 못 보겠대요."

▶ 쿨하지 못해 미안해

김지영을 울린 남자는 남편 김태호 역을 맡은 동갑내기 배우 이종혁이다. 극중 태호는 가난한 집안의 장남이다. 대가족인 시댁을 살뜰히 모시고 떡 가게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뒷바라지하는 조강지처 덕분에 명문대 교수가 되지만, 방송 출연으로 알게 된 아나운서가 좋아졌다며 '자유 결혼'을 선언해 아내를 울린다.

"너도 사랑하고 서영이도 사랑해. 결혼했다고 연애감정을 차단하는 것은 무식한 통제이며 제도의 문제야. 우리 프리하게 살자!"

한참을 혼자 울며 속으로 분을 삭이던 정임의 선택은 "이혼하자"가 아니라 "우리 각자 살자"이다. 하지만 쿨하지 못하게 시댁에 우환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가 식구들 몰래 반찬을 해 놓고 가는 여자가 정임이다.

"세상에 자기 가정 일에 쿨한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정임이도 어쩔 수 없으니 이렇게 해보자고 한 거예요. 또 이 정도는 해야 이 사람에게 할 말이 있다고 판단한 거죠. 개인적으로는 이혼하지 않고도 그 사람과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고 그 안에서 더 성장할 수 있다고 봐요. 이혼이라는 뚝 끊어진 상태에서 성장하는 건 한계가 있어요."
KBS2 ‘결혼해주세요’ 12회에서 에서 아나운서 윤서영(이태임)이 유부남 교수 김태호(이종혁)에게 기습 키스를 한다. 사진제공 3HW Com
KBS2 ‘결혼해주세요’ 12회에서 에서 아나운서 윤서영(이태임)이 유부남 교수 김태호(이종혁)에게 기습 키스를 한다. 사진제공 3HW Com

연기는 연기일 뿐이지만, 김지영은 화면 바깥에서도 감정을 잘 놓지 못한다. 요즘에는 동갑내기 친구 이종혁이 설렁설렁 치는 말에도 그렇게 서러운 감정이 든다고.

"태호가 윤서영 아나운서랑 하는 신 대사 연습이었는데, '내 아내는 착한 여자야. 내가 망가뜨렸어. 내가 나쁜 놈이야'라는 대목이 있어요. 그런데 제가 막 슬퍼서 우는 거예요. 종혁 씨는 '너 왜 그래'하고 '감독님, 얘 때문에 못 하겠어요'라고 일러바치고….(웃음)"

김지영은 인터뷰 자리에 함께한 이종혁에게 "태호가 순수하고 솔직한 거야. 아내 몰래 연애하면 되는데"라고 말을 건넸다. 이종혁은 "아냐, 아내랑 오래 알고 지낸 거잖아. 제일 친한 친구가 걔밖에 없는 거야"라고 웃었고, 김지영은 "아, 그래서 연애 고민 상담을 하는 거고?"라며 눈을 흘겼다.

▶ "바람피운 것보다 내 남자가 치졸해지는 게 더 슬퍼"

드라마 속 유부남 교수와 아나운서의 열애도 핑크빛은 아니다. 두 사람의 '플라토닉'한 연애 감정은 추문으로 번지고, 태호는 교수로서 쌓아온 명성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릴 수 없다며 아내에게 아침 방송에 같이 나가자고 조른다. '김태호 교수의 행복한 가정'이라는 주제로 말이다. 김지영은 이때도 너무 울어서 NG를 냈다.

"제가 '소문 잠재우려고?'라고 막 몰아세우니까 태호가 '그래, 잃고 싶지 않아. 가난한 집에 태어나 어렵게 자랐고 시간 강사만 할 줄 알았는데 교수가 됐어. 한번 해주면 안 되니? 그게 그렇게 힘드니!'라고 말해요. 미치겠는 거예요. '내가 사랑했던 남자가 결국 이런 치졸한 얘기까지 하는구나, 이 남자가 어디까지 무너지려고 이러나' 싶어서요. 바람피우는 것보다 내 남자가 못난 모습은 더 보기 싫어요. 저도 결혼한 여자이고 아이도 있고 하니까 뭐가 더 슬픈 건지 알 것 같아요."

김지영 네는 연기자 가족이다. 남편 남성진은 KBS1 드라마 '전우'에 출연 중이다. 1996년 '전원일기'에서 영남-복길이 커플로 만난 두 사람은 2004년 5월 결혼에 골인, 슬하에 생후 22개월인 아들 경목을 두었다. 김지영의 시부모는 배우 남일우와 김용림이고, 남동생 김태한은 뮤지컬 배우다.

만약 진짜 남편이 '다른 여자가 있다'고 고백한다면? 김지영은 "일단 실컷 때려준 다음 도망갈 것"이라고 말했다.

"내 입으로 헤어지자는 말을 꺼내는 게 무서우니까 일단 피하는 거죠. 마음이 진정되면 1안, 2안 합의안을 만들어서 요구할 거예요. '이 선까지는 용서할게. 정리해'라고요. 물론 그전에 자학도 하고 모른 척도 해보고 이것저것 다 해보겠죠."

▶ 울면서 가사 전달했던 '그리움만 쌓이네'

김지영은 TV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통해 세계적인 스타로 떠오른 영국의 아줌마 가수 수잔 보일처럼 앞으로 전개될 '결혼해주세요'에서는 시민가요제를 통해 가수로 데뷔할 예정이다.

그는 이미 극중 간간이 노래 실력을 뽐낸 적이 있다. 남편 태호와 다정했던 추억을 회상하는 장면에서는 스무 살 풋풋한 여대생 차림으로 강수지의 '보랏빛 향기'를 불렀다. 그는 "한 마디로 오글거리는 연기였다"고 자평했다.

가장 마음에 든 장면은 지난 방송에서 태호의 폭탄선언을 듣고 온 정임이 '그리움만 쌓이네'를 부를 때라고. '다정했던 사람이여 나를 잊었나. 벌써 나를 잊어버렸나. 그리움만 남겨놓고 나를 잊었나. 벌써 나를 잊어버렸나. 아, 이별이 그리 쉬운가. 세월 가버렸다고 이젠 나를 잊고서 멀리멀리 떠나가는가'라는 가사가 정임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해 김지영의 가슴도 아렸다.
김지영은 18회 촬영 당시 민낯으로 실감나는 눈물 연기를 펼쳤다. 그는 “비비크림을 바르긴 했는데 눈물 두세 번 흘리고 나면 모두 지워졌다 다시 덧바를 시간도 없고 해서 그냥 맨얼굴로 카메라 앞에 섰다”며 “여배우라고 해서 망가지는 걸 두려워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원대연기자 yeon72@donga.com
김지영은 18회 촬영 당시 민낯으로 실감나는 눈물 연기를 펼쳤다. 그는 “비비크림을 바르긴 했는데 눈물 두세 번 흘리고 나면 모두 지워졌다 다시 덧바를 시간도 없고 해서 그냥 맨얼굴로 카메라 앞에 섰다”며 “여배우라고 해서 망가지는 걸 두려워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원대연기자 yeon72@donga.com

"감독님이 '그리움만 쌓이네'를 부를 때 눈물을 흘리면서 가사도 정확하게 불러줄 것을 주문했어요. 집에 가서 녹음기를 들고 감정을 다 담아서 대성통곡하면서 한번 부르고, 울먹이면서 가사를 살짝 빼먹으면서도 불러봤어요. 하지만, 가사 전달도 되면서 우는 방법이 없는 거예요. 그러다가 청소를 하면서 노래를 흥얼거려봤어요. 감정을 잡고 '난 노래를 부르고 있는 거야'라고 계속 암시하며 불렀는데 눈물이 또르르 떨어지면서 끝까지 됐어요.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주저앉게 되더라고요."

정임에게 날개를 달아줄 사람은 '그윽한 눈매'의 소유자 최현욱(류태준)이다. 대낮에도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모양새가 영락없는 '백수'로 보이지만 사실 현욱은 아이돌 가수를 여럿 키운 유명한 프로듀서다. 순수한 정임에게 인간적인 호기심을 보이던 현욱은 그를 도와 가수로 변신시킨다. 유부녀 로맨스 드라마에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백마 탄 왕자님'인 셈이다.

▶ 좋은 팀워크에서 나온 좋은 연기

혹시 두 사람이 새로운 사랑을 만들어가는 건 아닐까. 하지만 김지영은 "태호와 이혼하고 현욱과 재혼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고 잘라 말했다.

"일종의 부부 성장 드라마예요. 정임이가 가수로서 자기 자신을 찾는 걸 보면서 태호도 잊고 있던 정임이의 참모습을 보게 돼요. 또 매력적인 정임이를 대하는 주변 반응을 보면서 자신도 변하게 되죠. 정임과 태호 두 사람이 함께 성장해가는 과정을 지켜봐 주세요. 처음부터 철든 부부는 없잖아요."

드라마 여주인공이 가수의 꿈을 이룬다는 설정은 공교롭게도 여러 작품에서 동시에 나온다. 김정은은 '나는 전설이다'(SBS), 배두나는 '글로리아'(MBC)에서 각각 가수로 등장한다. 황정음은 '자이언트'(SBS)에서 가정부에서 가수로 변신한다. 여배우 간 가창력 경쟁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하지만 김지영은 "장르가 다르니까 괜찮아요"라고 씩씩하게 말했다.
KBS2 '결혼해주세요'의 주역 4인방. 왼쪽부터 한상진, 오윤아, 김지영, 이종혁. 실제로는 이종혁이 결혼 9년차, 김지영과 한상진이 각각 7년차, 오윤아가 4년차다. 사진제공 3HW Com
KBS2 '결혼해주세요'의 주역 4인방. 왼쪽부터 한상진, 오윤아, 김지영, 이종혁. 실제로는 이종혁이 결혼 9년차, 김지영과 한상진이 각각 7년차, 오윤아가 4년차다. 사진제공 3HW Com

인터뷰 중간에 촬영이 계속되면서 시간이 많이 흘렀다. 낮 신을 마친 김지영은 함께 식사하러 가자고 청했다. 자연스럽게 동료 배우 이종혁, 한상진, 오윤아도 동석했다. 물론 '지영 씨 기사 잘 써 달라'는 당부가 깔렸다. 계산은 요즘 MBC 예능프로그램 '일요일 일요일 밤에-뜨거운 형제들'로 주가를 높인 한상진이 했다.

시작은 '김지영 응원'이었지만 막걸리가 한두 잔 돌아가면서 너도나도 수다스러워졌다. 주제는 '부부생활 토크', '애증의 카메라 감독님', '촬영장에서 가장 센 오윤아', '한상진의 목숨 건 암벽등반 연기', '술자리에서 유독 약한 이종혁'으로 종횡무진 옮겨갔다. 현장의 즐거운 분위기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최현정 기자 phoe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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