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왜 그런 인사관을 가졌다고 생각하나.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하면서 형성된 게 아닌가 싶다. 국정 운영은 잠바 입고 새벽부터 열심히 다니는 것보다 한 차원 높은 정치력, 지도력이 필요하다. 국민을 감동시키고 설득하는 ‘소통’을 해야 하는데, 재래시장 찾는 게 소통이 아니다. 어떻게 4800만 국민을 일일이 다 만나느냐. 기자회견을 해야 한다. 지금까지 세 번 했나? 민주주의 국가에서 최고 최대 홍보기관은 대통령이다. 촛불시위 때도 용감하게 국민 앞에 서서 ‘쇠고기협상은 노무현 정부에서 추진한 것을 집행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하고 30개월 문제도 설명을 했어야 했다. 그렇다고 밑에 사람들이 나선 것도 아니고 뒤에서 욕이나 하고 그랬다. 천안함 사건 때도 대통령이 국민 앞에 선 게 사건 일어나고 두 달 뒤였다.”
‘미스터 쓴소리’라는 별명답게 그의 말에는 거침이 없었지만 목소리는 낮게 깔렸다. 말을 시작할 때마다 ‘제 생각에는’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이라는 전제가 많았다. 상대를 비판하되 이해하는 마음으로, 거칠지 않은 언어를 쓰되 짚을 것을 짚는 모습에서 현실을 보는 엄정함이 느껴졌다.
―위장전입 문제는 현실을 좀 반영하자는 여론도 있는데….
“위험한 생각이다. 현 주민등록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은 국민의 기본권과 많이 연관돼 있다. 위장전입을 허용해주면 학군제가 무너져 교육행정이 흔들린다. 거주자 우선 분양인 아파트 분양권도 불투명해져 선의의 피해자가 재산권을 박탈당한다. 요즘 한 표 차로 당락이 갈리는 각종 선거도 위장투표에 의해 자격 미달인 사람이 당선될 수 있다. 다른 사람들도 자녀교육을 위해 많이 한다고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위장전입 하려면 이른바 좋은 학군에 아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사람이 서민들 중에 과연 몇이나 되겠느냐. 법을 어겨 놓고 사회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는 발상은 법치국가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야당도 ‘너 잘 만났다’ 식의 정치 공세를 펴는 것은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런 지적은) 억울하다. 청문회가 자질 검증보다 도덕성 검증으로 가는 데에는 일차적으로 대통령에게 책임이 있다. 흠 있는 공직자를 처음부터 세우지 말아야 한다. 인사청문회 제도는 미국에서 시작됐는데 미국은 이런 일이 거의 없다. 밀입국자를 가사도우미로 썼다고 해서 사퇴하는 사회다. 연방수사국(FBI) 같은 사법기관들이 공직후보자들을 3, 4개월 동안 조사해 대학 때 주차위반한 것까지 잡아낸다고 한다. 우리는 청문회 시작 전부터 각종 의혹이 쏟아진다. 특위 위원들이 일부러 찾는 것도 아니다. ‘쪼끄만’ 당이라 우리 당엔 제보가 안 오지만(웃음) 민주당 의원들에겐 많이 온다.”
그에게선 특정 당을 대표하는 정치인이라기보다 정치라는 현장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전문가로서의 자신감’이 느껴졌다. 주제를 바꿔 정치 현안 전반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갔다.
―최근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만났다. 어떻게 보나.
“남의 당 이야기라 뭣하지만 대통령의 성공이 대한민국의 성공인데 그러려면 박 전 대표가 협력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회동은) 잘한 거다. 그러나 형식보다 내용이 중요하다. 대통령과 유력한 대통령후보, 현실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으면서 거부권까지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 만났는데 기자회견조차 없었다. 함께 문안이라도 작성해 대변인을 통해 발표하는 게 옳았다. 그런데 회동 자체는 물론이거니와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아무도 모른다. 무책임하다. (두 사람 모두) 정치적인 센스라고 할까, 그런 게 안 보인다.”
―박 전 대표 행보에 대해서는….
“좀 더 전면에 나섰으면 좋겠다. 활발하게 국민과 소통하고 본인 관련 사안이 나오면 정정당당하게 기자회견도 해야 한다. 본회의장 올라가는 계단에 서서 기자들을 만나 몇 마디 던지면 그걸로 끝이다. 정치인은 자신이 가진 힘을 크든 작든 현실정치에서 올바르게 발휘해야 한다. (박 전 대표는) 그 힘을 오로지 차기 대통령이 된 이후에만 쓰겠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개인적으로 만난 적이 있나.
“오다가다 마주치면 인사하는 정도?”
문득 그의 부인이자 연극배우 김금지 씨가 1996년 발표한 글 한 대목이 생각났다. ‘남편은 네 번의 선거에서 한 번도 법정 선거자금을 넘긴 적이 없고 선거법을 지켰고 의정활동에서는 단연 두각을 나타냈다. 물론 부정한 돈을 받은 적도 없고 계보에 속하지도 않고 계보를 만든 적도 없다.’
그에게 정치란 과연 무엇일까.
“(웃음) 글쎄, 국가라는 가장 큰 공동체를 형성하고 살아가는 가장 핵심적인 운영 기술을 행사하는 것 아닐까. 또 정치인이란 각종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해결하는 사람들이고. 선진국을 보면 하나같이 정치 분야도 선진적이다. 우리는 타 분야에서는 눈부시지만 정치가 선진화되지 못해서 진정한 선진국이 못되고 있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제일 먼저 뭘 바꿔야 하나.
“생업이라는 생각보다 공인으로서의 소명의식을 가져야 한다. 최소한 대통령을 비롯한 지도급만이라도 솔선수범해야 한다. 현재 가장 잘못된 것은 정치인들이 자정능력이 없다는 거다. 미국만 봐도 동료 의원들의 잘못이 드러나면 가차 없다.”
그의 다음 말이 이어졌다.
“정치인은 공(公)을 위해서 사(私)를 희생하는, 남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는 직업이다. 케네디 대통령 말대로 ‘가장 고상한 직업’이다. 그래서 철저한 자기관리가 필요하다. 적어도 보통 시민들보다는 한 단계 더 기준이 높아야 국민을 리드할 수 있을 것 아닌가. 그동안 국회가 구성될 때마다 신인들이 많이 들어왔는데 적자생존에 급급해 초심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는 안 된다.”
―초심도 잃지 않고 그렇게 오래 생존할 수 있는 비결이 뭔가.
그가 크게 웃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좀 위선자 같긴 하지만 국회의원은 한 번을 해도 특혜고 영광인데 늘 이 임기가 마지막이라고 다짐하며 살았다. 물론 굉장히 어려웠다. 따로 직업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교과서대로 한번 해보겠다고 생각하니 처신이나 발언이 자유로웠다. 그러다보니 재선 3선을 거쳐 여기까지 왔다.”
그와의 인터뷰 기사를 쓰고 있던 29일 오전 김태호 후보자를 비롯해 이재훈 신재민 장관 후보자까지 줄줄이 사퇴했다는 뉴스 속보가 이어졌다. 집에 전화를 걸었더니 부인 김 씨가 바꿔주었다. ‘한 말씀 듣고 싶다’는 기자의 말에 단순명료한 답이 돌아왔다.
“사필귀정이다. 한나라당과 대통령을 위해서도 잘한 선택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인사관을 바꾸지 않는 한 같은 일이 되풀이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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