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여전히 바다가 두렵긴 마찬가지지만 예전에 비해 많이 무뎌진 것이 사실이다. 항해 경험이 늘어가면서 조금씩 항해술도 배워가지만, 작은 자연의 변화에도 늘 초조해하는 나약한 존재임을 나는 실감한다. 그러나 항해를 마치고 갖는 희열이 언제나 나를 다시 바다로 향하게 한다. 그렇다! 바다에서는 항상 육지가 그립지만 육지에 있을 때는 또다시 바다가 그립다. 나는 천상 바다 사람인가 보다.”》
9.75m 요트로 일주한 한반도 바다
부산에서 태어나 소방관으로 일하던 저자는 다시 사업을 하다 그만둔 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요트를 타기 시작했다. 취미로 접하던 요트는 불혹이 넘어 그에게 새로운 직업을 선물했다. ‘요트 딜리버리’(yacht delivery·외국에 있는 요트를 직접 세일링해 국내 주문자에게 전달하는 일)가 그의 일이다. 그는 자신의 일을 위해 요트로 일본과 국내를 오가다 우리 바다의 섬들을 일주하기로 결심한다. 2004년 10월 부산 요트경기장을 출발한 그는 90일간의 우여곡절 끝에 섬 일주를 끝낸다.
이 책은 우리 바다의 다양한 섬에 관한 정보와 여행 중 감상을 담고 있지만 여행안내서라기보다는 항해 일지에 가깝다. 준비 과정에서부터 예측하기 어려운 바다의 변화막측한 얼굴, 요트의 파손과 수리, 섬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사연 등을 담았다. 그의 요트 일주는 동력이 있는 보트나 유람선을 이용한 여행과는 차원이 다르다. 요트는 ‘바람과의 대화’가 항해의 시작이자 끝이다. 때로 바람이 없거나 비상시에 동력을 사용하지만 요트의 기본 동력은 바람이기 때문이다.
그의 요트 일주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여행의 3분의 2는 남해를 거쳐 서해의 백령도 부근까지 올라갔다 다시 홍도, 소흑산도, 제주도를 거쳐 부산으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이어 부산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동해로 나아가 최북단 항구인 대진항까지 갔다 울릉도를 거쳐 부산의 가족 품에 안겼다.
그의 요트는 32피트(9.75m) ‘마치(march)호’. 원래 조종하려면 4명 이상이 필요한 요트이기 때문에 그는 혼자서 감당할 수 있도록 장비를 개조하고 겨울철 추위에 견딜 수 있도록 조타실도 만들었다.
그는 기본적 장비는 물론 안전장비와 공구 등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했음에도 바다에서는 잠시도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다고 말한다. 강원 임원항 부근에서는 어선의 그물에 걸려 스크루가 부서져 직접 물속으로 들어가 이를 교체하기도 했다.
특히 간만의 차가 큰 서해에서는 바닷물이 빠져나갔을 때 요트의 바닥이 훼손되지 않도록 수심이 깊은 곳을 찾아 정박하는 것이 중요하다. 적당한 장소를 찾지 못한다면 오늘 잘 곳을 정하지 못한, 망망대해 속 나그네나 다름없다.
저자가 자연과의 버거운 싸움에 지쳤을 때 그를 위로한 것은 아름다운 섬과 그 속에서 만난 사람들의 인정이었다.
사람들은 작은 요트를 타고 바다로 향하는 그를 “언제 죽을지 모른다”며 걱정했다. 하지만 그는 요트 항해의 즐거움과 깨달음을 이렇게 말한다.
“요트를 타고 바다 위를 항해하다 보면 빠른 배를 타는 사람이 느낄 수 없는 것을 많이 느낀다. 바람, 구름, 햇살, 배가 물을 가르는 물살의 느낌, 파도소리…. 이 모든 것을 깊이 느낄 수 있다. 돛배를 타는 즐거움이 어찌 빠르고 좋은 배에 못 미치겠는가? 그래서 나는 내 아들들에게 최선을 다하라는 말보다는 자기가 가고자 하는 길을 꾸준히 나아가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러다 보면 분명 자기가 원하는 곳에 닿을 수 있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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