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의 ‘낭만’ 운운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소리인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역사적 등대’와 ‘오늘의 등대’를 구분하여 판단하는 혜안이 필요한 대목이다. 당시의 등대는 ‘제국주의의 첨병’그 자체였으며 일본인 간수들은 제국의 요새를 수호하는 파견대였다. 머나먼 오지였던 당사도 같은 섬에 제국의 군영이 들어서고 간수들이 총칼로 지키게 되자 의병들이 습격에 나선 것이다.”》
◇ 등대/주강현 지음/생각의 나무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는 해안가를 따라 많은 등대가 들어서 있다. 바닷가에 고고하게 서 있는 등대는 고독과 낭만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저자는 감상적 이미지의 등대가 아니라 역사적, 과학적, 건축학적 관점에서 등대를 들여다봤다. 해양문화사학자인 저자는 “관광객에게 등대는 아름답고 조용한 공간이지만 등대원이 돼도 주변이 모든 것이 마냥 아름답고 조용하기만 하겠느냐”고 묻는다. 잠시 보는 풍경과 일상적으로 겪어야 하는 삶의 풍경은 다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서해, 남해, 동해를 거쳐 제주도에 이르기까지 전국의 등대 40개를 답사하는 ‘공간 여행’인 동시에 등대를 통해 우리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시간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책 곳곳에는 저자가 일제강점기 때 관보, 신문기사 등에서 찾아낸 등대 관련 사료가 실려 있다.
저자는 “대한제국 시기 한반도에 모습을 드러낸 등대는 불행히도 독립적 근대국가와는 무관하게 제국의 배를 인도하는 ‘제국의 불빛’으로 작동했다”고 말한다. 1903년 팔미도에 가장 먼저 등대가 들어섰으며 부도, 영도, 우도, 홍도, 소청도에 1910년 이전에 등대가 만들어졌다.
1905년 4월 12일 세워진 거문도 등대는 일본이 러일전쟁 중에 군수물자 운송을 하기 위해 만들었다. 1908년 일본 농상공부수산국이 발간한 ‘한국수산지’에는 “거문도 등대는 15초에 한 번 섬광하고 6만7000촉광에 가시거리는 22리”라고 적혀 있다. 비슷한 시기에 세워진 우도 등대, 홍도 등대가 100촉광에 가시거리가 8리였던 것과 비교했을 때 거문도 등대가 1등급 등대로 분류됐던 것을 알 수 있다. 이 등대는 거문도 남쪽 끝 등대섬 절벽 위에 서 있다. 일제강점기 때는 조선인 출입이 엄격히 금지됐지만 지금은 연간 10만 명이 찾는 관광명소가 됐다. 등대로 가는 길에 펼쳐진 동백나무 숲은 남해 절경 중 하나로 꼽힌다.
당사도 등대는 조선총독부 관보에 가장 많이 등장할 정도로 규모가 크고 중요 임무를 수행했던 곳이다. 1909년 1월 1일 만들어진 당사도 등대는 광파만 쏘는 것이 아니라 무선전화국 설비까지 갖추고 있었다. 일본에서 중국해로 가는 중요한 길목에 자리 잡고 있던 만큼 항일 의병활동이 활발하게 펼쳐지기도 했다. 등대 설립 1개월 후 의병들이 등대를 습격해 일본인 등대원 4명을 사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사도 등대에 가면 항일전적비를 볼 수 있다.
이처럼 역사적 숨결이 서려 있는 등대를 현대식으로 개조하려는 움직임에 저자는 안타까움을 표한다.
“백 년 전 등대를 우리들이 친견하고 근대 문화유산으로 예의를 지키듯이 백 년 이후의 후손들도 우리 시대의 등대를 친견할 수 있도록 장기 지속적 관점에서 백년대계로 설계해야 함을 걱정하는 것은 ‘고려공사(高麗公事) 3일’이라는 우리의 해묵은 관행에 비춰볼 때 단순기우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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