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의 2인자’로 불린 이재오 특임장관 후보자는 23일 국회 운영위원회 인사청문회 내내 몸을 낮췄다. 야당 의원들의 공격적인 질문에는 “잘 알겠다” “명심하겠다”며 물러섰다. 야당 의원들은 이 후보자를 겨냥해 전방위 공세를 폈지만 고성이 한 차례도 없었을 정도로 무난하게 진행됐다. 이 후보자의 낮은 자세에 야당도 새로운 의혹을 제기하지 못해 청문회가 예상외로 싱겁게 마무리됐다는 평가가 많았다.
○ “김문수 뒷받침할 생각도 있다”
야당 의원들은 이 후보자에게 다양한 국정 현안에 대해 폭넓은 질문을 던졌다. 대통령이나 국무총리에게 할 만한 질문도 있었다.
민주당 이춘석 의원은 “개각과 관련해 여권 내부에서 ‘교육 목적의 위장전입은 괜찮다’고 하는데 친서민 운운하면서 고위층 범죄에 대한 면죄부는 뻔뻔한 것 아니냐”고 질문했다. 이에 대해 이 후보자는 “본인들의 해명을 들어보지 않았지만 쪽방촌 투기라든지 위장전입은 사실이라면 적절하지 않다”고 답변했다. “대통령이 인사를 잘못하면 ‘안 된다’고 진언할 용의도 있나”라는 질문에도 “그렇다”고 답했다.
이 후보자는 “개헌에 대한 입장을 말해 달라”는 한나라당 권성동 의원의 질문에 “권력이 분산돼야 한다는 것이 평소 생각”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개헌은 국회가 하는 것인 만큼 특임장관이 되면 국회 논의를 지켜보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한편 이 후보자는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대권 후보로 나설 경우 지원할 생각이 있느냐”는 한나라당 김성태 의원의 질문에 “김 지사와는 오랫동안 같이 생활해왔다. 상당히 훌륭하다”며 “(대선 후보로 나가면) 적극적으로 뒷받침할 생각도 있다”고 밝혔다.
○ “병무-교사-학업 병행 부적절”
민주당 홍영표 의원은 “이 후보자가 1966년 4월 23일 입대해 1966년 7월 6일까지 공병학교 중장비 정비로 군사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중앙농민학교의 성적증명서에 1966년 1학기에 18학점을 이수한 것으로 기록된 것은 의문”이라고 따졌다. 같은 당 박기춘 의원도 “(이 후보자가) 병역의무 기간에 영외 거주하면서 파견교사로 일한 사실은 인정하지만 (중앙농민학교의) 수업까지 정상적으로 했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고 가세했다. 이어 “적당히 학교 다니면 졸업장을 쉽게 주는 일도 있던 당시 시대 상황을 이해한다. 사과만 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물었다.
이에 이 후보자는 “현재 학제로 보면 의혹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사실이다. 당시엔 그게 묵인됐다. 45년이 지난 지금의 눈으로 본다면 이해가 안 되는 점도 있는 게 사실”이라며 “군인 신분으로 파견교사까지 하고 대학까지 다닌 것은 지금 생각하면 적절치 않았다.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나 측근 3명을 대우조선해양의 고문으로 취직시킨 대가로 남상태 대우조선해양 사장의 연임을 도왔다는 의혹과 국민권익위원장 시절 당시 서울시의회 교통위원장이었던 최모 시의원과 통화해 서울도시철도공사와 관련된 서울시 조례를 개정하도록 했다는 의혹은 일축했다. 이 후보자는 “남 사장 연임 등은 내가 미국에 있을 때 있었던 일이고 남 사장을 잘 모른다”고 밝혔다. 이날 운영위가 증인으로 채택한 남 사장과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은 국외출장을 이유로 불출석했다.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천하의 이재오’가 미국 체류 기간에 한 달 생활비로 300달러를 썼다고 하면 아무도 안 믿는다”고 지적하자 이 후보자는 “(제출한 자료가) 부실했다”고 인정했다.
○ 여-야 신경전
민주당 전현희 의원이 “이 후보자가 대표였던 국가발전연구회가 쓰던 여의도 사무실을 공성진 의원이 주도한 위기포럼이 그대로 썼다. 공 의원은 사무실 운영경비로 불법 정치자금을 받아 유죄 판결을 받았다”며 두 사람의 연루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자 한나라당 손숙미 의원이 “공 의원과 이 후보자를 억지로 연관시킨 것은 의혹 재생산”이라고 정면 비판했다.
한나라당 김성태 의원이 민주당 박 원내대표에게 발언시간을 지키라고 주문하자 박 원내대표가 “버르장머리가 없다”고 맞받았다. 김 의원이 즉각 “사과하라”고 항의하면서 한때 회의가 2시간 반 동안 정회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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